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독교문화 부흥은 곧…아티스트들 철저히 준비해야”
컬쳐 프런티어② 김학광 미술작가

입력 May 04, 2009 06:51 AM KST

한국 기독교 역사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즐기는 문화는 ‘대중문화’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앙과 문화의 극심한 불균형으로 인해, 세상 속 크리스천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존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아 이런저런 교회개혁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속에서 기독교 문화 회복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김학광 미술작가 ⓒ이지수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숨어 있는 크리스천 예술가들이 많다. 이들은 모든 문화의 발로가 ‘생각’이라는 점, 그러므로 신앙이 문화로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하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붓으로, 펜으로, 음악으로 신앙을 표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4월 30일 서초동 세오갤러리에서 막을 내린 부활절기념 특별전 <성찰된 생명의 질서>의 작가 김학광 또한 신(神)을 향한 경외를 캔버스에 꾸준히 담고 있다. 2001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린 김 작가는, 전시 <우연한 충돌> <꿈 꾸는 자의 고백> <빛으로 오신 당신의 사랑> 등을 통해 신앙심 어린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는 “많은 크리스천 예술가들이 보이지 않게 활동하고 있는데, 머지 않아 이들의 작업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며 전면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때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기독교 문화 부흥을 예고했다. 저력 있는 예술가, 김학광 작가를 만나 그의 예술세계와 국내 기독교 문화의 미래 전망을 들어본다.

작품 소재는 – In nature, from nature

김학광 작가는 자연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또한 ‘자연으로 가는 길’이었다. 도심에서 벗어나 양정역에 도착해, 차를 타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데까지 가서야 그의 작업실을 볼 수 있었다. 먼저 ‘왜 자연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작가, 미소와 함께 입을 열기 시작한다.


왜 자연인가?

- 아무리 현대미술이 복잡하고 난해하며 해답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미술에는 ‘질서’가 내재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질서를 자연에서 찾는다. 자연에는 어떤 속성, 말하자면 ‘원리’와 ‘질서’가 있는데,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비한 것들이다. 보면 볼수록 이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동경이 생기게 된다. 물론 나에게 있어 그 해답은 ‘하나님’이고.

▲자연에서 건져 올린 소재가, 작가의 손을 거쳐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이지수 기자

특히 관심 갖는 것은 말라 비틀어진 잡풀, 생을 마감한 풀, 이름 없는 괴목, 죽어있는 나무 같은 것들이다. 왜 그런 것에 관심을 갖나 생각해보니, 그것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정말 하찮고 관심 받기 어려운 존재라는 동질감을 느낀다고 할까? 그것들을 화면에 붙이는 등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다.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내가 하나님의 손에 선택되어 그나마 낫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형태와 이미지 자체로서 반하는 것도 있다. 풀이 비틀어진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자체가 시각적으로 아름답다. 또 다이내믹하게 꼬아진 모습이 역동적이고, 마치 최후의 몸부림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로, 자연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전시 ‘성찰된 생명의 질서’ 작품집을 보며) ‘자연의 재현’을 벗어나 순수한 미술적 조형미를 추구했던 몬드리안의 작품이 생각난다. 그러나 조형미 속에서 어떤 율동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전시 '성찰된 생명의 질서' ⓒ이지수 기자

-‘우연’이라는 요소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나는 작업의 50%는 의도대로 하고, 50%는 우연에 맡긴다. 우연을 즐기기도, 때로는 그것과 싸우기도 하면서 설렘과 기대 속에 작품을 만들어나간다.


구체적으로 어떤 우연인가?


