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새해주일 설교] 종교의 혁신(Religious innovation)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본문

창세기 1장 1-5절, 시편 1편 1-6절, 마태복음서 3장 1-12절

[다시 밝아온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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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여러분! 새해가 밝았고 첫 주를 맞이했습니다. 새해 첫날과 첫 주간을 잘 보내셨나요? 올 한해도 우리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 매년 어김없이 한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옵니다. 지난 해 12월 31일에서 새해 1월 1일은 단 하루 차이이고, 실제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우리 사람들은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됩니다. 새해 첫날은 물리적으로 24시간 단 하루이지만, 앞으로 지낼 365일을 모두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왠지 첫날을 잘 보내야 한 해가 무탈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 1월은 한 달 내내 뭔가 다른 달과는 달리 새롭고 신선한 마음이 듭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저는 세 번의 새해를 맞이합니다. 첫 번째는 대림절입니다. 교회력으로는 대림절이 바로 새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림절을 맞이하며 늘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예배를 점검했습니다. 매주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가를 물으며 지난 4년 동안 예배의 구성요소와 순서들을 조금씩 수정 보완했고, 지금의 예배가 기획된 것입니다. 작년 대림절에는 예배에 변화를 주는 대신 예배당 의자를 모두 교체하였고, 그 일이 2019년 10대 뉴스의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의자를 교체한 덕분에 이전과는 다른 송구영신예배를 드렸고, 그런 공간의 작은 변화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맞이하는 두 번째 새해는 바로 양력 새해입니다. 매년 새해의 표어를 정하고, 큰 틀에서 목회의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2019년은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라는 주제로 평신도 중심 사역에 방점을 두면서 생명사랑제자교육과 성서 배움 마당, 그리고 소모임 중심의 변화를 통해 교인들의 주체적 신앙 역량을 키우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2020년에도 이 부분은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올해의 표어는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라."(골로새서 1:10)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2020년에는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뭔가 가시적인 성과들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세상의 분위기를 완전히 나 몰라라 할 수 없고,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사랑 믿음의 공동체는 지난 7년을 보내면서 점점 견고한 공동체로 성장해 왔습니다. 안정적인 구성원들의 예배 출석율, 꾸준한 사회 선교적 활동, 재정규모의 증가 등을 통해 우리 공동체는 착실하게 기초를 다져왔습니다. 매년 교회 전체나 각부서, 신도회가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우리 공동체는 더욱 튼튼해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올해는 더 눈에 띠는 열매들을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첫 주를 맞이하며 주님께 드리는 첫 열매는 바로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입니다. 홈페이지 준비 위원들이 지난 6개월 동안 준비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아직 미흡하지만 오늘 주보에 나와 있는 주소로 들어가시면 여러분도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카페가 우리 교회 내부용이었다면, 누리집(홈페이지)은 이제 우리 교회가 감당하는 다양한 사역들을 인터넷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알림으로써, 우리와 함께 주님의 일들을 감당할 사람들을 초청하게 될 것입니다. 또 전국의 잠재적 내부자(potential insider) 즉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지지하고, 우리의 활동으로 인해 희망을 얻는 이들을 늘리게 될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훨씬 더 세련되고 멋지면서 내용도 알찬 홈페이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고, 다양한 동영상 강의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미디어 선교의 장이 열리면서,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선교에 또 다른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주님께 드리는 두 번째 열매는 바로 우리 어린이/청소년들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진급식을 할 텐데, 교육부 소속 교우들의 폭풍성장을 볼 때마다 우리는 든든하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올해에도 지난해까지 애써온 다양한 사역들을 감당하면서 주님께 열매를 드릴 것입니다. 동시에 내년에는 예배 공간의 계약이 만료되기에 새예배처소 위원회가 수고하고 있는 대로 올해 안에 공간의 변화나 또 다른 대처도 필요하리라 생각하고, 우리와 함께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영혼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서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는 아홉 분의 새 교우가 등록을 하셨는데, 올해는 그 이상의 신도들이 우리와 함께 사역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맞이하는 세 번째 새해는 예상하시겠지만 음력 설입니다. 양력 연말연시는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 목회를 계획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게 되기에 설날을 맞이할 즈음에서야 본격적인 한 해의 목회 준비가 마무리 됩니다. 이런 세 번의 과정을 통해 저는 한해의 목회를 준비하고 실행합니다. 더 세부적인 목회의 일정과 계획은 1월 19일 공동의회와 요람을 통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종교의 혁신]

