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율법적인 신앙생활과 복음적인 신앙생활 (4)

김승진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명예교수/철학박사)

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서를 어떻게 대할 것이며, 특히 구약의 율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율법은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율법, 특히 도덕적 율법들(Moral Laws)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무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규범(Norm)인가? 십계명과 십일조 헌금 등의 율법들은 복음의 시대에도 계속해서 유효한 것인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제시한다. 글의 내용은 6부로 나누어 전재된다.

V. 도덕적 율법들에 대한 재해석

김승진
(Photo : ⓒ 침례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과 성도들이 유대주의자들(Judaists)의 유혹을 받아, 사도 바울이 핍박을 받으며 증거했었던 복음적인 신앙으로부터 이탈할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아마도 유대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올라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Jewish Christians)이었을 텐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유대의 율법들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할례나 안식일 준수를 비롯해서 구약의 율법들을 지켜야 구원이 완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이단적인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주의"(Galatianism)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는데, 율법주의(Legalism)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제1차 선교여행(행 13장, 14장) 중에 머리에 돌을 맞아가며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전해서 개척해놓은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이 지금 율법적인 신앙(Legalistic Faith)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통탄했습니다. 자신이 그들에게 증거했던 복음과는 전혀 다른 복음(heteron euangelion, 비슷하게 다른 복음이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복음을 의미함-필자 주)을 전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했습니다.

(갈 1:6-8)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도 바울은 매우 흥분한 어조로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면서 이단적인 신앙의 유혹에 교란되어 흔들리고 있던 갈라디아 교회들의 성도들을 엄중하게 책망하였습니다. "어리석도다"라는 말은 "야, 이 바보 천치들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갈 3:1-5)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성서의 책들 가운데 특히 갈라디아서를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나는 갈라디아서와 약혼을 했다"는 말을 남겼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로마서에 비해서 짧은 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갈라디아 교회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흥분된 분노의 어조가, 16세기 당시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를 향해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울분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 당시에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면죄부(Indulgence)를 돈으로 산다든지 선행들로 말미암는 공로(Merit by good deeds)를 쌓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연옥에 머물고 있는 조상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는 오랜 기간의 번민 끝에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sola gratia, sola fide) 얻게 된다는 진리를 갈라디아서에서 발견했습니다. 루터의 뇌리 속에 16세기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가 사도 바울 당시의 갈라디아 교회들과 겹쳐서 보이지 않았을까요? "믿음 플러스 행위"로 구원받게 된다는 가르침이 두 교회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은혜구원(Salvation by Grace)이 아니라 행위구원(Salvation by Deeds), 혹은 율법구원(Salvation by Laws)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 묘사된 사도 바울처럼, 루터는 흥분된 어조로 "오직 믿음"(sola fide)과 "이신칭의"(Justification through Faith)의 복음을 선포하며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어올린 것입니다.

루터는 선행이란 구원받은 자의 삶에 열매로서 결과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만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고 역설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믿음이요, 셋째가 선한 일이라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순서입니다.

(엡 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잘 나서도 아니고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켜 어떤 큰 공로를 세워서도 아니라, 거저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과 칭의의 은혜가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으니(롬 3:27-28), 인간적인 자랑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롬 3:27-28)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오늘날에도 갈라디아 교회들의 성도들을 유혹했던 유대주의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약의 율법들을 강조하며 그것들을 지켜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성령시대, 은혜시대, 교회시대, 종말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의 시대는 이미 종결되었습니다. 지금은 복음의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21절-48절에서 "...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구약의 전통적인 율법적 교훈들을 예수님께서 새롭게 해석을 하셔서 제자들에게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들은 예수님의 마음과 신약성서적 가르침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7-28)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31-32)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 5:33-37)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마 5:38-4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약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마 5:43-48)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신학자들은 이것을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라는 말로 설명을 합니다. 구·신약 성경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입니다. 계시라는 말은 "보여 준다"(reveal, 감추인 것을 드러낸다)는 동사의 명사형 단어입니다. "점진적 계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시간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더 구체적이고 더 선명하게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보여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전에 보여주셨던 것보다 지금 보여주시는 것이 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한 계시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희미하게 그림자처럼 상징이나 모형으로 예언되어 있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invisible God)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요 1:14, 성육신 Incarnation)는 것입니다. 그 분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손수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서두(히 1:1-3)에 "점진적 계시"를 보여 주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히 1:1-3)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필자 주)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신약의 예수 그리스도-필자 주)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런 의미에서 구약은 옛 약속(Old Testament)이고 신약은 새 약속(New Testament)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 등장하는 "율법"(Law)은 어린 아이를 위한 초등학문이었고, 신약에 등장하는 "복음"(Gospel, Good News)은 정식학교에 입학하여 학생이 된 자를 위한 고등학문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몽학선생(초등교사), 후견인, 청지기의 보살핌과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정식학교의 학생이 된 자에게는 그러한 도우미들(즉 율법)이 더 이상 필요 없고, 주 예수 그리스도(즉 복음)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따라 사는 자가 율법을 따르기 위해 뒷걸음질 치는 것은, 이미 자유하게 하는 새 약속을 받았는데 과거의 옛 약속에 얽매여 종(노예)처럼 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성서만을 정경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사역에 관하여 기록해주고 있는 신약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약성경이 없는 성경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구·신약성경 66권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正經, Canon)으로 믿지만, 신약은 새 약속(언약)이고 구약은 옛 약속(언약)이기 때문에, 전자가 후자에 비해서 우선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믿습니다. 구약은 "예언된 약속"(Prophesied Promise)인데 비해 신약은 "성취된 약속"(Accomplished Promise)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독교 성서해석학에서는 "성서해석에 있어서의 구약에 대한 신약의 우선성"(Priority of NT over OT in Biblical Interpretation)이라고 합니다. 10년 전에 했던 약속보다는 1년 전에 한 약속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명확하고 더 확실한 실효성을 갖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침례신학대학의 초대 한국인 학장이셨던 정진황 박사님께서 수업시간에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저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나는 구약성서와 구약신학을 전공하는 구약학자이지만, 나는 구약의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은 신약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 말씀은 성서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뿐 아니라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판에 새겨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구약에 등장하는 도덕적 율법들(Moral Laws) 가운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하게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들도 적지 않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율법이기 때문에 그것을 당연히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십자가의 창을 통해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 율법들을 구약성서적으로가 아니라 신약성서적으로, 유대교적으로가 아니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reinterpretation)을 해야 합니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도덕적 율법들을 예수님의 마음과 십자가 복음과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재해석을 해서 현실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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