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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통일 18]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 기독인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지웅 교수(ACTS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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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정지웅 교수(ACTS대)

요즘 온 나라가 사드 배치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한국교회협의회와 한기총의 입장이 각각 달라 고민하는 기독인들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기독인들은 사드 배치에 찬성해야 하나 반대해야 하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 전략은 한미동맹이 기본이기는 하지만, 점차 한중관계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중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아 왔으며 불행하게도 이제는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으로는 현실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지역 내 패권경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 문제에서 보듯이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국의 이익을 강력히 추구하는 양국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국의 블록에, 자국의 대세계 전략에 합류하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심지어, 과거에 발생된 수많은 전쟁은 외교의 한 수단으로, 국익 추구의 한 수단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세계 대전의 참혹함을 경험한 인류는 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 등을 만들어 전쟁을 방지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국제기구와 장치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고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국제정치 이론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국제사회는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하여 과거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나아가서 오늘날 국가들은 자국의 국가이익을 추구할 때 인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더구나 문명국가라 자부하는 나라들은 자국의 안보추구가 지역평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려해야만 한다. 예컨대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강대국들의 핵정책은 차치하고서도, 핵무기 개발은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는 데에는 기여하나 핵개발 도미노현상을 불러 일으켜 지역 평화와 세계 평화를 해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금기시된다.

정치경제 관계가 보다 긴밀해지는 동북아에서도 사드 배치문제는 이러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드를 배치하게 되면 동북아에서는 분명 불협화음이 나오게 되어 있다. 중국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미동맹은 인정하나 결코 중국을 겨냥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사드 배치가 이러한 중국의 핵심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미국과 우리 정부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단순히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는데 있고(X-band레이다의 탐지거리가 1,000-1,500km이고 중국측은 통신능력을 고려한다면 3,000km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한국의 사드배치가 미국의 MD 체제로의 편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러한 논리의 진위 여부를 떠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지역평화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으며, 이것이 실행될 경우 분명 중국과 러시아, 북한까지도 이를 타개할 새로운 군사전략을 펼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에서의 사드 전개는 동북아 평화와, 나아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에 걸림돌이 될 것임이 분명하고 이는 우리의 과업인 평화적 통일에도 당연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이 땅의 기독인들이 사드배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왔다. 이것이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면 걸림돌이 되느냐의 관점에서 보면 된다.

국방부는 안보논리로 사드배치를 찬성할 수 있지만 외교부에서는 당연히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평화를 위해 이 땅에 온 예수의 정체성을 따른다는 기독인들은 당연히 이를 거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기총에서는 이를 찬성하고 나섰다. 오늘날 안보라는 것이 단순히 군사적 안보를 넘어서는 경제안보, 외교안보, 환경안보, 인간안보와 같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라는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기총의 주장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고, 기독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성명을 발표하는 분들의 사고 속에는 악의 집단인 북한의 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안보 관념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남북한 대립을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사랑, 평화, 화해와 같은 기독교적 명제가 자리잡을 틈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안보로만 강조되는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다. 그것은 소극적 평화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거짓 평화이다. 예수는 이 거짓 평화를 깨고, 진정한 평화를 만들고자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함께 그 자신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사드에 대해 실효성 논란, 군사주권논란, 비용문제, 전자파 문제 등 다양한 논의들이 있고 모두 중요하지만, 기독인들은 당연히 평화의 문제로 먼저 이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러면 앞에서 말했듯이 결론은 저절로 도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수도권이 방어 영역에서 제외된 것에서 확인되듯 주한미군 방어용인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어떻게 평화체제를 구축하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이를 위한 동북아의 평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평화촉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한국에 사드가 실천 배치되면 "돈은 중국으로부터 벌면서 중국을 겨누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그러면서도 파상적으로 한국경제를 압박해 들어 올 것이다. 그리고 한중 경제유대가 강화된 현 시점에서 그 지렛대는 참으로 다양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정권 붕괴를 겨냥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의 대북정책에 반발하여 자신의 입술에 해당하는 북한과 더욱더 유대관계를 강화해갈 것이며 그러면 한국의 대북정책도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강대국들이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이 내뱉은 외교적 언술을 최대한 지키려는 경향이 있음을 설파한다. 그래야 위신이 서서 동맹국을 확보할 수 있으며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자신들의 외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6.25 참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그러한 나라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중국이 그러한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를 생각해 볼 때, 볏짚을 들고 불길로 뛰어 들면서 불이 붙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현 정부의 자폐적 외침에 더욱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드를 배치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한미일 삼각동맹에 더욱 깊이 천착하게 되어 떠오르는 중국에게 헤게모니를 뺏기지 않으려는 미국과 일본 연합세력의 세계 경략 구도에서 하위에 해당하는 첨단 방어기지로 마침내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구도는 더욱 굳어지고, 이 구도는 동북아 평화와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저 하늘 구름위로 밀어 올리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이를 위한 동북아의 평화환경 만들기라는 분명한 원칙을 정해서 외교정책, 국가안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 중견국의 생존비결은 세력다툼에 끼어들지 않고 보편적 가치와 평화수호라는 역사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기독인의 정체성과도 잘 부합된다. 동북아가 전략적으로 요동치는 상황에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주변 어느 강대국의 이익이 우리와 이익과 충돌할 때, 한국은 더 이상 그 나라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전략적 구상을 갖고, 동북아 평화라는 우리의 선택 유용성이 주변국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 사드배치에서 보듯이 한국은 아직도 냉전의 굴레와, 충돌하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 중국의 아시아 전략 사이에 갇혀서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다. 역동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하며,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땅의 기독인들은 모두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이 땅에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동북아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분연히 일어서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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