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목회서신] 그리운 이들에게

김기석 목사(청파감리교회)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사41:13)

주님의 평강과 은혜를 빕니다.

주님께서 큰 손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분들을 보호해주시기를 빕니다. 해외에 머물고 있는 우리 교우들도 하나님의 각별한 도우심으로 무고하시기를 빕니다. 또 한 주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뉴스를 찾아보며 코로나19의 거친 불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기 원했지만, 그런 기쁜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감염병과 더불어 사는 것을 새로운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왠지 울적해지는 기분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속절없이 꽃잎을 떨군 매화나무가 쓸쓸해 보입니다. 하지만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힘을 알기에 꽃과도 작별이 서럽지는 않습니다. 교회에서 집으로 오가는 길에 자꾸만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을 읊조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번//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서산에는 해진다고/지저귑니다//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뒤도 안 돌아보고 매몰차게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게 영락없는 제 몰골입니다. 까마귀가 저녁이 다가온다고 알리고, 흐르는 물은 따라 오라고 말하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시의 화자가 왠지 정겹습니다. '그리움'이라는 말 때문일 것입니다. 교우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병이 되었나 봅니다. '그리움'은 '그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자꾸 그리다가 결국 마음에 새겨진 게 그리움이 아니겠습니까? 늘 만날 수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우리 일상이 기적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 여러분들과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기쁨을 한껏 누리고 싶습니다.

사순절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에게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라고 요구합니다. 사순절 내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삶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가 이 사태에 직면하여 깊이 숙고한 후에 쓴 글을 읽었습니다. 문명사의 변화를 앞서 예견하는 이의 혜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4항목으로 되어 있는 글인데 그는 이 사태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바를 적확하게 드러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문화, 종교, 직업, 재정적 상황이나 유명도와 상관없이 우리가 다 평등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 질병은 우리를 공평하게 다룬다.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어느 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쌓아올린 거짓 장벽들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일깨워줍니다. 이 바이러스는 여권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질병은 단기간 우리를 괴롭게 함으로써, 이 세상에는 온 생애를 억압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코로나19는 진짜 우리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지 직업일 뿐입니다. 우리가 창조된 것은 그 일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소명은 서로 돌보고, 보호하고,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만 깊이 숙고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의 마지막에 그는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큰 재앙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을 '위대한 교정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삶 전반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상황을 일시에 바꿀 힘은 우리에게 없지만, 신앙과 삶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많은 분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헌금을 보내주셨습니다. 사랑의 곳간이 그득하게 찼습니다. 그것은 수렁 속에 빠져들 듯 낙심하는 이들을 건져 올리는 데 유용하게 사용할 것입니다. 보내주신 마스크 1,000여 매는 쪽방촌, 이주 노동자 돌봄 단체, 홈리스 행동 등에 골고루 보내드렸습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하는 때에 사랑의 등불을 밝히는 이들이 있어 마음 든든합니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하신 교우가 있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이 다가옵니다. 고난을 회피하기는커녕 고난 속으로 기꺼이 걸어가셨던 그리스도의 마음과 깊이 접속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와 믿음입니다. 가물 때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뿌리처럼 어려운 이 시간에 우리 믿음이 더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교우님들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호명함으로 우리가 피차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십시오. 다시 만날 그 날 서로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가슴에 따뜻하고 맑은 기운을 가득 채우십시오.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이 곤고하다 해도 우리 곁을 지키시는 든든한 동행이 계십니다. 그분과 더불어 이 한 주간도 생명의 향기, 평화의 빛이 되어 사십시오.

※ 이 글은 청파김리교회 홈페이지의 칼럼란에 게재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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