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목사가 정치를 직접한다고요? 저는 반대합니다!"

차세대 목회자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 대담 3부

교회의 정치참여의 기준이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는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목사가 정치를 직접한다든지 교회가 정당을 만든다든지 하는 직접적인 정치 참여 행위에는 반대를 하면서도 정부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교회의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와의 마지막 대담을 나눕니다.

교회와 세상의 소통, 그리고 교회 내에서의 소통에 대하여

Q: 이제 역시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정치에 관한 질문을 드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자면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독 자유당과 같이, 기독교가 아예 정당을 만든 경우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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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김진한 기자)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가 대담에 참여하고 있다.

한문덕 목사: 그 문제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가 정치를 직접 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제가 국회위원이 되고자 한다면 저는 목사직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할 때, 신앙인들의 방법과 정치인들의 방법은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가 고민하는 것은 정치영역을 비롯하여 경제와 문화, 도덕과 윤리, 삶의 의미를 포함하여 초월자에 대한 신앙의 문제 등 매우 폭넓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기존의 정치 체제 안으로 들어가서 기존의 정당과 비슷한 정당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논리에 흡수되어 버리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가 중심이 되어 정당을 만들고, 직접 정치를 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부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교회의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긍정적입니다. 정치 자체가 우리 삶과 절대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뉴스에서 보니 최순실이 사적 이익에 쓰려고 했던 예산만 옳게 썼어도 500억이 넘는 복지 예산이 확보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라가 예산을 세워서 운영하면 그 나라에 속한 국민은 모두 다 그 운영에 영향을 받습니다. 좋은 정부가 좋은 행정을 펼치면 우리 교인들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백성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고, 반면 나쁜 정부가 나쁜 행정을 펼치고, 기득권만을 위해서 정치를 하게 되면 우리 교회를 포함해서 모든 서민이나 약자가 피해를 보게 되겠지요. 그래서 그러한 경우 목사는 예언자로서 그런 세상에 대해, 정부에 대해 어떠한 메시지를 던질 줄 알아야만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교회나 목사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즉 교회나 목사의 정치적 표현은 정당합니다. 다만 목사가 정치인이 되어서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목사로서, 예언자로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지요.

저는 신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성서의 가장 중요한 정신 중 하나가 평등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만이 왕이시다'라는 우리의 고백은 하나님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우 받을 권리를 정당하게 누려야 하지요. 중세에 정의 개념도 하나님께 받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누리는 것이거든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허락하신 몫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면,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목회이고, 당연히 목사의 임무가 됩니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 그것을 비판하며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역할을 목사는 감당해 내야만 합니다.

Q: 목사님 말씀대로 많은 진보적인 교회들이 광화문에서 집회를 해왔습니다. 세월호 문제도 그렇고,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문제도 그렇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교회들이 있었죠. 반면에 여전히 교회는 극보수적인 소리를 내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쉽게 전자는 긍정적으로, 후자는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사실은 다 같은 교회의 정치참여잖아요?

한문덕 목사: 네.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정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모두 정치적 표현이고, 누구나 그런 표현들을 할 자유는 있겠지요. 다만 저는 지금의 대통령을 가리켜 고레스와 같은 인물이 될 거라거나, 독일 총리 메르켈과 비교하며 신체적으로 더 우아하다며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말을 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국가조찬기도회 자리에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하신 분들은 그러한 발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라면 그러한 자리에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정부는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의 편에 서 있거든요. 가난한 자와 힘든 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어려움 당하는 자의 편에 서 있지 않아요. 바울 사도가 로마서 13장에서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고 한 것"은 당시 정부가 하나님 편에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모든 권세를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과 거처와 하늘에 사는 이들을 모독하는 짐승" 같은 정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정부에 대해서는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그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은 자리에 내려 오셨을 때, 특별히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모든 방향이 더 고통당하고 더 힘든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힘 있고 강한 사람들 편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닙니다. 물론 고통당하고 더 힘든 사람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잘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법을 어겨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하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도 없지요. 그럴 때 교회와 목사는 바로 그런 사람들 편에 서야 합니다.

