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이 말하는 방언(11)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역사신학·교회사)

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VI. 고린도교회의 방언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배경설명

2. 고린도교회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49-52 AD) 중에 개척하여 설립한 교회입니다. 당시 그는 고린도에 약 18개월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며 고린도교회를 세웠는데, 그 내용이 누가에 의해 사도행전 18장 1-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가 대체로 기원후(AD) 51년경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부터 추방되어서 고린도로 왔던 유대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이곳에서 만났고,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함께 하며 복음의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관례를 따라 안식일마다 고린도에 있던 유대교 회당(Jewish Synagogue)을 찾아가 일차적으로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섞여 있는 교회였습니다:

(행 18:1-4)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이더라.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고전 18:5)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는데,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고전 18:6) 바울은 고린도 시에서 이방인 전도에 주력합니다(고전 18:6b, "나는......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Titus Justus)라는 사람의 집에 거하게 되었는데, 그의 집은 유대교 회당(Jewish Synagogue) 옆에 있었습니다. 자연히 바울은 회당장과 접촉하고 교제하며 복음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 디아스포라인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예수님을 믿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고전 18:8-11):

(행 18:7-11)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뱁티즘을 받더라.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님을 믿었으니 아마도 그는 유대인들의 공동체인 회당으로부터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스데네(Sosthenes)라는 사람이 새로운 회당장으로 선출이 되어 회당장 직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소스데네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갈리오(Gallio)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행 18:12)-이 구절은 사도행전의 역사성을 입증해 주는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근무했던 기간은 기원후(AD) 51-52이었습니다.["Lucius Junius Gallio Annaeanus," Wikipedia, [온라인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Lucius_Junius_ Gallio_Annaeanus, 2019년 7월 3일 접속.]. 갈리오는 유명한 문인 세네카(Seneca)의 형으로서 로마 황제로부터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 51-52년에 아가야 지방을 다스렸습니다. 바로 이 기간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던 것입니다["Lucius Junius Gallio Annaeanus," Wikipedia, [온라인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Lucius_Junius_ Gallio_Annaeanus, 2019년 7월 3일 접속. 갈리오는 유명한 문인 세네카(Seneca)의 형으로서 로마 황제로부터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 51-52년에 아가야 지방을 다스렸습니다. 바로 이 기간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던 것입니다.]. 이 때 또 다른 소요가 일어났는데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갔다"(행 18:12)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바울-필자 주)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행 18:13)고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이 때 갈리오 총독은 그 소요가 종교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자신이 관여할 것을 거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행 18:14-17)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소스데네 회당장이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얻어 맞은 것을 볼 때 그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바울의 협력자가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에 동행하면서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54년경에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써서 고린도교회에 보냈는데, 인사말에 의미심장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고전 1:1,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형제 소스데네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살고 있던 회당장들(디도 유스도와 소스데네)을 전도하여 그들과 유대인들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고전 4:15a)라고 말하며, 자신이 단지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스승일뿐만 아니라 "영적인 아버지"(spiritual father)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b)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고전 4:14)고 말하면서, 고린도교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도 아버지의 심정으로 "믿음으로 낳은 자녀들"을 사랑으로 책망하고 교화하고 교정할 목적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어느 교회들보다도 많은 문제들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가 비록 자신이 개척하고 설립한 교회이긴 했지만, "육신에 속한 자들"이자 "영적인 어린 아이들"과 같은 교회라며 그들의 미성숙(未成熟, immaturity)함에 대해 토로했습니다: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비록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모두 예수를 믿은 신자들(believers)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 1:2a)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3)고 인사를 하며 고린도전서의 서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했고 성숙되지 못했습니다. 그들 신앙의 비성장과 미성숙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고린도 시와 고린도 주민들의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타락 때문이었고 이교적인 미신행습이 교회로 많이 침투하여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4번 정도 서신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그는 고린도교회 내에서 발생한 음행사건(淫行事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권고를 담은 첫 번째 서신을 보냈습니다(고전 5: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침례교신학연구소 편, 「성서입문」, 463.]. 또한 고린도후서를 쓰기 전에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면서 애통한 마음으로 "눈물의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고후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것이 세 번째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제자인 디도 편에 고린도교회에 보냈는데, 답장도 없었고 디도도 만날 수 없어 마음을 졸였습니다(고후 2:12-13). 결국에는 나중에 디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자신이 보낸 "눈물의 편지"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받아서 읽고는 회개를 많이 했다는 소식을 그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Ibid., 464.].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고(고후 7:5-7, 13), 그래서 그들에게 사랑과 위로와 권면의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네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였습니다:

(고후 2:12-13)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케도냐로 갔노라,"

(고후 7:5-7 ,13)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애통함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제2차 선교여행 중에 고린도를 방문하여 교회를 개척했던 것이 50-51년경이었고, 제3차 선교여행(53-58, AD, 행 18:23-21:26) 중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이 때가 대략 54년경이었다고 본다면, 3-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신앙은 단단한 음식은 커녕 젖을 빨 수밖에 없는 어린 아이 수준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약 18개월 동안 사도 바울로부터 집중적인 양육을 받았지만, 그들의 신앙성장은 바울의 기대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썼을 때 그 교회의 형편에 대해서 "글로에의 집 편"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고전 1:11). 분쟁 이외에도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큰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발견되는 고린도교회의 문제점들을 열 가지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의 분열문제(1:10-2:16), (2) 십자가의 도에 대한 오해(1:18-2:5),

(3) 성령의 계시에 대한 무지(2:6-16), (4) 근친상간의 문제(5:1-13),

(5) 불신 법정에의 송사(6:1-8), (6) 도덕적 태만(고전 6:9-20),

(7) 결혼문제와 이혼(7:1-40), (8) 우상의 제물(8:1-11:1),

(9) 공중예배의 문제(11:2-14:40), (10) 부활에 대한 불신(15:1-58)[조은사람,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교회의 문제점들," [온라인자료] http://blog.daum.net /su7978/231, 2019년 4월 15일 접속.]

