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노벨경제학 수상자가 말하는 브렉시트를 초래한 정책실패

조셉 E. 스티글리츠 (Joseph E. Stiglitz)

조셉 스티글리츠
(Photo : ⓒ Joseph Stiglitz Twitter)
▲조셉 스티글리츠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이며 루즈벨트 연구소의 선임 경제학자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는 데는 영국이나 유럽이나 전 세계도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 심각한 여파는 유럽연합이 영국의 탈퇴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 유럽연합이 "자기 얼굴에 보복하려고 자기 코를 자르는"[도리어 자기가 손해를 입는]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어쨌거나 이제는 우호적인 관계로 헤어지는 것이 모든 이의 관심사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별이란 많은 경우에서처럼 성가신 일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영국과 유럽연합은 무역 및 경제 통합을 통해서 상호간에 혜택을 나누어 가졌는데, 만일 유럽연합이 경제통합을 더 긴밀하게 이어가는 것이 더 좋다고 진지하게 믿는다면, 지도부는 제반 여건 아래서 가능한 최선의 연대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에 거대한 법인세 회피제도를 구축한 데다 현재 유럽위원회의 총재를 맡고 있는 쟝-끌로드 융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탈퇴는 단절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융커가 이렇게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가 유럽연합 해체의 출발 단계를 주재할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유럽연합이 다른 소속국가들의 탈퇴를 저지하기 위해서 영국에 대해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영국은 국제무역기구(WTO)협정에 의해 보장된 권리 정도만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럽은 비용을 훨씬 능가하는 혜택 때문에 결속하려는 것이 아니다. 융커에 따르면, 경제적 번영, 유대감, 유럽의 일원이라는 자존감 등도 이유일 수 있지만, 유럽은 위협과 협박과 공포를 이용해 결속을 다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태도는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제기된 교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유권자들 대부분이 사안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 지난 40여 년간의 신자유주의 기조는 최상위 1퍼센트에게는 호기였을 수 있지만 나머지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상황이 정치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했었다. 그날이 지금 우리에게 닥친 것이다.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시민들은 무역협정을 자신들의 고난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과도하게 단순화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은 이해할 만하다. 오늘날 무역협정은 비밀리에 협상이 진행되고 기업의 이익은 잘 대변하는 반면에 일반 시민이나 노동자들은 완전히 배제해버린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 결과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협상 지위는 점점 더 약화되고 노조와 근로자의 권리를 잠식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게 된다.

무역협정이 이러한 불평등을 초래하기는 했지만, 그 외 다른 많은 요인들이 정치적 균형추를 자본 쪽으로 기울게 했다. 예를 들어, 지적 재산에 관한 법령들은 제약회사들이 약품 가격을 제멋대로 인상시킬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업의 시장 장악력이 증가한 것은 사실상 실질임금의 하락을 초래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불평등의 심화를 초래한 것이다.

많은 분야들에서 산업집중이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시장의 힘도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침체와 실질임금의 감소 그리고 긴축재정의 영향 등이 결합되어서 공익사업 관련 예산이 삭감의 압박을 받고 있다. 공익사업을 통해서 많은 중하층 임금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불확실성이, 이민자들인 경우에는 더욱더 심하게, 독한 결과를 초래했다. 많은 난민들이 서방국가들이 기여한 전쟁과 억압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이들에 대해 원조를 제공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도덕적 책임이다. 특히, 과거 식민지열강이었던 국가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는 않지만, 난민 등의 저숙련 노동자의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수요가 정상적으로 하락하는 한, 시장균형임금을 하락시킨다. 그래서 임금이 낮아질 수 없거나 낮아지지 않을 경우 실업이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경제정책 실패로 전반적인 실업률이 높은 국가에서 매우 큰 문젯거리가 된다. 유럽, 특히 유로존(유로화를 통화로 사용하는 유럽 연합 국가들)이 최근 몇 십년간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해 평균실업률이 두 자리 수에 달하게 되었다.

유럽으로 이민이 자유롭게 유입되는 상황은 실업률을 낮추는데 성과를 거둔 국가들로 하여금 나라별로 공평하게 할당된 난민 수보다 더 많은 수를 수용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런 국가의 근로자들은 임금하락과 높은 실업률의 부담을 견뎌야 하는 반면에 고용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인해 혜택을 보게 된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난민의 부담이 그것을 견디기 어려운 계층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입 이민의 순수한 혜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낮은 수준의 안전, 교육, 의료 등의 사회보장을 모든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국가에서는 이런 현상이 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국가에 있어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이처럼 임금하락 압박과 공익사업의 감소는 중산층의 감소를 초래하는데, 미국과 영국 양국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류 및 노동계층 가구는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은행들이 2008년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수십억 달러가 은행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반면에 그들의 가정과 직장을 구하는 데는 거의 투입되지 않았다. 미국의 정규직 남성 근로자의 평균 실질임금(인플레이션 감안)이 40년 전보다 낮아진 상태에서는 성난 유권자들이 출현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변화를 약속하는 정치인들이 공약을 실천하지 않았다. 보통시민들은 사회 체제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그나마 남아있던 집권당 정치인들의 능력에 대한 조그만 신뢰도 잃어버리고 그것을 교정하고자 하는 의지마저도 상실하게 되었다. 그것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신참 정치인들은 세계화가 모두에게 혜택을 주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던 정치인들의 시각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화가 나서 투표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훨씬 더 악화된 정치경제적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분노의 투표에 대해 일희일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지사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원리이다. 영국과 유럽대륙 양쪽에서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제 정해졌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안정이 대다수 시민들의 문젯거리들을 거의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유럽연합 정부는 이제 일반 시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더 강화하는 것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수단과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은 제대로 활용하면 더 큰 공동 번영을 약속하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아마도 대다수 시민들의 삶의 수준을 하락시키게 될 것이다.

현재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해 공동번영을 실현하게 할 대안들은 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대서양양안 무역 및 투자 제휴를 제안한 것처럼 더 큰 피해를 끼칠 대안들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오늘날의 과제는 전자를 수용하고 후자를 피하기 위해서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기사출처: Project Syndicate (July 10, 2016)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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