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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디모데후서 4장 1-8절)

2016년 9월 18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딤후 4:1-8

[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설교문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에 일어났던 지진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충격과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경주, 울산, 울진 지역 주민들의 공포가 컸습니다. 이번에도 정부의 대처는 미숙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든든하다고 믿었던 토대가 속절없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공포를 느낍니다. 북한의 제5차 핵 실험은 이 땅이 언제든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별 일이야 있겠어!' 하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습니다. 북한의 두만강변에 큰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이재민이 되었습니다. 생명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세상의 꿈은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읽는 함석헌 선생님의 시가 있습니다.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그 위에 비치는 별이 떠 있느니라

까불리는 조각배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눈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역사가 썩어진 흙탕이라도

그 밑에 기름진 맛이 들었느니라

뒹구는 한 떨기 꽃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뿌리박길 잊지 마라"

-<마음에 부치는 노래> 부분

우리 마음이 비록 파도에 떠밀리는 조각배처럼 위태로워도 눈을 들어 별빛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썩어진 흙탕같은 역사라 해도 그 땅에 깊이 뿌리 박고 한 떨기 꽃을 피워내는 사람이 바로 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사는 이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현재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사는 이들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 안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현실이 괴롭다고 피안의 세계에만 마음을 두고 사느느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며 삽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자기 삶의 비밀을 슬쩍 드러내 보여줍니다.

"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4:1)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눈길에 맞추어 살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심판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눈 앞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현대인들은 대개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하며 삽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 기뻐하고, 비난을 받으면 슬퍼합니다. SNS에 자기 근황을 올린 후에 많은 이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기를 바랍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친구 수, 팔로어 수, 댓글 수, 좋아요 수, 태그 수 등으로 계량화됩니다(<풍요한 빈곤의 시대> 중에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이재현 교수의 'SNS와 소셜리티의 위기' 중에서, 민음사, 2014년 8월 18일, p.259 참고). 이것은 현대인들이 타자의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자기 가치를 계측한다는 말입니다. 페이스북 뉴스피드 페이지 창 맨 위에 있는 입력 창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를 물음으로 자기 근황을 사람들에게 자꾸 알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매체는 일종의 노출증과 관음증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심판자로 오실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지금도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은 다릅니다. 그들이 유의하는 것은 천둥처럼 다가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전 8세기의 예언자인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 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암8:11) 말씀에 주리고 목마른 시대, 지금이 바로 그런 때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고, 참된 말씀은 경청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4:2)

사람들은 달콤한 말, 자기 욕망을 거스르지 않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렇기에 진리의 말씀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백성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예언자나 제사장이 너에게 와서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있느냐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여라.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로 나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내가 이제 너희를 버리겠다 말하였다고 하여라."(렘23:33)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게 말하자면 부담이 되는 말씀이 맞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안일한 일상을 뒤흔듭니다. 욕망을 거슬러 살 것을 요구합니다. '나 좋을대로 살지 말고 남 좋을대로 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참된 말씀은 처음에는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일단 삼키면 꿀송이보다 더 답니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바울 사도는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렇기에 더욱 종말론적으로 말씀을 선포합니다.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4:6). 부어드리는 제물(奠祭, drink-offering)은 포도주나 피를 부어 바치는 것으로 유보없는 헌신을 뜻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주님의 제단 앞에 온전히 바쳐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는 자기 삶을 이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4:7)

성도들의 삶은 싸움입니다. 끝없이 자아를 중심으로 세상을 구성하려는 욕심과 싸우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의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과정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욕망에 맞서는 일의 힘겨움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롬7:22-23)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모순된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요한은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요일2:16)이 우리를 은총의 세계로부터 세상으로 끌어내린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죄의 법과 싸우고 있습니까? 이미 세상 질서에 투항한 채 적당히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적당한 교양, 쪼들리지 않을 정도의 살림살이,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희생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불의에 맞서야 할 자리에서는 그 자리를 회피할 핑계를 찾는 일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요?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짤막하게 이어지는 이 세 문장이 참으로 강력합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다마스커스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진력했습니다. 보람도 있었지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시련과 고통을 다 맛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끝이 보입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4:8)

'의의 면류관'은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것을 세속적인 명예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면류관은 십자가의 고난인 동시에 부활의 기쁨입니다. 그 면류관은 하나님 품 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이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야기를 기록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리스 군대가 전쟁을 그치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는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투항한 그리스 병사들을 데려와 저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올림피아제를 벌이면서 채육 경기와 전차 경주를 관람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경기의 상품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은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이 수여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아 마르도니우스여,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필이면 이런 인간들과 싸우게 만들었는가? 금품이 아닌 명예를 걸고 경기를 행하는 사람들과!"(헤로도토스, <역사 下>,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9년 10월 5일, p. 305) 우리가 얻게 될 '의의 면류관'도 세상의 어떤 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면류관은 십자가를 거친 후 얻는 부활의 기쁨이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위한 용기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실용적인 지식은 늘어나고 있지만 삶에 대한 외경심은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19:1-4) 세상에 가득 찬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납작한 평면일 뿐입니다. 삶의 깊이와 만나기 어렵습니다. 돈이 모든 가치를 과잉대표하고 있는 시대의 비극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뜨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제주도 애월에 있는 작은 농장에서는 한 달에 한번씩 에코 파티가 열립니다. 음악가, 무용가, 미술가 등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공연도 하고,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함께 나누며 우의를 다지는 자리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작은 하나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 모임은 낯선 이들에게도 격의없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 멋진 모임이 도처에서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분주함 속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종의 숨구멍 같은 모임이 필요합니다. 소박하지만 함께 있음의 기쁨을 자꾸 누릴 때 우리는 조금씩 증오와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무정한 세상에 지쳐서 스스로 거칠어져서는 안 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아니고는 세상의 불의와 끈질기게 싸울 수 없습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피차 권면하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가길 원하십니다.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소명의 자리임을 잊지 말고,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는 용기를 발휘하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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