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년에 이를 수 있는 새로운 경지

오강남·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kangnam
(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한국에서 떠도는 말로 노년을 즐기려면 돈, 건강, 친구, 딸, 취미, 할 일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면 살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닐 것 같다. 충분조건은 무엇일까?

달력장만 넘기면서 나이만 든다고 다 훌륭한 노인, 노년을 즐길 수 있는 노인일 수는 없다. 노인이라도 계속 정신적인 성숙의 단계를 오르면서 깨달음의 경지를 깊이 해 나가야 한다. 노인이라도 앞에서 말한 그런 이상적인 노년 상태에서 삶을 즐기고 가정과 사회와 세상을 위해 뭔가 보람된 일을 하려면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일까? 필자 나름대로 지적해 본다.

그리스도교 4복음서에 들지 못한 복음서로 <도마복음>이 있다. 그 복음서 제4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날을 보낸 늙은이도 7일밖에 안 된 갓난아기에게 생명이 어디 있는가 물어보기를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면 그 사람은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된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나중 될 것이고, 모두가 결국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난지 7일밖에 안 된 갓난아기란 유대인의 관례에 따르면 제8일에 할례를 받게 되는데 아직 할례를 받기 이전의 갓난아기란 뜻이다. 할례를 받으면 남녀의 구별이 정해지지만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라서 남녀 구별이 공식적으로 공인되기 전, '둘을 하나로'(22절) 유지하고 있는 완벽한 상태를 말한다. 갓난아기란 이런 하나 됨의 상징이다. <도덕경>에서도 "덕을 두터이 지닌 사람은 갓난아기와 같다."(55장)고 했다.

<도마복음>에서도 <도덕경>에서도 갓난아기란 자연적인 육체적 갓난아기라기보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서 영적으로 갓난아기가 된 사람, 그리하여 남녀, 선악, 미추, 시비 등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만물이 하나임을 새롭게 깨달은 사람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연대기적으로 햇수를 많이 보낸 늙은이들은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었어도 그런 나이 먹음만으로는 완전한 경지에 이르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에게서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한 초(超)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일중다(一中多) 다중일(多中一), 일즉다 다즉일, 상입(相入) 상즉(相卽)의 원리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하나 됨을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만 참 나를 발견한 참 삶을 살 수 있는 늙은이가 된다는 뜻이다.

<장자>에서는 완전한 인간,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첫째는 오상아(吾喪我). 내가 나를 여의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 중심주의적 내가 죽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심재(心齋)다. 마음을 굶긴다는 뜻이다. 이것도 내가 가진 일상적 의식을 없애고 새로운 의식으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셋째, 좌망(坐忘)이다. 앉아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상식적이고 이분법적인 의식을 모두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 셋이 모두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의식의 변화(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노년으로서 참된 인간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런 의식의 변화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의 참 나를 깨닫지 못했다면, 만물이 일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배타주의 옹고집으로만 일주한다면, 의식의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의 고정관념을 절대화 한다면, 그리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어렴풋이라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새로운 의식,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러 거창하게 역사와 사회를 바꾸는 일에 공헌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럴 수는 없다. 도마복음에 의하면 천에 한 사람, 만에 두 사람 정도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날 정도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97% 이상이 문맹이던 시대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문맹율 0%로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배움이 가능한 세상에서는 가마솥에 콩 뛰듯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 독일 신학자 도르테 줼레는 이런 현상을 "심층종교의 민주화"라 했다.

설령 이런 최고의 의식수준에 오르지는 않아도 연륜에 따라 얻은 작은 지혜를 활용하여 작은 일을 통해 뭔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 공항이나 밴쿠버 여러 병원에 가보면 나이 많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안내를 맡아 자원 봉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도 완전한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을지라도 어느 정도 노년에 이를 수 있는 새로운 의식의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도 일단 이정도 수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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