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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선환 선생님은 멍에이자 명예”
‘거리의 신학자’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인터뷰 2부

입력 May 17, 2016 09:09 PM KST

※ 1부에서 이어집니다.

-. 감신대는 한신대와 더불어 토착신학의 산실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감신대가 학내 분규를 겪는 중이고, 한신대 역시 신임 총장 선임 문제로 내홍이 심하다. 한신대 학내 갈등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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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이정배 교수는 한신대 학내갈등, 그리고 은사이신 변선환 교수에 대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채수일 전 총장과는 막역한 사이다. 처음 총장으로 선임됐을 때, 감신과 한신이 진보신학의 대표주자인 만큼 서로 자극 받아 윈윈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기뻤다. 이후 이따금씩 만났는데, 힘에 부친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런데도 연임에 성공하자 더욱 힘을 내어 한신대를 개혁해 나가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경동교회 청빙을 받아 떠나니까 놀랐다. 내막을 들어보면 설명이 극과 극이다. 학내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인지라 극과 극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신대 학내갈등은 아무래도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종합대학화와 한신 고유성 사이에서 불거진 문제라는 생각이다. 풀리지 않으면 학내갈등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 고질적인 문제가 됐다는 말이다.

종합대학이라는 틀 속에서 신학이 자리하면 좋아지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종합대학이 되면서 신학은 점차 고립됐고, 오히려 종합대학의 타켓이 돼 좋은 취지는 사라지고 부작용만 생겼다. 안팎에서 개혁의 목소리는 높다. 그러나 교단(한국기독교장로회)은 작은데 학교가 커지니 목사들 사이에 욕심이 증폭됐다. 교수들도 학문에 매진하기 보다 어느 이사와 만나면 자신의 입지가 유리해질 것인가가 관심사다.

개인적으로 한신대 신학생들과 교분을 나누는데 이 학생들은 외로움이 있다. 선생들이 학생들을 염려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제일 고통스러운 항의다. 다른 이야기는 언급할 수 없고 할 자격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학생들 눈을 가장 무서워했고, 가장 귀담아 들었던 사람으로서 학생들이 이렇게 말하는데에 한신대 교수들은 응당의 책임을 져야 한다.

-. 지난 해가 은사이신 고 변선환 교수 20주기였다. 이때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승을 뵐 면목이 없다"는 심경을 밝힌 것으로 안다. 지금도 그 심경에 변화는 없는가?

처음 사직을 결심했던 2년 전 선생님 산소에 가서 마음 속으로 학교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때 이 말이 마음 속에 남았다.

"선생님은 내 삶에서 멍에이자 명예였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을 끝까지 명예로 가슴 속에 담아간다."

사실 이건 내 마지막 다짐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변선환 선생님 같은 분이 학장도 했고, 제자들에게 강단에 설 기회도 주셨다. 종교재판 받으시고 출교당하신 뒤 많이 외로워 하셨다. 제자들의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이러다보니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변 선생님은 그때부터 학교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학교를 떠날 당시 선생님은 "나 하나로 죽는 게 족하니 제자들은 노다지들이다"라고 했다. 노다지란 ‘노 터치(No touch)', 즉 제자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만큼 학교를 염려하셨다. 그래서 난 학교를 지켜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무슨 행정을 해서 지키겠다는 말이 아니다.

감신대는 토착신학의 전통을 지닌 학교다. 타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종교간 대화라는 학문적 흐름도 있다. 나 자신 생태학, 그리고 종교와 과학간 대화를 제일먼저 감신 신학 풍토에 도입했다. 무엇보다 이같은 감신의 신학적 전통을 죽지않게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제자들을 잘 키우는 일에 최우선 관심을 뒀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많았고 불이익도 당했다. 그러나 옳은 편에 서려 했다.

학교 살리고자 세 번의 기회 고사해

여담이지만 보통 인생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내게도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감신대 보다 더 좋은 대학으로 갈 수도 있었고, 모교 교장과 담임목사 제의도 있었다. 이런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다 안됐다. 내 마음엔 "학교를 지켜야한다"는 선생님 말씀이 더 중요했다.

적어도 두 가지 잘한 점이라면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8월 첫재 주 제자들 20여 명이 선생님 묘소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변선환 아카이브를 구축해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나가려 했던 일이다.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나 자신은 강단을 떠나게 되니 동력이 약화됐지만 말이다.

-. 학교를 지키려 했지만 감신대의 앞날이 썩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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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이정배 교수는 스승인 변선환 교수에 대해 “멍에이자 명예”라며 존경심을 표시했다.

변 선생님께서 학교의 미래를 염려했는데, 20년에 걸쳐 그 염려는 구체화됐다. 앞으로 신학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감리교 계열인 목원대와 협성대의 경우 목회학석사(M.div.;Master of Divinity) 과정이 다 죽었다. 그렇다면 감신을 포함해 세 개 신학대학원의 통합 문제가 거론될텐데 감신이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만약 감신이 목회학석사 과정을 가져오게 되면 학부를 축소해야 한다. 그런데 감신대는 학부의 정신적인 힘이 강하다. 반면 목회학석사는 직업과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만약 학부를 축소하고 목회학석사 과정을 가져오면 결국 직업학교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아직 예측은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교가 교수를 충원하지 않는다. 또 신학대학원이 중심이 된다면 학교에서 눈여겨 보는 학자의 성격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론적이고 인문학적 신학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신학은 일반 사회에서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젠 신학이 교회에서조차 쓸모 없는 학문이 되버렸다. 신학이 신학교 안에서 목사를 양성하는 직업훈련소의 언어가 됐다. 실제 교회에서 무슨 신학이 필요한가?

신학생들이 목회 현장에 나가려면 성서신학·조직신학의 배경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목회든 선교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어렵다고 기피하고 설교학과 상담학에만 매달리니 신학 자체가 죽었다.

설교학이나 상담학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신학의 골격을 갖추고 현장에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성서와 학문적 골격을 갖췄다면 설교학은 차후에 얼마든지 습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학문은 현장에서 훈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지금 신학 교육이 실천신학이나 상담 쪽에 기울여져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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