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한 수정교회, 작은 우리

김종문의 필그림소나타 8

텍사스를 떠나 L.A.로 다시 향했다. 그곳은 다른 도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고, 얼핏 보기엔 한국의 한 동네인 것 같기도 할 정도로 한글간판이 많았다. 우리는 연주 홍보를 하기 위해 신문사와 방송국 등에 바삐 인터뷰를 다녔다.

우리 팀의 첼리스트인 이윤정 양이 한국에서 출발전부터 전자첼로를 사고 싶다고 말해왔었다.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미 연주여행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전자첼로 이야기를 꺼내며 뉴욕에 있는 악기점에 주문을 하면 우리가 떠나기 전에 악기를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악기를 주문했고, 얼마 후 원하는 악기가 도착하였다는 통보를 받고 악기를 찾으러 얼바인의 한 악기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언젠가 미국을 발판으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려면 도로와 표지판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곳은 특이하게도 높은 건물이 거의 없었고 도로와 표지판 외에는 볼것이 거의 없었는데, 한 건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저곳은 어딜까 하는 물음이 잠시 떠올랐다.

악기점에서 악기를 찾고 숙소로 다시 돌아가는데 주유소를 잠깐 들렀다. 그런데 주유소 맞은 편에 웬 큼지막한 건물이 있었다. 커다란 유리건물이었는데 아까 고속도로를 달릴 때 보았던 그 반짝거리던 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었다. 가만히 살펴 보니 ‘Crystal Cathedral’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곳이 수정교회일까? 차를 몰고 들어가 주차를 마친 뒤 본 건물을 향해 가다 보니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옆에 신발을 벗고 있는 동상이 있었다. 점점 수정교회 같은 분위기가 나고 있었다.

이윽고 본당 안으로 들어가자 더 의심할 것도 없이 바로 이 곳이 수정교회로구나 하는 느낌이 확 몰려왔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 온통 유리로 지어진 멋진 실내를 보며, 그 동안 미국여행을 하며 가는 곳곳마다의 사람들이 미국의 교회를 이야기해 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교회이고 한국에서도 예전에 가끔 일요일 아침에 TV를 보면 AFKN 주한미군 방송에서 얼핏 보던 그 교회, 이 곳이 바로 수정교회였던 것이었다.

사실 많은 분들이 계속 수정교회 이야기를 하고 그 곳의 예배에 관한 DVD를 사보기를 권고하셨고 우리 필그림앙상블이 그 곳에서 연주하면 좋겠다고들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수정교회는 대단한 교회고 미국을 대표하는 교회중의 하나라고들 하시길래 사실 나는 어느 새 주눅이 들어 있었다.

본당에 들어서서 나는 자리에 앉아 기도를 했다.‘하나님, 이 곳 미국에 필그림앙상블이 처음으로 연주여행을 올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필그림앙상블이 이 곳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좋은 활동을 펼치고 음악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팀이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한인교회뿐만 아니라 미국인교회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 첫 교회는 이 곳 수정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멘’

기도를 마친 후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기도를 잘못한 건 아닌가? 이곳은 우리가 바라보기에 너무 큰 교회가 아닌가. 교회를 둘러 보고 밖으로 나오며 단원들에게 내가 기도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런 황당한 기도를 한 것이 너희들도 우습지 않니? 나는 괜스레 계면쩍어 하며 얼버무려 버렸다.

▲수정교회 리허설 장면

결과적으로는 일년 후에 정말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팀을 그 자리에 세우셔서, 우리의 기도대로 미국인 교회에서의 첫 연주교회는 수정교회가 되었다. 하나님은 놀라움 그 자체이시다. 할렐루야.

나는 자주 하나님을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내게 던지곤 한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믿음이 적음을 나타낸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적은 나를 향해 끊임없이 증거를 보이시는 하나님의 일을 체험하며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는 사실들이 나를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이끌어가며 감사를 알게 하신다.

항상 감사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하지만 억지로 감사할 것을 찾아서 감사하는 것은 왠지 내키지가 않는다. 그야말로 억지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그냥 놓아두시질 않고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스스로 감사하게끔 만드신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7] 중세교회 대중들의 신앙생활

중세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스콜라주의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콜라주의 문헌들은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이것을 읽거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알쓸신학 6] 중세 신학의 대략적 지도: 서방의 '스콜라 신학'과 동방의 '비잔틴 신학'

'중세 신학'이라는 용어는 통상 이 시기의 서방 신학을 가리킨다. 지리적으로는 유럽 지역이다. 초대교회 신학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