–저 작품(작품명 ‘자연은 스스로 노래한다’)에 까만 점이 찍혀 있다. (큰 돌멩이 만한 점). 그건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어떤 물체를 돌돌 말아서 던진 거다. 예상치 못한 위치에 떨어져 물체 스스로 저만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저 작품엔 낙엽이 붙어있지. 그것도 하나씩 붙인 게 아니라, 한 움큼 잡고 뿌린 거다. 우연이 반영된 작품은 인위에만 의한 작품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이러한 ‘우연의 개입’은 자연을 동경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연은, 그것을 받아줄 만한 백그라운드가 있은 후에야 개입된다. 필연 속의 우연인 셈이다. 즉 철저하게 계산된 바탕 위에서 우연적인 것들이 일어나게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책임이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한테 ‘여기선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할 땐, 거기가 안전한 장소라는 판단이 있은 후다. 그래야 아이의 움직이는 동선도 기대감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창작.. 그 동질성에서 오는 창조주와의 교감 

‘창조성’이란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 중 하나이지 않은가. 작업을 하는 매 순간이 창조성을 드러내내는 과정일텐데, ‘창조주의 마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음… 감히 하나님을 얘기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쑥스럽다. 작업을 하다보면 내 생각대로 안 될 때가 많다. 그럴 때 작가는 고민을 한다. 쟤(작품)를 바라보면서 문제를 찾고, 문제가 뭐냐에 따라 그 자리에서 아예 새로 그리기도 하고, 바꿔보기도 하고, 시간을 두고 더 보기도 한다. 작가와 작품이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도 쌍방향적인 소통의 관계에 있음에 감사하다.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 모든 선택권을 인간에게 주셨다. 내가 기다림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듯, 하나님께서도 나에 대해 시간을 두고 ‘네 스스로 고민해보라’며 방치하기도 하고, 어려움 속에 희망을 주기도 하고, 축복하기도 하시는 것 같다. 또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창조 원리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 원리 속에서 창작된 작품이 가장 아름다운 작품일 것 같다.

그러한 교감은 점점 발전하는가?

▲김학광 작가 ⓒ이지수 기자

과거에는 작업을 전투적으로 했다. 물론 전투적인 것이 있어야 미지의 것과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기에 지금도 그런 마인드가 밑바탕에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예전보다 덜 전투적이다(웃음).

예전에 주로 그린 것은 파괴되고 분리된 인간의 심성, 극도의 한계에 다다른 절망적인 인간상, 문명에 대한 회의 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작품 스스로가 나에게 말하는 어떤 메시지, 그리고 외부적인 요소들이 주는 영감들로 인해 작품이 점점 순화돼 갔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아름다움, 상처와 흔적에서 느껴지는 애틋함과 연민이 앞으로 내 작품에서 변하지 않는 요소가 될 것 같다. 인생이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사실, 굉장히 행복하다.

한국 기독교 미술의 미래, ‘희망적이다’

한국 기독교 미술의 역사가 반 세기가 넘어가는데도 저변이 미미하다. 기독교 작가들이 조형성을 간과하고 성경 내용의 서술적 풀이에 그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홍해를 가르는 모세, 예수님의 산상수훈, 구름 탄 신도들 등이 ‘기독교 미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런 작품도 의미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성경 내용을 구체화한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기독교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외부로 나갈 때다. 창조주 하나님이 편협하게 이해된다는 문제가 있고, 미술 작품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조형미’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기독교 미술을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마인드가 구태의연하다. 이상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스스로 포기하고 일차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을 그린다.

세계적인 대가가 신앙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초일류의 작가가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이 나와야 한다. 또 그게 정상적인 것이고.

‘문화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앞으로 한국 기독교 미술계, 넓게는 기독교 문화계는 어떠할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것을 선언하며 활동하는 문화예술가과 연예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희망이 있다. 지금은 표시가 안 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달란트를 꾸준히 계발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와 함께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겸손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때다.

죽기 전에 기독교 미술이 인류의 것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부족하지만 나도 그 중에 한 부분을 담당하고 싶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자존심이다. 굳이 기독교 작가로 분류되기보다, 후에 내 작품이 궁극적으로 연구될 때 ‘저 작가의 작품 원천에는 하나님이 있다’고 발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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