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고 김복동 할머니가 남긴 역사의 십자가

1일 천안 망향의동산에 잠들어....한국 교회 향한 호소 기억하라

comfort

(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해가 1일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됐다

고 김복동 할머니가 천안 망향의동산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1일 오후 망향의동산 장미묘역에서는 고 김 할머니의 하관식이 열렸다.

하관식엔 윤미향 정대협 대표, 고 김 할머니의 동료이자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 이용수 할머니, 그리고 천안지역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 2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고 김 할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슬픈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 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 3:19)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고 김 할머니와의 이별은 깊은 상실감을 안겨준다.

생전에 고 김 할머니는 일본인에겐 관대했다. 지진피해를 당한 일본인에게 구호 성금을 내놓았고, 사죄하겠다며 찾아온 일본인 교수에게 "일본인은 죄가 없다"고 달랬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만큼은 단호했다.

유감스럽지만 고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끝내 받아내지 못했다. 지금 일본은 어떤가? 아베 정권 집권 이후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호시탐탐 넘본다. 이와 함께 과거사 지우기 공작도 착착 진행중이다. 지난 달엔 초계기 근접비행으로 군사갈등까지 일으켰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일본에게만 물을 수 있는가? 역대 한국 정부는 고 김 할머니의 죽음 앞에 책임이 없는가?

1965년 국교 정상화 하면서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와 배상은 유야무야 넘기지 않았던가? 또 정확히 반세기 뒤인 2015년 위안부 동원의 불법성, 그리고 불법의 주체가 일본임을 규정하지 않은 채 12.28 위안부 합의를 밀어 붙이지 않았던가?

한국 교회, 특히 ‘정통'과 ‘주류'임을 자처하는 보수 교회 역시 고 김 할머니의 죽음 앞에 책임이 없는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위안부 합의를 이끈 박근혜 전 정권을 찬양했지 않았던가? 박근혜가 몰락하고 새정권이 들어선 뒤 처음 맞는 광복절에 '우리는 일제의 만행을 용서할 때도 되었다'는, 값싼 용서의 복음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 그리고 한국 정부의 직무유기 와중에 고 김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실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생전에 고 김 할머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단장들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가 위안부 합의 다음 해인 2016년 3월이었다.

당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위안부 합의에 반대해 정의기억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었다. 고 김 할머니는 회원 교단장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더러운 일본 돈 받기 싫어 정의기억재단을 만들고 있다. (국민들이 나서서) 서로가 재단을 만들겠다고 한다. 믿을 데라곤 교회 밖에 없다. 교단장님들께서 협조해 줘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다. 교회가 우리들을 살려 달라."

교회를 향해 ‘살려달라'던 고 김 할머니의 외침은 이제 한국교회가 짊어져야 할 역사의 십자가로 남았다. 교회의 어깨가 실로 무겁다.

comfort
(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해가 1일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된 가운데, 한 조문객이 고 김 할머니의 유해에 허토하고 있다.
comfort
(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해가 1일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된 가운데 한 조문객이 슬퍼하고 있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