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사랑의 유산
정태기 목사 /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원장

입력 Mar 26, 2009 12:25 PM KST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 시편 112:1-3 -

나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하기를 즐겨한다. 내 얘기를 듣고 남자 망신 혼자 다 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일들이 즐겁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내 마음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그림과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방안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 두려웠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는 날이 간혹 있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가 보면 부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정하게 일을 하고 계시는 모습이 정지문 사이로 내다보였다. 무엇인가 반찬을 만들고 계시는 어머니와 불을 때시느라 벌개진 아버지의 얼굴이 그렇게 정겨워 보일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 들로 바삐 나간 어머니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던 아버지의 모습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남자가 부엌에 얼씬거리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고정관념이 전혀 없다. 내 마음속에 부부가 서로 도우면서 사는 모습이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방향은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속의 밑그림은 주로 가정에서 그려진다. 특히 부모의 삶을 통해서 형성되어진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서 부부의 삶만큼 중요한 교재는 없다.

사람은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가능성’이라는 그릇을 받는다. 이 그릇은 부모에 의해 크게 자랄 수도, 깨어져 버릴 수도 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면 아이들의 마음의 그릇도 성장해 간다. 그러므로 한 가문이 번창할 수 있는 비결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데 있다. 플라톤은 한 가정의 두 기둥을 남편과 아내로 비유했다. 아이들은 부모 사이에 맺어진 사닥다리를 타고 자란다. 그 사닥다리가 사랑의 끈으로 묶여져 있으면 아이들도 안정감 있게 자라나고, 사닥다리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불안정하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한 역설적인 교육학자는 아이들을 큰 인물로 키우고 싶거든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말라고 말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살면 아이들이 저절로 건강하게 자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성경에도 부부가 서로 사랑하기를 자기 몸 사랑하듯 하라고 했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자식과 후손을 사랑하는 것이다.

부부가 흔들릴 때 아이들은 어떤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일까? 아이들은 부모 사이의 사닥다리가 흔들릴 때마다 무한한 가능성의 그릇에 상처를 입게 된다. 자주 요동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만큼 가능성의 그릇에 타격을 받는다. 너무 많이 타격을 받게 되면 그릇이 아예 깨져 버린다.

부모님의 사닥다리가 흔들렸을 때 상처를 받았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싸움을 보면서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평소 아버지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인가는 정면으로 아버지를 맞받아치고 나섰다. 그리곤 “당신 혼자 잘 먹고 잘 사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가출해 버렸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아주 멀리 떠나버린 것으로 알았다.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놀란 형과 나는 손을 붙잡고 어머니를 찾아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울었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형과 나는 “우리는 장개 가서 싸우지 말자.”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어느 날 우리 부부는 별일 아닌 일로 눈을 부라리며 싸우게 되었다. 서로 한참 밀고 밀치며 싸우고 있는데 가랑이께에 무엇인가가 자꾸만 달라붙었다. 네 살짜리 딸아이였다. 딸아이는 내 가랑이를 붙들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놀란 아이는 겨우 “아…싸…”라는 단 발음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버지, 싸우지 마!’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으리라. 말을 얼마나 잘 했는지 변호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똘똘한 아이였는데 너무 충격을 받는 바람에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이는 ‘아’ 하고 손을 비비고, 또 ‘싸’ 하고 손을 비비곤 했다. 그러다가는 제 엄마를 붙들고 ‘엄’ 하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발만 동동 굴렀다.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가 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부부싸움을 하다 말고 아이를 끌어안은 채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물에 빠져 죽으라고 했다. 얼마나 끔찍한 저주의 말씀인가! 다른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어도 어린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냥 물에 빠지면 혹시라도 물에 뜰까봐 아주 세상 구경을 못하게 맷돌을 달고 죽으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확인 사살을 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주는 상처가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어떤 유산을 후손들에게 남겨 주어야 하는가?
아이들의 마음의 밑그림은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재산을 많이 남겨 준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자식들에게 물려줄 귀한 유산은 없다. 부부의 안정된 삶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사랑하는 법을 올바로 배우게 한다. 그러한 유산을 받은 자손이라야 온전한 ‘가능성의 그릇’을 마음껏 활용하며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의 후손은 수천 대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2.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재창조하는 임무를 부모에게 위임하셨다.

3.부모는 자녀에게 유산을 남기고 자녀는 부모가 물려 준 유산만큼 살도록 되어 있다.
역사는 인간이 창조하고 인간은 부모가 창조한다. 역사의 성패는 그 시대 지도자의 인간 크기에 달려 있다. 인간의 그릇이 큰 지도자는 큰 역사를 이룩하고, 인간의 그릇이 작거나 금이 갔으면 역사도 위축되고 부정적으로 발전한다.
인간의 그릇은 인간이 가진 자아상을 의미하는데, 이 자아상(self-image)은 부모의 금슬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부모의 금슬이 좋으면 자녀의 자아상은 크고도 튼튼하게 형성되고, 부모의 금슬이 나쁘면 자녀의 자아상은 위축되거나 상처를 입게 된다.
한마디로 부모는 자녀에게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아상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셈이다.

4.부모의 금슬이 좋을 때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가 제일 큰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성격의 뿌리는 태아 때 형성된다. 태아는 엄마의 심장고동 소리를 듣고 엄마 아빠의 금슬을 감지한다.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을 때 엄마의 심장고동 소리는 태아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서로 좋아할 때는 태아도 함께 춤을 추게 된다. 그러나 사이가 나쁠 때 엄마의 심장고동소리는 태아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소리가 된다. 이때 태아는 놀라 움츠려 든다. 태아가 놀라 움츠려 드는 순간이 길면 길수록 아이의 성격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5.부모는 자녀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산을 남긴다. 자녀는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부부관계의 틀을 형성한다.
우리의 무의식 저변에는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이끌어 가는 나침반이 들어있다. 이 결혼 나침반이 행복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으면 행복하고, 불행한 쪽으로 고정되어 있으면 불행하게 살 확률이 높다. 이 결혼 나침반은 어린 시절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자라는 동안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이 아이가 성장해서 결혼하면 어린 시절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결혼 나침반이 지시하는 대로 살도록 되어있다. 이들의 후손은 수대가 흘러 내려가도 오래 전 자신의 조상이 살았던 결혼 생활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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