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마리아의 찬가(The Magnificat)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9:1-2, 6-7, 요한1서 1:1-2, 5-7, 누가복음 1:3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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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네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이 꿈을 꾸고 천사의 지시를 받아 움직입니다. 마리아는 단지 침묵 속에서 예수님을 잉태합니다. 이와 달리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천사와 만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요셉은 단지 마리아의 약혼자로만 언급될 뿐 침묵합니다.

누가복음은 두 명의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기준에서 볼 때 매우 '비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한 명은 도저히 임신이 불가능한 나이였고, 다른 한 명은 너무도 어린 소녀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엘리사벳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다섯 달 동안이나 숨어 있었다고 했습니다(눅 1:24).

마리아 역시 크게 놀랐습니다.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28, 30)고 했을 때 마리아는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12~13살 된 소녀였습니다. 오늘날 겨우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요셉과는 아직 정혼한 상태에서 아기를 잉태했으니 얼마나 무섭고 떨렸겠습니까? 그런데 천사는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도 늙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했음을 알려주면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눅 1:37)고 선포합니다. 마리아는 지금 무언가 엄청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 1:38).

그리고 그는 즉시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친척 언니가 있는 마을로 한걸음에 달려갑니다. 거기서 둘은 3개월이나 함께 지냈습니다(눅 1:56). 함께 먹고 마시면서 둘은 변해가는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노산과 초산에 대한 두려움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의지하고 대화하고 위로하면서 두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점점 더 선명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언가 놀라운 일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 시간을 보내면서 숨어있던 엘리사벳은 당당해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마리아를 향해 이런 축복의 말이 터져나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 1:45). 드디어 마리아의 마음을 휘감고 있던 두려운 마음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놀라운 찬가가 터져 나옵니다. 저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는]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 성서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찬양입니다.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라틴어로는 이렇게 시작하기에 이 찬가를 우리는 '마그니피카트'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도우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은 단지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처럼 약하고 비천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위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처럼 낮고 천한 사람을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는 모든 찬송 시의 극치에 이르는 놀라운 찬양이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구약성서에도 이와 비슷한 찬양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무엘을 잉태했을 때 부른 노래, 즉 '한나의 노래'입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니]... 여호와는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1, 8).

구약의 한나와 신약의 마리아가 만난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위로하시며 그들을 통해 큰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한 사람보다 연약하여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고전 1:26-29)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오늘날 거룩하게 들리지만 예수님 당시 이 이름은 '미리엄'이라고 불렸고, 철저한 신분사회인 당시에 사람들은 이 이름만 들어도 즉시 그가 비천한 계급의 여성임을 금방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은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그런 천한 여인의 몸에서 나온다는 것이 성탄의 복음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아카펠라 그룹이 부른 "Mary, Did You Know"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마리아여 아셨나요'라는 제목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one day walk on water?" 마리아여 아셨나요? 당신의 아기가 언젠가 물 위를 걸을 거란 걸? Mary, did you know that your baby boy would save our sons and daughters? 마리아여 아셨나요? 당신의 아기가 우리의 자녀들을 구원할 거란 걸?... 아셨나요? 당신의 어린 아기가 맹인에게 광명을 줄 거란 것... 당신의 어린 아기가 그의 손으로 폭풍을 잠재우리란 걸... 당신이 당신의 작은 아기에게 입 맞출 때 당신은 하나님의 얼굴에 입 맞추는 거죠... 마리아여 아셨나요? 당신의 어린 아기가 만유의 주라는 걸? 마리아여 아셨나요?... 당신 품에 잠든 그 아기가 위대한 독생자라는 걸." 하나님께서 어떻게 평범하고 비천한 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는지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가 담긴 유튜브 동영상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이 영상은 2013년에 History channel에서 방영한 10시간짜리 TV 미니시리즈 의 한 장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Z-ZfAlrgJs&feature=youtu.be)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대림절을 뜻하는 라틴어 "Advent"에는 '오심' 혹은 '도착' 외에도 '모험'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모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고 이 땅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위로 올라가는 것, 상승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고, 반면에 낮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옥타비아누스라는 사람은 한 인간이지만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마침내 신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오르고 또 올라 오를 수 있는 마지막 정점, 즉 신의 자리에 올라 그는 거기서 '옥타비아누스'라는 인간의 이름을 버리고 '아우구스투스'라는 신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존엄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영광을 거슬러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사건, 참으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가장 거룩한 분이 황실의 요람이 아니라 더러운 마구간의 구유 위에 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몸을 입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아픔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 달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치욕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이것이야말로 '영광'이라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신비요, 성탄의 복음입니다. 진실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요 1:11)합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약하고 힘없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병들고 외롭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성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성탄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건 하나님의 위대한 모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오시지 않고 연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태어나셨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은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한 대로,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평화의 왕'입니다(이사야 9:6). 온 세상을 비추는 이 빛 안에서 주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복된 성탄절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2018.12.23.)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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