특히 아홉 번째 공중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들(gifts of the Holy Spirit)에 있어서는 풍성한 은혜를 입었지만, 그 은사들이 너무나 많이 오용되거나 남용되었기 때문에 교회에 적지 않은 혼란과 무질서가 초래되었습니다. 특히 UT방언을 포함한 은사들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너무나 심각했기에,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세 장씩(12-14장)이나 지면을 할애하여 집중적으로 그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방언의 은사에 관해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 은사가 베풀어진 하나님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 은사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목적으로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사도 바울은 방언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를 대비하면서, 방언 은사의 오·남용(誤·濫用)을 경계하였으며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서 예언의 은사를 더욱 사모할 것을 훈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은사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2장-14장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서해석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비의 심정으로 영적인 어린 아이들과 같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훈계를 할 때, 그들의 자존심을 직접적으로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각별한 배려를 하며 매우 유화적(宥和的)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연약한 부분들을 간접적으로, 풍자적으로, 냉소적으로, 비꼬는듯한 어투로 건드리고 있습니다.

영문학에서는 이러한 표현기법을 "냉소적 표현"(sarcastic expression, satire) 혹은 "빈정거리며 비꼬는듯한 책망"(다이어트라이브, diatribe)이라고 부릅니다[옥성호,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 190-201. 옥성호 목사는 "책망을 칭찬으로 왜곡"이라는 소제목에서 사도 바울의 냉소적 표현, 다시 말해서 반어법적인 풍자를 방언 주창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바울이 UT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을 오히려 칭찬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 때 은사주의운동(Charismatic Movement)에 동참을 하면서 UT방언으로 기도하곤 했던 적이 있다가 그 곳을 뛰쳐 나온 조지 가디너(George E. Gardiner) 목사[조지 가디너(George E. Gardiner, 1919-1984) 목사는 메사츄세츠 주와 오하이오 주에 있는 교회들과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Grand Rapids, MI)에 소재한 갈보리교회에서 13년 동안 담임목사와 설교자로 섬겼습니다. 한 때 은사주의 운동에 몸담았다가 오순절운동과 은사주의운동의 성령론 신학이 비성서적임을 깨닫고 그 곳을 뛰쳐 나왔는데, 현대교회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UT방언을 비판한 「고린도의 재앙」(The Corinthian Catastrophe)이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는, "고린도전서는 분노, 냉소적 비꼼, 질책, 교정, 훈계의 서신이다"(The First Corinthians is a letter of anger, satire, reproof, correction, and instruction)[George E. Gardiner, The Corinthian Catastrophe (Grand Rapids: Kregel, 1974), 16.]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고린도교회가 다른 교회들의 모범이 되었던 교회이기는커녕 다른 교회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할 교회였음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실패했다! 승리 대신에 비극이 있었다! 증언 대신에 수치가 있었다"(But the Corinthian Church failed! Instead of victory, there was tragedy! Instead of witness, there was shame!)[Ibid.].

가디너 목사는 UT방언 체험으로 인한 거짓 행복감(fake euphoria)에 빠져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제 정신을 놓아버리게 되는 위험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토로(吐露)하고 있습니다[Ibid., 55.]. 이와 같은 빈정거리고 비꼬는 듯한 사도 바울의 문학적인 표현은 다음의 성경구절들에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고전 4:8-9)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 4:10-13)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빈정거리는 비꼼의 표현을 방언과 예언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가 가진 문제점의 심각한 실상을 추후에 디모데를 통해서 전해 들은 사도 바울은, 그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거짓 교사들과 사단의 일군들을 향해서 매우 신랄하게 비난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그는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파당(派黨)을 지어 자신이 증거했던 복음과는 전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another Jesus, another spirit, another gospel-KJV, a Jesus other than the Jesus, a different spirit, a different gospel-NIV)을 전하고 있으며, 그들은 광명의 천사를 가장(假裝)한 궤휼(詭譎)의 역군이라고 날카롭게 비난했습니다: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13-15)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속이는 일꾼(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러한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궤휼의 역군), 사탄의 일꾼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 거짓방언을 비롯해서 은사문제에 있어서도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책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후서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수많은 문제들을 지적하고 완곡하게 견책하면서 그것들을 바르게 시정하기 위해서 쓴 교정(敎正)의 서신입니다. 모본(模本)의 서신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었던 심각한 문제들을 사도 바울이 진단해 주고 은근히 비판하여 책망함으로써, 자신들의 문제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 문제들을 잘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서 쓴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서신서들을 써 보낸 이와 같은 근본적인 동기를 올바로 인식하고 있어야, 고린도전·후서와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었던 은사문제를 제대로 잘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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