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가롯 유다, 21세기 한국에서 부활하다

명성교회 기금 부적절 수령 정황, 세습 원점 재검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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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
명성교회가 수습안마저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8일 5일 오전 장로회신학대학교 세습반대 TF가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앞에서 했던 명성교회 불법 세습에 반대하는 퍼포먼스.

명성교회가 미자립교회 지원 명목으로 낸 2억 원 중 일부가 명성교회 세습에 우호적인 노회 임원진에게 흘러 들어간 데 이어, 노회가 운영하던 미자립교회 후원 기금마저 친명성 행보를 보인 교회를 위해 쓰여졌다는 정황이 서울동남노회(아래 동남노회, 김수원 노회장)가 낸 별지보고서에 드러났다.

기자는 두 차례에 걸쳐 이 같은 정황을 보도했다. 보도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먼저 명성교회가 미자립교회 기금을 낸 시점은 2017년 12월로, 이때는 동남노회가 내홍을 겪던 때였다.

세습에 반대입장을 낸 김수원 당시 부노회장은 노회장 승계가 안 되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던 반면, 임원진은 친명성 인사 일색으로 채워졌다. 이토록 민감한 시기에 동남노회 당시 임원진은 명성교회에 기금 출연을 요청한 뒤 그중 일부를 받아 챙긴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들은 노회가 미자립교회 지원을 위해 운영하는 기금에도 손을 댔다. 노회 내 교회동반성장위원회가 기금을 운영하면서 친명성 행보를 보인 교회만 '골라' 지원금을 탕감해준 것이다. 이 같은 운영은 정작 재정 지원이 필요한 교회에 가야할 기금이 소진되는 결과로 번졌다.

이 같은 별지보고서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명성교회 세습 논란은 개신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논란이 처음 불거진 2017년 10월 이후, 명성교회 세습 관련해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날이면 현장은 세습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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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
장신대 81회 동기 목회자 43명이 명성교회 세습 논란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지난 5일 총회재판국 앞에서 있었던 장신대 학생들의 기자회견.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교단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 학생들의 행동이었다. 장신대 학생들은 중요한 시점마다 기도회를 열고 정말 뜨겁게 기도했다. 이들은 세습 철회를 넘어 한국교회 전반의 갱신을 위해 기도했다. 한 번은 예장통합 총회재판국이 명성교회 세습의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루는 모습을 보이자 입구를 봉쇄하고 재판국원에게 세습을 철회해 달라며 길을 막아서기도 했다.

3년에 이르는 시간 동은 명성교회 세습 논란을 지켜보면서 장신대 신학생들의 신앙적 열정과 간절함에 감동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배 신학생의 간절한 기도가 무색하게 선배 목회자들 중 일부가 친명성 행보를 보이며 부당이득(?)을 챙긴 것이다.

명성교회가 세습을 관철시키기 위해 금권을 동원했다는 의혹은 교단 내 이미 파다했다. 2018년 9월 예장통합 교단 소속 목회자들은 총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회관에 모여 '총회헌법수호를 위한 예장목회자대회'(아래 목회자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모인 목회자들은 일제히 명성교회 세습을 성토했다. 그런데 목회자대회에서 나온 결의문엔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 목회자들은 명성교회 목회자 세습 사건이 하나님의 교회를 개인의 사기업이라 생각하는 무리들이 자행한 재산승계 작업이며 금권으로 총회의 헌법조차 정면으로 허물어뜨린 공교회 유린 사건이고, 또한 '세습'을 '승계'라 강변하며 헌법조문을 비상식적으로 해석함으로 '직접 세습'의 길을 닦은 간사한 혀들이 맘몬에 부역한 반신앙적 사건이라는 공동의 인식에 도달했다.

특히 세습을 이루기 위해 금권을 동원해 공교회와 노회와 총회를 지속적으로 짓밟아 유린해 온 사태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했고, 더 나아가 재판국은 헌법에 따른 올바른 재판을 기대하며 기도해 온 수많은 신앙인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겼다."

명성교회가 세습 관철을 위해 금권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설득력이 아주 없지 않았다. 명성교회의 재정 규모에다 김삼환 원로목사가 세습에 유별나게 집착해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인 <평화나무>는 명성교회 세습 여부가 판가름 날 104회 총회를 앞두고 명성교회 측이 세습관철을 위해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맥락을 감안해 볼 때, 이번 동남노회 별지보고서는 명성교회가 세습을 관철하기 위해 금권을 앞세웠다는 의혹을 증폭시킬 전망이다.

예장통합 교단은 2019년 9월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열린 104회 총회에서 2021년 1월 김하나 목사가 별도의 임명식 없이 명성교회 목사 위임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총회헌법 등 교회법에 의거한 고소고발 등 수습안에 대한 일체의 이의제기도 금지한다고 못 박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명성교회 세습 논란을 ‘불가역적'으로 해결해 준 것 같지는 않다. 104회 총회 직후부터 교단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교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새문안교회는 총회 의사결정 다음 달인 2019년 10월 "104회 총회는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가 제안해 의결한 수습안이 초법적이고 절차상 중대한 흠결이 있으므로 신속히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었다.

여기에 동남노회 별지보고서에서 금권 로비 의혹의 일단이 드러난 이상, 세습 결의는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가롯 유다도 울고 갈 도덕적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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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예장통합 104회기 총회는 26일 오전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 회무에서 2021년 1월 세습을 가능하도록한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회 수습안을 거수로 가결했다.

금권 로비 의혹과는 별개로 이번 동남노회 별지보고서는 일부 목회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앞서도 적었듯 명성교회 세습은 전사회적인 이목이 쏠린 사안이었고, 동남노회는 세습 논란을 두고 내홍을 겪는 중이었다. 이토록 민감한 시점에 친명성 인사들이 재정이 어려운 미자립교회 지원을 명분삼아 명성교회에 기금을 요청하고, 미자립교회 기금을 임의적으로 운영한 건 목회자들의 도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의심하게 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신약성서 사복음서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 중 하나는 가롯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장면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이라도 유다가 당시 종교권력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긴 이야기는 한 번 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마태복음' 저자인 마태는 유다가 받은 뇌물 액수를 '은전 서른 닢'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는다.(공동번역 성서 마태오복음 26장 15절)

유다의 배신 동기를 두고 신학자마다 해석은 엇갈린다. 하지만 뇌물 액수에 대해선 견해가 일치하는 편이다. 은전 서른 닢은 당시엔 송아지 여섯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이라고 한다. 즉, 예수를 배신하고 받은 뇌물 치곤 많은 액수는 아니라는 말이다.

되풀이해 말하지만 명성교회 세습은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에 견줄 만큼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런 심각한 사안이 진행 중인 와중에 명성교회 편을 든 목회자들이 받아 챙긴 돈은 250만원에서 300만원 수준이었다. 쓴웃음이 나온다. 솔직히, 이런 행태는 유다의 배신행위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롯 유다는 예수를 배신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21세기 이 땅에 환생한 유다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롯 유다마저 울고 갈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명성교회는 기금 사용 논란과 관련,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 교회 A 장로는 노동절 휴일 이던 1일 오후 기자에게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명성교회는 수십 년간 미자립교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이번에 동남노회 전 임원이 명성교회 기금을 나눠가졌느니 하는데, 이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지 명성교회를 끌어들이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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