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획일성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 부교수

입력 Aug 03, 2020 08:13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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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옥성득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아파트 전경.

나는 초중고를 1-2층 교실에서 보냈고, 학교 안에 나무가 많았다. 답답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시골 집은 당연 1층이요, 고등학교 하숙집들도 1층 주택이었다. 나와 아파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충 말하면 지금 60세 이하는 고층 건물 세대요 아파트 세대이다. 그래서 사고가 양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몇 평, 몇 등, 몇 층이 중요한 개념 속에 나서 자랐다. 나와 평수가 다르거나 아파트 브랜드가 다르거나 대학이 다르면 선을 긋고 어울리지 않았다. 그 결과 분쟁과 투쟁이 늘었다.

신앙도 점점 아파트 평수로 나누어지고, 교회 자체 브랜드가 개발되고, 신학교나 교단으로 포장된 신앙이 늘었다. 아파트재개발대책위원회처럼 이단대책위원회가 늘어나고, 상대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기술을 가진 자들이 큰 소리 치는 이전투구의 기독교계가 되었다. 다르면 틀리다는 흑백 논리는 획일화된 거주 공간과 교실에서 시작되었다는 건축가들의 분석에 백 번 동의한다.

시멘트로 발라지는 서울 문명과 맞지 않아 30년 전에 탈서울했다. 그리고 지금은 시골이지만 식탁 옆 문을 열고 나가면 소박한 서너 평의 야채밭이 있고 그곳에 몇 그루 과일나무를 심고 사철 열리는 채소나 열매를 따서 먹는다. 그나마 내 생각이 덜 굳었다면 30년 전 탈 서울, 탈-콘크리트-공간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물 안에 앉아서 매일 동일한 하늘만 보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숲 깊을 걸으며 바람결에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지금 큰 소리 치는 몇 사람의 신학자의 말만 추종하지 말고, 100년 전, 1,000년 전, 1,500년 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양하게 말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글을 보자.

공간도 다양하게, 시간도 길게 누리자.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지금의 감옥에서 벗어나, 낯선 시간, 낯선 공간에 가서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자. 하나님의 사랑은 그 높이, 길이, 넓이,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그것을 어떤 작은 틀 안에, 좁은 공간 안에 넣으려는 신학자나 목회자가 있다면 하루빨리 탈출하라. 어떤 신학, 어떤 주의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좁고 둥근 하늘 한 귀퉁이에 만족하지 말고 광대한 진리를 맛보기 위해 탈-우물하자.

※ 이 글은 옥성득 교수(UCLA 한국기독교 부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을 주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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