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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르네 지라르는 사회과학의 아인슈타인”
국내를 대표하는 지라르 연구자 정일권 박사 인터뷰 – 1부

입력 Mar 16, 2016 05:53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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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정일권 박사

정일권 박사는 국내를 대표하는 르네 지라르 연구자로 손꼽힌다. 지라르 입문서를 내는가 하면 한동대학교, 고신대학교, 브니엘신학교 등에서 가르치며 지라르의 이름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올해 1학기엔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돼 일반대학원에서는 ‘기독교와 문화 세미나'를, 기독교학대학원에서는 ‘기독교와 인문학' 강좌를 맡아 강의 중이다.

그런데 정 박사에 앞서 지라르라는 학자부터 알아야겠다. 르네 지라르 하면 ‘누굴까?'하고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아서다.

Q : 르네 지라르는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름 같다. 르네 지라르가 누구인지 간략히 소개해 달라.

이미 지라르는 고교생들이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어야 하는 고전이 됐다. 그러나 지라르가 국내 인문학에서 제대로 소개되고 평가되지 못한 면도 없지 않다.

지난 해 타계한 지라르는 2005년 ‘불멸의 40인'이라 불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프랑스 학술원)의 정회원으로 선출됐다. 이는 프랑스 지식인 최고 영예다. 그리고 『문화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책에 지라르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지라르는 인문학의 다윈이며 사회과학의 아인슈타인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어로 제작된 어느 다큐멘터리는 "인간과학의 새로운 다윈"이란 제목으로 지라르의 학문적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또 2015년 미국 경제전문주간지 <포브스>지는 추모 보도를 통해 지라르를 ‘사회과학의 아인슈타인'으로 평가했다. 즉, 아인슈타인처럼 다양한 학문분야가 통합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를 창조했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으로 지라르는 ‘기독교의 헤겔'로 평가되기도 한다. 미국의 어떤 주교는 지라르를 21세기의 교부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지라르는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종교학, 그리고 경제학까지도 통합될 수 있는 하나의 학문체계를 창조했다. 2015년 지도교수였던 볼프강 팔라버가 독일국영방송라디오에서 지라르 추모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이 때 이 라디오방송은 지라르의 이론을 ‘문명사적 기념비'로 평가했다.

지라르는 지난 1966년에 존스 홉킨스대학에서 ‘비평언어와 인간과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 주도했는데, 이때 자크 데리다, 자크 라깡, 롤랑 바르트, 루시엥 골드만 등이 참여했다. 이 대회는 미국에 프랑스 철학과 이론을 유행시킨 분수령과 같았다. 데리다도 이 대화를 출발점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데리다가 여기서 발표한 「인간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그리고 놀이」는 해체주의 철학의 고전적 텍스트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라르는 이미 1961년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 힘입어 국제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지라르는 모방적 욕망이론과 희생제의적 폭력과 박해에 대한 연구로 당시 이미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라르는 자신을 ‘구조주의자' 혹은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하는 데 대해선 용감하게 저항했다. 그는 기존의 아카데믹한 영역들을 기꺼이 넘나들고자 했다. 지라르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서 인간과학의 많은 영역들, 곧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신화와 종교에 대한 연구에 이르는 영역들까지 섭렵했다.

Q : 정 박사는 르네 지라르 전문가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지라르에게 특히 끌렸던 계기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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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정일권 박사 제공)
▲2006년 독일 튀빙엔 대학 개신교 신학부가 르네 지라르에게 영예로운 상(Dr. Leopold-Lucas-Preis)을 수여했을 때

개인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전공한 이후 독일철학과 신학, 현대철학, 프랑스 포스트모던철학,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 철학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처음엔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한데 대해 황당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지속적인 지라르 읽기를 통해서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해독하려고 했던 신화의 수수께끼를 마침내 풀었고, 『문화의 기원』을 희생양 메커니즘 속에서 해명한, 매우 독창적이고 방대한 이론에 심취하게 되었다. 인류 문화의 기원에 대한 ‘큰 질문'을 던지는 그의 미메시스 이론은 포스트모던적 시대정신 이후의 새로운 ‘큰 이론'(Grand Theory)이다.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고 십자가의 역설과 승리를 다시금 인문학적으로 변호하는 지라르를 국내에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다. 이 같은 열정에 힘입어 지라르를 2번이나 직접 만나서 학문적 대화를 나누었다.

지라르가 옹호한 건 유대·기독교적 텍스트와 전통

Q : 어느 일간지 기사를 읽다가 ‘지라르는 가톨릭의 진리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봤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개신교인, 특히 가톨릭을 이단시하는 보수 교단의 개신교인이 보면 오해의 소지가 큰 것 같다. 이 대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달라.

지라르는 인문학자로서 유대·기독교적 텍스트, 가치 그리고 전통을 새롭게 변증하고 변호하고 나섰지 교파신학적·협의적 의미에서 로마 가톨릭 신학을 옹호하지는 않았다. 지라르가 말하는 기독교(그리스도교)는 C.S.루이스가 말하는 단순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이다.

지라르는 포스트모던 시대정신 속에서 배제되고 추방되었던 기독교(그리스도교)를 다시금 변호한다. 이에 독일 튀빙겐대학교 개신교 신학부는 2006년 지라르의 기독교 변증 작업에 ‘영예로운 상'을 수여했다. 국내에서도 개신교인들이 지라르를 더 많이 읽기에 지라르 번역서들도 대체적으로 개신교적으로 번역된 것으로 안다. 국제적으로는 개혁주의·장로교 신학자로부터 로마 가톨릭 신학자, 여기에 메노나이트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파신학자들이 함께 지라르를 연구하고 있다. 물론 지라르의 문명이론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공동연구에도 가끔씩 작은 교파신학적 경쟁이 보이기도 한다. 지라르의 방대한 이론에 대한 공동연구는 교파신학적으로 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러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신학 사이의 경쟁과 내부논쟁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을 위해서 쓴 나의 책 『십자가의 인류학. 미메시스 이론과 르네 지라르』를 읽으시기를 바란다. 이 책에는 주류 개신교 신학자들이 지라르의 사유를 신학적으로 평가하고 수용하고 있다. 이들 신학자들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독일 교회협의회(EKD)의 회장을 지낸 볼프강 후버(Wolfgang Huber),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조직신학 교수 미하엘 벨커(Michael Welker), 영국 급진정통주의 신학자 밀뱅크(John Milbank)와 와드(Graham Ward), 복음주의권의 필립 얀시(Philip Yancey),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케빈 밴후저(Kevin Vanhoozer), 테드 피터스(Ted Peters), 요더(John Howard Yoder), 윙크(Walter W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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