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이 말하는 방언 (4)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역사신학·교회사)

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III. 두 가지 종류의 방언?

2. LT(Language Tongue) 방언과 UT(Unknown Tongue) 방언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그러나 최근에 미국과 한국의 기독교계의 일각에서 "킹제임스버전 유일주의"(KJV Onlyism, King James Only Movement)를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KJV 영어성경이나 그것을 한글로 번역한 KJV 한글성경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원본에 가장 가까운 믿을만한 권위 있는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King James Only movement," Wikipedia, [온라인자료] https://en.wikipedia.org /wiki/King_James_Only_movement, 2019년 6월 10일 접속. "킹제임스버전유일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 1921~2016)입니다. 그래서 럭크만주의(Ruckmanism)라고도 불립니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위치한 펜사콜라성경침례교회(Pensacola Bible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와 펜사콜라성경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파 상으로는 남침례교총회(SBC)보다 더 보수적임을 자처하는 독립근본주의침례교회(Independent Fundamental Baptist)의 한 분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목사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종말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송오 목사라는 분이 <말씀보존학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고, 이 단체에 속한 교회들이 "00 성경침례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역교회의 독립성과 자치권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최근에 번역된 여러 가지 종류의 영어성경들에 대해서는 "부패한"(corrupt) 성경으로 여겨 배척을 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KJV 영어성경도 여러 번역본들 가운데 하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 역시도 번역본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자체가 성경 원본원고(original manuscript)는 아니지 않습니까?

19세기 중반부터 성서신학 분야에서 성서비평학(Biblical Criticism)["성서비평학," 나무위키, [온라인자료] https://namu.wiki/w/%EC%84%B1%EC%84%9C%EB%B9%84%ED%8F%89%ED %95%99, 2019년 6월 10일 접속. 성서비평학(Biblical Criticism)이란 성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교 경전인 성서를 하나의 문헌(literature)으로 간주하고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합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성서를 해석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올바른 성서해석을 위해서는 성서사본들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가 필수적이었기에 본문비평(Text Criticism)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학문분야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마련한 학자는 독일의 성서신학자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이었습니다.]이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성서사본들에 관한 연구에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성과로 인해 원본성경에 거의 가까운 사본들이 어떠했을지를 추측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킹제임스버전 영어성경(1611년)은 이보다 훨씬 이전에 번역된 성경이기 때문에, 이것만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믿음"(too naive belief) 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원본원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필사본 원고들만 존재하고 그것들이 영어와 한글을 비롯해서 각 나라 말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611년 이후에도 수도원들과 동굴들에서 더 오래된 성서사본들이 발굴이 되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현대인들이 읽기 쉽도록 평이하고 익숙한 용어로 자구(字句)들을 수정하여, 새킹제임스버전(New King James Version, NKJV)이라는 이름으로 1982년에 새롭게 출판이 되었습니다["New King James Version," Wikipedia, [온라인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 /New_King_James_Version, 2019년 6월 10일 접속.]. 신약은 1979년에, 시편은 1980년에, 구약은 1982년에 완역이 된 것입니다. KJV 영어성경이 현대적인 영어로 새롭게 번역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킹제임스버전 유일주의"(KJV Onlyism)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번역본으로서의 KJV 영어성경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Donald A. Waite, 「킹제임스 성경의 4중 우수성」 (Defending the King James Bible, A Fourfold Superiority), 정동수, 이권우 역 (인천: 그리스도 예수 안에, 2006).]. 그래서 이 글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성경구절을 영어로 인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지면의 제약 상 KJV과 NIV 두 성경만을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방언과 관련하여 KJV 영어성경에서는 UT방언에 해당하는 단어 앞에 unknown("알지 못하는," "알려지지 않은," "알아 들을 수 없는," "뜻 모를")이라는 말을 괄호 속에 삽입을 하거나 혹은 이탤릭체의 글씨로 표기를 했습니다. "대체로" 단수형으로 사용된 방언이라는 낱말(glossa, glosse) 앞에 unknown이라는 말을 삽입해서 번역을 했습니다. 필자가 "대체로"라는 말을 쓴 것은 단수형 단어로 사용된 경우가 주로 UT방언을 의미하고 있지만, 고린도전서 14장에서 특별한 경우에는 방언이라는 말을 단수형으로 썼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는 LT방언인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희랍어원어성경에서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서 사용된 단수형 단어(glossan)는, 그 문장의 문맥 상 "하나의 언어 혹은 하나의 외국어"(glossan 'echsei, a tongue, a language)를 의미하는 LT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KJV 영어성경에는 이 단어 앞에 unknown이라는 말을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인천 근교에 위치한 독립교회인 사랑침례교회(Charity Baptist Church)를 담임하는 정동수 목사는, KJV 영어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글성경을 출판했습니다[「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전서」 (한영대역관주성경), 발행인 정동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번역 (인천: 그리스도 예수 안에, 2008).]. 그는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단수형 단어(unknown tongue)를 "알지 못하는 언어"로, 그리고 복수형 단어(tongues)를 "타언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알지 못하는 언어"를 그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외국어(unknown foreign language)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설교를 했던 것을 Youtube 동영상을 통해서 들었습니다[정동수, "방언 및 각종 은사 강해 4-5(고전 12-14장),"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tHdq 5QO8Lc, 2019년 3-4월 접속.]. 그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리는 UT방언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unknown tongue이라는 말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외국어 언어일 수도 있지만, 오늘날 오순절 계통이나 은사주의 계통에서 말하는 방언, 즉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혹은 중얼거리는 기도로서의 방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는 방언이라는 단어들이 모두 7번 등장하는데(계 5:9; 7:9; 10:11; 11:9; 13:7; 14:6, 17:15), 다 "언어"(language)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방언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백성"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문장의 구조 상 단수형의 단어가 사용된 경우가 세 번("각 방언," 계 5:9; 13:7; 14:6)이 있고, 복수형의 단어가 사용된 경우가 네 번("모든 혹은 많은 방언들," 계 7:9; 10:11; 11:9; 17:15)이 있습니다.