그런데 우리가 이런 모든 사역을 감당해서 올 해 주님께 열매를 드리려면 우리 구성원 모두의 전폭적인 참여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믿음의 식구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일에 기쁨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신나게 참여하는 교우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교인들의 양성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오늘 저는 설교제목을 "종교의 혁신"이라고 달았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이노베이션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노베이션은 "새로운 방법이나 기술이 도입되어 획기적으로 새로운 국면이 나타나는 일"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죠셉 슘페터(J. A. Schumpeter)가 한 말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거나, 새로운 생산 방식을 도입하는 것,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원자재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 기존의 독점망을 파괴하고 새로운 산업구조를 만드는 것을 가리켜 썼던 것입니다.

경제발전은 상품이든 생산 방식이든 시장이든 원자재든 간에 새로운 것을 개발하여 혁신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레코드 산업은 카세트 테이프로 교체됐고, 카세트 테이프는 CD가 나타나면서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CD도 디지털 음악으로 대체되었는데, 바로 이런 것이 새로운 것을 개발하면서 이전 것은 사라져 버리는 창조적 파괴의 현상이고 이것이 혁신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는 종교분야에서도 혁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전도도 되지 않고, 부흥을 꿈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교회는 이미 텅 비었고, 미국 교회는 비어가고 있으며, 이제 한국 교회도 비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간혹 비정상적인 방식이나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동원해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훼손하고 사회의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 교회의 현실은 마치 공중전화기 같습니다. 공중전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실제로는 없어도 무방한 것이 되어 버렸지요. 교회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생생하게 복음을 살아내는 교회들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늙어가는 모습만이 보이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

그럼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이런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교회는 저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이 땅 위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 속의 교회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큰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습니다. 포스트모던이라든가, 소비사회라든가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소속감 없는 신앙'을 추구합니다. 즉 교회에 반드시 속해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옛 사람들과 다릅니다. 주일 낮에 한 장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형식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모임의 형식과 시간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전 세대의 신앙인들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드리려는 마음이 많았지만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면, 함께 할 마음이 잘 들지 않습니다. 즉 종교체험도 매우 개인화된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의미가 있을 때에만 적극적이 됩니다.

한편 현대사회는 뭐니뭐니해도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소비사회인 것입니다. 세계 무역 대국의 하나가 된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주로 생존을 위해 열심히 생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생산이 곧 생존이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사람들은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며 생산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 경제적 안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더 많이 누리고 더 멋지게 소비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이런 사회에서 팔리는 상품이 되려면 일종의 브랜드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브랜드는 "더 크고,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강하고, 더 성장하고, 더 반짝이고, 더 많은 공간의 여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교회도 이런 브랜드를 따라 갔습니다. 종교적 서비스가 좋은 곳이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하나님께 민감한 교회가 아니라, 성도들의 상황과 필요에만 민감한 교회, 그것을 채워 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흐름을 전혀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비판적으로 시류에 편승할 수도 없습니다. 서양 그리스도교의 위기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재편되는 세속화 속에서 교회됨의 본질과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그리스도교는 사실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차분히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도, 교회 자체는 지난 100년의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때문에 갑자기 덩치가 커진 것에 문제의 근원이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 그리스도교는 자신들의 뿌리로 돌아가면 당면한 과제를 새롭게 돌파할 수 있지만, 한국 교회는 정말 그리스도교가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는 것으로부터 창조적 파괴와 새로운 혁신이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500년전 루터는 교회만 읽을 수 있었던 성경책을 대중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었기에 종교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종교의 혁신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을 어떻게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동서양의 모든 고전을 읽어내고 거기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끌어 올리듯이, 성경 안에서 생명을 살리는 단물을 맛볼 수 있느냐에 한국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암송하고 깊이 생각하라]

