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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에 있는 것과 없는 것

2016년 6월 5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호 4:1-10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비난하지도 말아라. 제사장아, 이 일로 네 백성은 너에게 불만이 크다. 그래서 낮에는 네가 넘어지고, 밤에는 예언자가 너와 함께 넘어질 것이다. 내가 너의 어머니 이스라엘을 멸하겠다.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 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에게 짓는 죄도 더 많아지니, 내가 그들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겠다. 그들은 내 백성이 바치는 속죄제물을 먹으면서 살고, 내 백성이 죄를 더 짓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백성이나 제사장이 똑같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내가 그 행실대로 벌하고, 한 일을 따라서 갚을 것이니,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음행을 하여도 자손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나 주를 버렸기 때문이다."]

설교문

* 참 아슬아슬한 삶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6월의 첫 주일입니다. 한 달 내내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 누리시기를 빕니다. 6월을 호국의 달이라고 하지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죽어간 영령들을 감사함으로 기억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입에 올립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지옥살이를 방불케 한다는 뜻일 겁니다. 지나친 비관주의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해진 건 분명합니다.

지난 주간에도 또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붕괴사고로 인해 많은 소중한 생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들은 모두 원청 업체 직원이 아닌 하청업체 직원들이라 합니다. 불안전한 여건 가운데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다가 그런 사고를 당한 겁니다. 오늘의 세상을 가리켜 '위험사회'라고 일컬은 이가 있는데, 그 위험은 대개 먹이사슬의 맨 아랫단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됩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어 죽은 김 모씨 이야기는 사람들의 가슴을 참 저릿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도 또한 용역업체 직원이었다고 합니다. 2인 1조의 규칙은 지켜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늘 시간에 쫓기며 일해야 했습니다. 죽음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기대하며 비인간적인 업무량을 견디어내다가 그런 사고를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김 씨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라'고 말한 것이 후회 된다며 흐느꼈습니다. 고단해하는 아들을 따뜻한 말로 위로하지 못했다며 어머니는 오열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은 가난한 이들에게 위험을 전가합니다. 위험의 외주화가 도처에서 벌어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무심했습니까? 그렇게 고단하게 또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닫히는 스크린 도어를 무심하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있어야 할 것과 없어야 할 것의 뒤집힘

이런 민망함을 안고 오늘의 본문을 읽는데 말씀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본문은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라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4:1b-2)

호세아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의 상황을 반영한 말입니다만, 마치 우리 시대를 묘사한 것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진실', '사랑',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라는 말이 과거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진실'이 계약 당사자들을 굳게 묶어주는 상호신뢰 곧 신실함을 일컫는 말이라면, 사랑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연민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배워서 아는 율법 지식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삶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징표라 하겠습니다.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은 십계명이 가르친 마땅한 대인관계의 파탄을 보여줍니다. 동생을 들로 유인하여 돌로 쳐죽인 가인은 고대 세계의 괴물이 아닙니다. 자기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수단으로 삼는 이들은 모두 '가인의 후예'입니다. 하청업체 직원들이야 위험에 노출되든 말든 일의 효율성, 비용절감만을 내세우는 기업들, 종업원들의 무릎을 꿇리며 모욕을 가하는 못된 손님들, 여성들을 자기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들입니다. 하나님은 번영을 구가하던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시며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도 시선의 폭력, 언어 폭력, 신체적 폭력, 제도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폭력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는 피조물들조차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은 탄식하고, 주민은 쇠약해질 것이다. 들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다 야위고, 바다 속의 물고기들도 씨가 마를 것이다."(4:3)

히브리인들은 인간의 타락이 땅의 황폐함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푸른 움과 씨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던 땅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척박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예언자들은 인간의 음란함과 악한 행위로 인하여 산이 헐벗었다고 말합니다(렘3:2). 춘추전국시대의 현인인 노자도 같은 말을 합니다. "군사를 일으켰던 곳에는 가시덤불이 자라고 큰 군대가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노자 30장).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도처에 인정의 황무지를 만들 뿐만 아니라, 생명을 훼손하는 일조차 서슴치 않습니다. 피조물들의 탄식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점점 황폐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는 세상은 멸망을 앞둔 세상, 곧 디스토피아가 아니겠습니까?

