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가부장제의 성차별은 사이비 종교와 무식함의 소치!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

입력 Aug 13, 2020 10:26 AM KST

오늘날 인류의 첫 번째 여자가 남자의 몸의 일부에서 창조되었다는 신화적인 성서 이야기를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비정상적이고 정신이상적이다. 여성차별에 대한 성서의 심각한 오류와 악용을 가정과 사회에서 철저하게 추방해야 한다. 여성의 존재 이유는 남성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21세기 우주 과학 시대에 가부장제의 성차별은 사이비 종교와 정치의 추악하고 졸렬한 만행이다!

오늘날 현대과학이 발견한 138억 년의 우주진화 역사에서 자연적이고 우연적으로 출현한 자연과 생명과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 종교체제도 통제하거나 왜곡하거나 변질시킬 수 없다. 이 우주 이야기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 과정의 기초이며 이의가 없는 정설이다. 쉽게 말해서,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에서 인간의 생명을 하느님이 여자와 남자 따로 분리해서 만들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더욱이 고등학교 이상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생명에 대해 다윈의 진화론을 필수적으로 가르친다.

한편, 기독교 교회에서는 3천 년 전(창세기 2:2-23)과 2천5백 년 전(창세기 1:1-2:1), 서로 다른 시대에 기록된 두 가지의 창조 이야기를 소중하게 읽는다. 이 이야기들에서 성서 저자들은 하느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한 내력을 소개한다. 그러나 성서 저자들은 우주세계 역사에 대해 과학적인 사실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스러움과 성스러움을 은유적으로 즉 서사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즉 과학적인 이야기 내지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는 것은 대단히 우수꽝스러운 일이며 또한 위험한 일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로 분리해서 만들었다고 믿지 않는다.

오늘 차별금지법이 논란이 되고있는 때에 세속적인 사회와 전통적인 종교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어떻게 인류사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의 깊은 의식 속에서 남성 선호, 여성 혐오의 편견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솔직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편견 의식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성의 의식 속에 들어 있으며 많은 여성들이 이것때문에 고통과 절망 속에 살아간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남성의 편견은 항상 생존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반작용이다. 또한 여성을 향한 남성의 적대감은 근원적인 경쟁과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류 사회 초창기에 여자가 남자만큼 육체적으로 강하지 못했고, 물리적인 힘으로 해야 하는 부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에서 한계를 보인 것이 편견에 대한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따라서 여자는 이류 인간으로 간주되었다. 출산 과정의 위험성과 육아 및 임신 후반기의 타인 의존성 등으로 인해 여성은 열등한 성으로 인식됐다.

인류사 초기의 남성 지배 사회에서는 여자를 재산의 일부인 소유물로 생각했다. 따라서 사회적 압력과 남성의 권력에 의해 여자들은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다. 여자들의 기동성도 크게 제약을 받았는데, 잔인한 사회적 관습으로 족쇄 등도 사용되었다. 여성들에게는 이런 환경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힘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이런 학대를 운명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자들이 말대꾸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것과 물리적으로 취약한 것, 그리고 아내를 어떻게 대하든 아내에대한 법적인 권리가 남성에게 있는 것 등은 고대 사회의 특성이 되었으며, 오늘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종교적 경전에 반영되었다. 남성은 여성의 육체와 생명에 대한 권리를 "하느님이 부여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실질적으로 여성의 유일한 힘은 남성을 유혹하여 육체적 욕망을 일으키도록 하는 여성적 매력뿐이었다. 남성의 육체적 욕망은 일시적이나마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에게 맥을 못 추게 했다. 이것이 오늘까지 여성은 남성들의 성노리개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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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미켈란젤로가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에덴 축출을 그린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

여자들의 남성 유혹 계략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적대감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전통적인 종교체제에서는 이런 적대감이 종교적 덕목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 지난 세월 동안 적어도 기독교에서는 우주의 막강한 지배자이신 하느님은 남성이었고, 지금도 남성이며, 여성을 적대시하고 폄하하고 남성 중심의 삶의 방식을 인간들에게 의도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부족적인 종교는 인간의 본성을 솔직하고 이성적으로 밝히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삼층천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맞춤형으로 왜곡하고 변질시킨다. 그러나 종교는 우리가 가부장제의 죄악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해야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성서에 기록된 여성에 대한 문제의 구절들이 부족적인 생존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가부장제의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고대 성서는 21세기에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이 될 수 없다.