그래서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현재와 미래의 세상에서 참된 복음의 본질을 깨우치고 새로운 종교혁신의 주인공이 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늘 읽은 시편에 나온 대로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주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저자 또한 오늘날 우리의 세상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다를지 모르지만 그의 주변에는 악인의 꾀가 넘실댔고, 죄인들의 무리가 가득했으며, 오만한 자들의 유혹이 즐비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런 자리에 들어서지 않고, 앉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의 말에도 따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단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리라는 단단한 각오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피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물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의 첫 일성도 "회개하여라"인데, 여기서 말하는 회개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잘못에 대한 후회나 뉘우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바뀌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묵상이란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 암송할 수 있게 하고, 암송한 뒤 그 말씀을 마음속으로부터 떠올리어 계속 생각하고 되새기라는 것입니다. 암송한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깊이 생각하는 것! 이것이 21세기 현대인들이 지닌 모든 문제들, 즉 불안과 두려움, 헛된 욕망을 추구하면서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는 첫 번째 길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교회의 브랜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깊이 생각하여 올바로 해석해서 살아내는 교인들로 가득한 공동체" 이것이 바로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브랜드가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말씀을 묵상하라는 조언에 이어 곧바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여기에 "심다"라는 말의 정확한 뜻인 "옮겨 심다."입니다. 즉 메마른 곳에 있던 나무를 시냇가로 옮겨 심으면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않고,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품으로 옮겨 심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뉴스와 드라마와 이웃 사람들의 시시한 이야기들을 말하고 소비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고귀하고 높은 뜻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다시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께 인정받는 의인의 길로 가게 되고,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삶으로 예언하는 사람]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즉 세상 사람 모두가 '예'라고 할 때에도 잘 살펴서 '아니오'라고 했고, 세상 사람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 '예'라고 하면서 나아갔던 사람입니다.(衆好之, 必察焉; 衆惡之 必察焉.)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았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에, 당시 가장 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에게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부르면서 엄중한 경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말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인생을 걸고 하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이런 담대한 믿음의 근원에는 창조신앙이 들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는 그 강력한 믿음 속에서 세례요한은 창조적 파괴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 풍조가 홍수처럼 밀려와서, 무척 혼란스럽고, 공허하여 어디에 마음 둘 데를 모르고, 깊은 절망으로 어둠 속을 헤맬 때에 빛을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 주신 그 하나님 체험을 통해서 세례 요한은 어디에 삶의 뿌리를 내려야 하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바른 말 잘해서 당시 유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데도, 이런 세례 요한에게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가 준엄한 경고와 외치는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삶으로 자신의 말을 살아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친 옷을 입었습니다. 그의 음식은 매우 소박했습니다. 그는 자기 배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권위는 세상적 가치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큰 건물, 많은 숫자의 교인, 정치적 영향력, 사회의 권력과의 친밀도와 같은 것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자신 뒤에 오실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그는 자신의 깜냥을 압니다. 자신의 역할은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주님 예수는 불로 모든 악을 소멸하시고, 성령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실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알았고, 하나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혁신은 바로 여기에서 완성됩니다.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것! 거기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여러분 앞에 삶의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 있는 사람의 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은 악인의 길입니다.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여러분 앞에는 여러분을 맞이하려고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매우 달콤해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바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품입니다. 여러분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동시에 두 곳에 안길 수는 없습니다. 한곳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곳은 영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곳은 결국 혼돈과 공허와 깊은 어둠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 곳은 언제나 밝게 빛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품에 안기시겠습니까?

빛은 낮을 주관합니다. 어둠은 밤에 속해 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2020년 밤에는 잘 주무시고, 아침에 깨어 낮에 활동하며 빛으로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새해를 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앞당겨 실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과거에 기대어 안주하기보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비전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게 하소서. 올해 우리 교단은 "화해의 성령이여,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표어로 한해를 보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성령의 힘으로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려고 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 늘 새롭고 전진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예수의 향기가 퍼지며,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게 하소서. 이 사회에 생명사랑교회를 세우신 당신의 뜻을 기억하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올 한해, 우리의 삶이 분주하고 여유가 없을 지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게 하소서. 자신의 일에 취하여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세상이란 벽에 자신을 걸어 놓고 불안에 빠져 있지 않게 하소서.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멀어졌던 발길을 한 걸음씩 더 다가가게 하소서. 막연한 이해를 바라기보다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하여 건강한 사랑을 만들게 하소서. 서로에 대하여 무관심의 소외가 얼마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지 알게 하소서.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더 깊이 깨닫게 하소서.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마음을 같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절망이 보이니 서로의 만남을 감사하게 하소서. 삶의 세세한 생활들을 주고받으므로 서로가 믿고 신뢰하며 살아감의 중요함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늘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서로가 관심을 갖고 사랑의 통로를 만들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늘 건강하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사랑으로 늘 행복하게 하소서. 우리의 사랑이 힘 있고 아름답게 피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당신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고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올해도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영원한 시냇가, 하나님의 품에 우리 마음을 옮겨 심읍시다. 그리하면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입니다.

*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성삼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로운 일들을 감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어가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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