이렇게 KJV 영어성경에서 단수형으로 사용된 방언(glossa, glosse, glossan, speaking in tongue)이라는 말 앞에 unknown이라는 단어를 삽입한 것은, 아마도 독자들로 하여금 복수형으로 사용된 방언(glossai, glossais, glosson, speaking in tongues)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던 것 같습니다. 복수형 방언이 바로 여러 가지 언어들(외국어들, 말들)을 가리키는 LT방언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고린도전서 14장의 본문들을 주해할 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이라는 말을 UT방언(여섯 번)과 LT방언(아홉 번)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중얼거리는 UT방언을 권장하거나 격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방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성령의 은사들(the gifts of the Holy Spirit)을 주신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 고린도전서 14장을 썼습니다. 바울 사도는 단순히 UT방언의 남용과 오용을 비판하거나 책망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언은 성경적인 성령의 은사로조차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UT방언에 대해서 여섯 번 언급은 하고 있지만 그것을 성경적인 방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참 방언,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베풀어 주신 성령의 은사로서의 참 방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LT방언 즉 제노글로씨아(Xenoglossia)입니다. 사도행전 2장, 10장, 19장에서 세 차례 방언을 언급했던 누가 역시도 복수형 단어인 LT방언(glossais, speaking in tongues)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UT방언 즉 글로쏠랄리아(Glossolalia)는 거짓방언(false tongue)이요 가짜방언(fake tongue)이요 위조방언(counterfeit tongue)입니다. 고린도교회를 혼란과 무질서에 빠뜨린 비성서적인 방언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마귀가 주는 방언"이라고 말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요 8:43-45)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prayer
(Photo : ⓒ베리타스 DB)
▲기도하는 성도의 모습. 위 사진은 해당 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도 유다도 자신의 서신서에서 유사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 1:11-13, 16)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필자의 외손녀 임주은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필자에게 세살된 외손녀 주은이가 있습니다. 시골 전원교회에서 주일예배가 끝나면 교회당에 있는 피아노는 주은이 차지가 됩니다. 자기 엄마가 예배 시에 피아노 반주를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주일예배가 끝난 후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주은이는 피아노 의자로 기어올라 가서, 마치 자기가 피아니스트가 된 듯이 건반을 두드립니다. 손가락으로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건반을 누르기도 하고 심지어 주먹이나 팔꿈치로 건반을 내리치기도 합니다. 주은이의 피아노 치는 모습이 필자에게는 귀엽게 보이지만, 거기에는 멜로디도 없고 박자도 없고 음의 높낮이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뜻과 메시지가 없는 음악입니다. 아니 음악이라고도 말할 수 없지요. 그냥 시끄러운 소리를 낼뿐입니다. 필자는 외할아버지니까 주은이의 피아노 연주실력이 대견해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주은이가 내는 피아노 소리가 단지 시끄럽고 역겨울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에는 음악으로 들려주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메시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은이가 내는 피아노 소리는 음악이 아닙니다. 멜로디(melody)나 화음(和音)이나 음의 고저(高低)나 음의 장단(長短)이 없습니다. 그것에는 음악으로서의 메시지가 없습니다. 이에 비해 주은이 엄마가 찬양반주를 하며 내는 소리는, 비록 가끔 실수로 엉뚱한 건반을 건드려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는 틀림없이 메시지가 있는 음악입니다. 외손녀 주은이가 내는 피아노 소리는 UT방언과 같고, 그 녀의 엄마가 찬양반주를 할 때 내는 피아노 음악소리는 LT방언과 같습니다. 뜻과 메시지가 없는 소리는 UT방언이고, 뜻과 메시지가 있는 말 혹은 언어는 LT방언입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은 김승진 명예교수(침신대/철학박사)가 보내온 연재글 '성경이 말하는 방언'입니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방언'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성도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현실 속에서 성서를 근거로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방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29차례에 걸쳐 연재글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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