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전 세계 성공회 수장, 트럼프 대통령 신랄하게 비판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 서신 통해 성서 인증샷 '우상숭배' 행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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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출처 = 로이터 통신)
트럼프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백악관 건너편 세인트 존스 성공회 교회 앞에서 성서를 들고 인증샷을 찍은 행태에 미 종교계가 분노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세인트 존스 성공회 교회에서 벌인, 이른바 '성서 인증샷'에 대해 후폭풍이 거세다.

영국 웨일스 출신으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 성공회 공동체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로완 윌리엄스 캠브리지대 막달린대학 학장은 4일(현지시간) 성 클레멘트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트럼프의 성서 인증샷을 강하게 비판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이 서신에서 트럼프의 성서 인증샷을 '우상숭배'라고 비판했다. " 진실이 아닌 곳에 서서, 하느님의 전능함을 증언하는 성서를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연극의 소품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윌리엄스 대주교의 지적이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더 나아가 "인종적인 특권 자체가 오래도록 우상이 된 상황에서, 오래도록 도전받지 않은 제도적 폭력이 자기방어라는 명목으로 이러한 특권의 도구가 된 곳에서, 성서를 마치 부적처럼 들고 선 대통령의 이미지는 아무리 봐도 기이한 행태일 뿐"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주임사제인 주낙현 신부는 윌리엄스 대주교의 서신을 우리말로 번역해 소개했다. 주 신부의 양해를 얻어 윌리엄스 대주교의 서신 한국어 번역본 전문을 아래 싣는다.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 - 2020년 6월 4일]

사랑하는 여러분,

요한 1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우상을 멀리하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께서 서 계신 곳에 같이 서는 일에 있습니다. 그곳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이 펼쳐진 무한한 현실을 바라봅니다. 그곳에 서는 일, 진리에 서는 일은 마치 폭포수 아래 서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은 우리를 감싸고 흠뻑 적시며 우리를 압도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붙잡거나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담아둘 수 없습니다. 이번 주일 우리가 축하할 삼위일체의 삶에 담긴 신비는 이 현실에 깊숙이 빠져드는 신비입니다. 세례야말로 이 신비를 잘 드러냅니다.

이 신비 안에서 산다는 것은 우상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이 언제든 조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는 궁극적으로 사물을 숭배하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행동입니다. 하느님을 자기 소망과 자기 위로의 틀 안에 가두는 행동입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표시와 증언을 이용하여 이처럼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동, 그리고 자신과 우리를 어떤 국가와 계급, 인종으로 규정해 버리는 행동은 너무도 쉽습니다.

지난주, 교회 앞에서 성서를 휘두르던 미국 대통령의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말 그대로,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그는 교회 앞에 서려고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쏘아가며 사람들을 해산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비극적인 분열을 겪고 있는 국가 앞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는 정말이지 수많은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의 행동입니다. 진실이 아닌 곳에 서서, 하느님의 전능함을 증언하는 성서를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연극의 소품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인종적인 특권 자체가 오래도록 우상이 된 상황에서, 오래도록 도전받지 않은 제도적 폭력이 자기방어라는 명목으로 이러한 특권의 도구가 된 곳에서, 성서를 마치 부적처럼 들고 선 대통령의 이미지는 아무리 봐도 기이한 행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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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Episcopal News service)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

그러나 다가올 삼위일체 주일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진리에 우뚝 서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작든 크든, 개인이든 사회든,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우상에 관해 물어야 합니다. 먼 나라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그 나라가 잘못되어가는 꼴이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처지와 위로를 강화하려고 무엇을 해왔던가요? 특권의 독소가 우리 자신의 일관성을 얼마나 해쳐왔던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속한 대학교 같은 특권의 장소에 관해서도 이 문제를 절박하게 물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점에서 우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두려움의 노예라는 인간 조건을 물려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두려움, 승자가 아니면 패자가 되리라는 두려움, 동료 인간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에 여전히 휩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허위의 세계야말로 우리가 세례의 삶을 통하여 구원받아야 할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명은 다시금 계속해서 폭포수 아래로 돌아가 우뚝 서는 일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우리가 쉽게 판단하거나 다 감내할 수 없다는 감각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누구를 손가락질하거나 판단하기보다는, 우상의 모습을 분명하게 폭로하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우상은 참된 세계보다 더 차갑고 편협한 세계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참된 세계는 창조주이며 말씀이며 영이신 하느님의 생명을 영원토록 품은 세계입니다. "이분이 참 하느님이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번역: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주임사제 주낙현 신부)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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