창세기 저자들은 첫 번째 여자가 창조된 내력을 이렇게 기록했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는 짝을 만들어 주겠다. 하느님이 모든 짐승들과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들고, . . . 그 사람(남자)이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창세기 2:18-19)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 .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 .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왔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 . .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창세기 2:20-23)

다시 말해, 여자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만들었지만, 역시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담에게 속한 것이었다. 동물들에게 한 것처럼 아담이 여자라는 이름도 지었다. 여자는 아담의 신분, 영광,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됨을 공유하지 않았다. 아담은 하느님이 만들었다. 여자는 아담의 신체에서 나왔다. 동물들과는 달리 여자는 아담과 동족이었지만 그를 따르고 복종해야 했으며, 이류 인간임을 알아야 했다. 여자의 주된 일은 남자의 보조자 역할을 하고, 그를 기쁘게 해주며, 친구 역할과 성행위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창세기 2:18-23)

또한 바울은 자신의 부정적인 여성관을 옹호하기 위해 창세기의 구절들을 인용했으며, 여성차별을 규정하는 지배적 개념으로 신약성서에 수록되었다. 바울에 따르면 여자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자는 독립적인 인간이 아닌 남자의 보조자로서 고안되었다.(고린도전서 11:8-9) 이 괴상한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성을 구분하고,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매우 자주 사용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고대의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 신에 의해 창조되고 축복 받은 가부장 제도가 마치 하느님의 뜻으로 왜곡됐다.

성차별주의자들은 이런 성서 이야기들은 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차별적으로 존재한다는 편견과 착각에 빠져있다. 남녀의 관계는 우수성과 열등성, 하느님의 남성,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 주인과 종으로 설정되었다. 안타깝게도 성서문자근본주의 신자들은 성서의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을 맹신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목적이 있어 설정한 이런 남녀 질서를 거부하는 것은 하느님의 진노와 징벌을 면치 못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하느님의 말씀에 거부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계획을 파기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를 낳은 유대교의 자궁에서 자라난 기독교라고 불리는 종교체제는 하느님이 주신 여성의 열등성을 잘 보존했고, 이를 의심할 수 없는 거룩한 가설로서 우리 문화에 주입했다. 불행하게도 하느님이 부여한 이런 임무를 받아들임으로써 여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교육받았다. 만약 이를 거역한다면 훨씬 우월한 남자들로부터 벌을 받거나, 이혼을 당사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결정되어, 교육과 직업과 직위와 보수도 남자들의 수준에 미달하며, 투표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들은 문자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와 관련된 말들이 계속해서 떠돌아다니고 있으며,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서 이 이야기는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혼돈에 빠트리고 있으며, 파탄에 이르는 불행한 일들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교회 내부에서 지도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남성 우월성과 여성 탄압의 원동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성들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남성의 만족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강요한다. 여성을 인간 이하의 동물, 이류 인간, 열등 인간, 노예와 전쟁 포로 등으로 폄하하는 종교와 정치는 사이비이며 철저하게 폐기처분해야 하는 사회악의 근원이다.

성서문자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소위 "하느님의 거룩하고 선한 창조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 이하인 여자를 통해 악령이 침입해서 창조 질서를 파괴했고, 따라서 여자는 모든 죄악의 원인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성서의 오류와 악용은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서 추방시켜야 한다. 21세기에 가부장제의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정신병적인 망상이며, 인류의 밝은 미래에 대단히 위험하고 심각한 장애물이다.

우리 인간의 여정은138억 년 전 빅뱅의 우주먼지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광신자들이 주장하는대로 6천 년 전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미리 설계한대로 6일 만에 남자와 여자로 차별적으로 만든 완성품이 아니다. 오늘날 현대 교육의 기초가 되고 있는 과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할 때에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서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고 차별하지 않는다. 오늘날 과학과 교육과 종교와 철학과 경제와 정치의 기초가 되는 우주진화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하여 이 땅 위에 모든 생물종들의 기원에 성차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과 모든 생물종들은 자연적으로 동일한 기원에서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출현했으며, 우주적이고 통합적으로 공생하고 있다. 우리들은 부족적인 고대 종교와 전통을 넘어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더 넓게 확장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은 광대한 우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세계는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는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개체들이다. 오늘 우리의 사회와 종교체제는 이러한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며, 남자와 여자의 분리, 남성의 우월성, 가부장제의 성차별이라는 낡고 추악한 편견을 추방해야 한다.

※ 이 글은 전 지질학자인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외부필자의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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