*제사장들의 죄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기에는 우리 사회 현실이 매우 복잡하지만 종교인들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시대를 향해 바른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는 이들이 힘 있는 이들의 눈치나 보면서 심판과 경고의 나팔소리를 울리지 않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대중들이 원하는 바를 전하느라 거칠거칠한 하나님의 말씀을 매끈하게 다듬고 있습니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일신의 평안과 성공일 겁니다. 호세아는 그런 메시지만 전하는 제사장과 예언자 때문에 백성이 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낮에는 제사장들이 그리고 밤에는 예언자들이 제사장과 함께 비틀거리고 넘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타락한 종교가 타락한 세상을 만듭니다.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네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내가 가르쳐 준 것을 버리니, 나도 너를 버려서 네가 다시는 나의 성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겠다. 네 하나님의 율법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네 아들딸들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4:6)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버리는 제사장은 반드시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지 않는 종교인들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호세아서를 읽다가 그 다음 대목에 이를 때마다 가슴이 조여옴을 느낍니다. "제사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에게 짓는 죄도 더 많아지니, 내가 그들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겠다."(4:7) 무서운 말입니다. 종교인들이 많아질수록 죄도 많아진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이 하나님께 바치는 속죄제물을 먹고 살면서 백성들이 죄를 더 짓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의 관심이 평안함이나 부유함이 될 때 그는 반드시 하나님을 배신하게 마련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수난>에 등장하는 포르투나스 선장은 마을의 사제를 보면서 이렇게 빈정거립니다.

<저 걸신들린 인간이 사제라고? 그는 약방을 열어 놓고 그걸 '교회'라고 부르면서 신을 무게로 달아 팔고 있어. 무슨 병이든 다 고친다고 하지만 순 돌팔이지. "그래, 무슨 일로 왔나?" "거짓말을 했습니다." "좋아! 그리스도 3그램을 가져가게, 돈은 3피아스터야." "도둑질을 했습니다." "좋아, 좋아! 그리스도 4그램을 처방하지. 4피아스터만 내게. 그리고 자넨 왜 왔나?"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저런, 가여운 친구. 병이 아주 심각하군.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리스도 15그램을 복용하게. 돈이 좀 많이 들겠지만 말이야." "조금 안 깎아 줍니까?" "안 돼. 15피아스터야. 돈을 내게. 그러지 않으면 지옥 밑바닥으로 직행이라네." 사제는 자기 가게에 있는 성상들을 보여 주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쇠스랑과 마귀들이 들끓는 지옥 얘기를 하지. 그러면 손님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내고 말아.......>(니코스 카잔차키스, <수난1>, 이창식 옮김, 열린책들, 2008년 3월 30일, p.37)

사람들을 성숙한 믿음의 자리로 이끌기보다는 그들 속에 두려움을 주입하고 그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확보하려는 종교인들에게 대한 신랄한 조롱입니다. 주일 성수, 온전한 십일조, 전도, 헌신 등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을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도울 생각도, 능력도 없는 이들로 인해 교회는 세상의 비웃음을 사고 있습니다. 성숙한 신자는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똑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 현실이 우리 믿음과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은 어리석은 신자일 뿐입니다. 생명이 속절없이 유린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늘 피해를 입는 세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녕 믿는 이들이라면 그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다가오는 심판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특권적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행실에 따라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하여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물론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등 돌리며 살면서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처럼 뻔뻔한 노릇이 또 있을까요? 믿음의 진실함은 삶을 통해 드러나는 법입니다. 심오한 영적 지혜를 가졌다거나 깊은 신비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혜나 신비체험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려운 이웃들 곁에 다가서서 그들의 설 땅이 되어주고, 함께 눈물 흘리고, 그런 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영성가들입니다. 삶의 여건상 모두가 그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을 그 방향으로 기울이며 살 수는 있지 않을까요? 나는 일상과 무관한 영적 지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 사도도 어쩌면 같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고전13:1-3)

모든 신비한 경험과 능력, 지식, 믿음, 헌신의 진실함을 입증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발원하는 것이라면 영적 가뭄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없다면, 다시 말해 이웃을 복되게 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 삶은 허망함으로 귀착될 것입니다. 그것을 호세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음행을 하여도 자손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나 주를 버렸기 때문이다."(4:10)

지금 우리 마음이 헛헛한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구의역에서 죽어간 우리의 형제는 잠시 저 그늘진 땅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불꽃이 되었다가 스러졌습니다. 다시는 그런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마음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는 세상을 이루자는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살육과 학살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생명과 평화의 씨를 심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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