교회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지금 세상의 언어와 교회의 언어가 너무도 괴리되어 있어요. 이로 인해 교인들도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에서의 삶 따로, 세상에서의 삶 따로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분열하면 정체성에 혼란이 오거나, 위선자가 되지요. 세상과 교회에서의 삶이 따로 놀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성찰할 때 괴롭게 됩니다. 어쨌든 교회나 세상이나 일관된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이 둘을 소통시킬 필요가 있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교인들이나 목사 모두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삶의 문제에 있어서 신앙적인 관점을 지녀야 하지요. 목사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인 설명과 신앙적인 길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정치가 될 수도 있기에 교회가 정치적 입장을 분명이 가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완벽한 건 아니에요. 인간의 행위는 불완전하지요. 그러나 최선의 상태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더 나은 것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저는 교회가 정치적 표현을 통해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그러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세상과 교회가 사용하는 언어가 차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장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언어부터 차이가 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교회 내에서 목회자들과 성도들 사이의 소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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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김진한 기자)
▲한문덕 생명사랑교회 목사

한문덕 목사: 참 어려운 질문이군요. 저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더 느끼는 것이지만 제가 공부하면 할수록 전문가의 언어에 익숙해져 가는데 교인들은 대중적 언어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는 전문가의 언어를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제가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름의 목회자상을 정리해본 적이 있어요. 그 목회자상이란 신학과 신앙의 괴리, 신앙고백과 신앙실천의 괴리를 줄이는 것이었죠. 지금 천만에 가까운 기독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도력을 요하는 자리를 구석구석 차지하고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의 신앙실천을 통해서 이 사회가 바뀌지 않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러면 결론은 두 가지 중 하나이지요. 신앙과 실천의 괴리, 아니면 신학과 신앙의 괴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믿기는 잘 믿는데 믿는 대로 살지 않거나, 아니면 잘못 믿은 대로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잘못 믿게 되냐구요? 그것은 신학이 잘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제대로 연구하는 것과 목사들이 바른 신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목사의 신학이 왜곡되거나 어설프면 교인들에게 바른 신앙을 줄 수가 없고 그럼 교회가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기 때문이죠.

이제 바른 신학을 공부했다면 이 신학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하는 문제가 남지요. 즉 목사들은 성도들이 올바른 신학에 근거한 올바른 주체적 신앙을 가지고 올바른 실천에 이르도록 길을 열어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목회자들의 과제이고 저 역시 여전히 고민 중에 있습니다. 이 문제는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덧셈과 뺄셈을 이제 막 배운 초등학생이 갑자기 미적분을 풀 수 없듯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수준별 제자 교육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옥한흠 목사님의 평신도 양육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러한 제자 교육 시스템이 각 교회나 목사들의 한계를 넘지 못할 때 문제이지요.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목사의 제자를 만드는 것에 멈춘다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민주주의는 필요합니다. 목사나 성도 모두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목사의 역할은 꽤 중요합니다. 기도와 말씀의 전문가가 목사이기 때문이지요. 목사는 목사의 직무를 통해 성도들의 성장을 도모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럴 때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덕목은 도덕성입니다. 성도들이 목사를 믿을 수 있어야만 해요. 교인들의 입에서 목사를 신뢰하는 언어들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아! 우리 목사는 정말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이구나! 정말 교인들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하나님을 신뢰하는구나! 교회를 위해 진짜 헌신하고 있구나! 정말 성실하구나! 목사에게 상담을 받으면 속이 시원하구나! 등등 그래서 결국은 다시 목사의 자질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죠!

Q: 그래서 목회자의 자질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문덕 목사: 그게 어쩔 수가 없어요. 이게 악순환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학생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어요? 선생이 잘 못 가르치니까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질문할 것도 없는 거구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듯이, 배움이라는 것은 상호 성장의 관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주도권은 선생에게 있다고 저는 봅니다. 선생이 학생으로 하여금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도록 이끌어야만 하듯이 목사도 자신의 지도력을 확고히 다지고, 그것을 평신도와 나누면서 평신도 지도력을 키워나가야만 해요. 목사가 사도행전에 나오듯이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만 매진해도 다른 부분들을 충분히 성도들 스스로가 의논해서 꾸려갈 수 있는, 즉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신앙인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국 교회의 성패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해요.

Q: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제 아쉽지만 우리의 대담을 정리해야 할 듯 해요. 목사님의 향후 계획과 목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다면요?

한문덕 목사: 저는 그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안내하는 목사이고 싶고요. 이것은 시간이 필요해요. 바울 사도가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교회 공동체에 꼭 돈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말이지요. 물론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아주 세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고 그 신앙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교회이름처럼 생명을 살리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이 남발되는 시대에 진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교회가 되면 좋겠어요. 그러했을 때 우리 교회의 규모에 상관없이 참 교회가 되겠지요.

첫 번째 대담에서 말씀 드렸지만 우리교회는 꿈이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교회", "평신도 중심의 사역", "선교적 사명에 충실한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다 하려다가는 지칠 테니까요!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저는 그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럼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부족한 저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Q: 생명사랑교회가 품은 꿈들이 하나 둘씩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함께 힘이 되면 좋겠고요. 다시 한 번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장효진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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