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기고] 사마리아 여인의 주체선언(요 4:3-30)

이병학·한신대 신학과 은퇴교수

이병학 한신대 신학과 은퇴교수(전 한신대 신학대학원장)가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도 변함없이 남북의 평화로운 통일을 희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식이 될 수 있는 기고글을 보내왔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민족의 통일운동에서 소외된 여성의 문제를 짚으면서 교회가 남성중심적인 성서해석을 통해 여성의 경험을 배제하는 태도를 보여왔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성중심적으로 해석된 기존의 성서 텍스트를 재해석하며 성서 속 여성의 지위를 재정립한다. 신약학자답게 그는 요한복음 4장에서 나오는 우물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와의 대화를 여성해방적 시각으로 살펴보고 이에 근거해 민족의 통일운동에서 소외된 여성의 해방을 넘어 여성의 주체선언에까지 이른다. 분량상 본 기고글을 총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1. 서론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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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블로그 갈무리)
▲안니발레 카라치(Antonio Carracci, 1583-1618)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최근에 급격한 정세의 변화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민족통일에 대한 희망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통일을 바라는 데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지만, 우리 사회의 조직과 문화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에, 아직도 여성은 여러 면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말해주듯이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잘못 인식되어서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기도 한다.

예수 시대에 이스라엘 땅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원래 한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사마이아인들 사이에는 오랜 분단의 장벽으로 인한 적대감과 혐오감이 있었다. 또한 여성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배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는 로마 제국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제국, 즉 정의, 자유, 평등, 평화, 그리고 생명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그가 12제자를 선택한 것은 와해된 이스라엘 12지파공동체를 회복하고 민족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현상유지를 바라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율법 해석에 항의했으며, 기소와 처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반제국적 설교를 하였으며, 약자와 여성과 연대하면서 그들의 주체성을 회복하여 모두 주체로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행동했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이야기는 오늘날 성차별과 민족분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는 여성의 경험을 배제한 남성 중심적인 관점으로부터 잘못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이야기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읽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한국교회의 성평등 운동과 통일운동을 신학적으로 촉구하고 지원하고자 한다.

2. 차별과 소외로 상처받은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원래 한 민족이었지만,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 왕국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면서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왕상 12:1-24). 아시리아는 기원전 721년에 북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수도인 사마리아를 지배했으며, 반란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여러 타국으로 추방시키고 그 대신에 타민족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으며, 그리고 정책적으로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이주해온 타민족들과 결혼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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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블로그 갈무리)
▲지아코모 프란체스키의 <예수와 우물가의 사마리아여인>

남유다는 바빌론에 의해서 기원전 586년에 멸망했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고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을 순수혈통을 지킨 "거룩한 씨앗"(에 9:2)이라고 여긴 반면에, 남아 있던 사마리아인들을 혼혈족이라고 규정하고 차별했다(에 9:11),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에 사마리아인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제시켰다(에 4:1-3).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은 기원전 400년경에 독자적으로 세겜의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리심 산은 사마리인들에게 신성한 장소이며 또한 축복이 약속된 장소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야곱이 그리심 산 근처에 제단을 쌓았기 때문이며(창 12:7; 33:20), 또한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신 11:29).

그런데 마카비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인 요한 힐카누스(John Hyrchanus)가 기원전 128년에 그리심 산의 성전을 파괴하고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학살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극에 달했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은 예수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불결하게 생각하고 접촉을 피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쓰는 그릇을 같이 사용하지 않고,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으며, 또한 사마리아 여인들을 무시하고 말을 걸지 않았다. 유대에서 출발하여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3일이면 갈릴리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혐오했기 때문에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로 가지 않고 시간이 훨씬 더 많이 소요되는 다른 노선으로 여행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예수는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경유해서 갈릴리로 가려고 한다.

정오 무렵에 예수의 일행은 사마리아의 한 도시인 수가에 도착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장으로 들어갔고, 예수는 혼자서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 여자가 이러한 낮 시간에 물을 긷기 위해서 우물가에 왔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는지는 아직 모른다. 아마도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아무도 오지 않는 이 시간에 물을 긷기 위해서 왔을 것이다. 하여간 목이 몹시 마른 예수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먼저 그녀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그녀의 이러한 반응에는 그녀가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인종과 종교와 성(gender)의 현실이 내포되어 있다. 아마도 목이 마른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으로부터 물을 충분히 얻어 마셨을 것이다. 예수의 눈에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므로 그녀의 두레박으로 물을 마신 후 예수는 자신이 필요한 물에서 그녀가 필요한 물로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가 언급한 "생수"는 오늘날 시장에서 여러 가지 상표를 붙여서 파는 식수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 여자가 "생수"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예수의 정체성을 알아야만, 하나님의 선물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메시아적 대리자이고, 하나님은 예수 안에 영으로 임재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이 바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예수는 그것을 "생수"라고 표현했다.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생수의 선물과 함께 참된 생명의 선물이 결합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 참된 생명의 갈증을 느끼는 자는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그러한 갈증을 해소하고 주체로 변화되어 참된 생명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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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블로그 갈무리)
▲시스토 바달로치오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그 여자는 예수에게 묻는다: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이것은 그녀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묻는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다. 그녀는 목이 마른 예수가 두레박도 없고 우물은 매우 깊기 때문에 스스로 물을 얻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에게 어떻게 물을 긷고자 하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어디서 그러한 생수를 구해서 준다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그녀는 예수가 말하는 생수는 이 우물의 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예수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한 것이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질문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와야만 마땅한 수사학적 질문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에 방랑하는 나그네로 보이는 예수는 야곱과 같은 위대한 조상과는 비교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들의 종교 전통에서 야곱은 그들의 조상이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아브라함이라고 말한다(8:53). 그녀는 야곱이 요셉에게 세겜 땅을 주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참조, 창 48:22). 그 여자가 조상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녀가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이 절대시하는 야곱의 우물의 물을 상대화 시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여자가 위대하게 여기는 야곱의 우물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갈증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녀에게 목마름 때문에 마시는 물이 아니라, 참된 생명에 대한 갈증을 없애 주는 다른 물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말한다. 참된 생명에 대한 갈증은 물을 많이 마시거나 음식을 포식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가 주는 물을 마심으로써 해소된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는 자신이 주는 다른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의 기갈을 해소시키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러한 샘물이 된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한 샘물이 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남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는 생명의 후원자가 될 수 있다.

그 여자가 예수에게 요청한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 여자는 아무리 퍼내어 써도 계속 흘러나오는 기적의 물을 바라지지 않는다. 그녀가 기대한 것은 참된 생명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물이다.

그녀는 정말로 참된 생명을 살고 싶어 한다. 그녀는 성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 주체로 살고 싶어 한다. 그녀는 이제까지 자신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적 조건들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그녀는 남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정오에 물을 길으러 야곱의 우물에 더 이상 갈 필요가 없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생명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물을 주기를 예수에게 요청한 것이다.(계속)

※ 외부 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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