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성경이 말하는 방언(13)
김승진 침신대 명예교수(역사신학·교회사)

입력 Oct 17, 2020 10:01 AM KST

사도 바울과 누가는 두 가지 종류의 방언을 말하고 있는가?

VII.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에서의 방언

김승진
(Photo : ⓒ 침례교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사 명예교수)

은사문제가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사도 바울에 의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다른 서신서들(로마서 12:6-8, 에베소서 4:11-12, 베드로전서 5:10-11)에서도 은사들에 관한 목록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했던 것은 제2차 선교여행 중이었던 50-51년경이었고, 고린도전서를 썼던 것은 제3차 선교여행 전반기인 54년경 에베소에서였고, 로마서를 썼던 것은 제3차 선교여행 후반기인 57년경 고린도에서였고, 에베소서를 썼던 것은 62-63년경 로마 감옥에서였습니다[침례교신학연구소 편, 「성서입문」, 465, 469, 514. Warren Dowd, "Timeline of Paul's Ministry," Christianity in Vew, [온라인자료] http://christianityinview.com/ paulstimeline.html, 2019년 6월 20일 접속.].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썼던 것은 64년경에 로마에서였습니다[침례교신학연구소 편, 「성서입문」, 612-3. Warren Dowd, "Timeline of Paul's Ministry," Ibid.].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 중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쓴 글인데[고린도전서보다 먼저 씌어진 바울 사도의 최초의 서신들은 데살로니가전·후서인데, 그가 53년경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Warren Dowd, "Timeline of Paul's Ministry," [온라인자료] http:// christianityinview.com/paulstimeline.html, 2019년 6월 20일 접속.] 여기에서만 방언문제가 다루어졌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나 에베소서에서 은사들을 언급하면서 방언이나 방언통역의 은사들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緘口)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역시 베드로전서 5장에서 은사들을 다루면서 방언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 이외에 그 어떤 사도도 신약성서에서 방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그러한 서신들을 쓸 때에는 로마교회나 에베소교회에서 방언으로 인한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고린도교회에서 "중얼중얼 하는 소리로서의 방언"(UT방언 기도) 문제로 인한 분란(紛亂)이 어느 정도 잠재워졌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언어로서의 방언"(LT방언)의 은사가 고린도전서 13장 8절의 말씀("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LT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처럼 점차 자연적으로 그치게 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고린도전·후서 이후에 씌어진 사도 바울의 서신들이나 다른 사도들이 썼던 서신들에서는 은사들의 목록 속에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UT방언에 관해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성경은 오직 고린도전서 14장뿐입니다. 그것도 여섯 번만 언급되어 있고, 이마저도 사도 바울은 UT방언 행습을 비꼬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UT방언 주창자들이 UT방언기도의 유익성을 그토록 강조하며 "하늘의 언어"인 UT방언기도의 은사를 사모하고 받으라고 부추기고 있는데, 사도 바울을 비롯한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고린도전서 14장 이외의 서신들에서 왜 UT방언에 대해 함구하고 있을까요? 만약 그것이 그토록 유익하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바울을 비롯한 다른 사도들도 그들의 서신서들에서 UT방언기도를 하도록 독려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것이 이교신앙의 옛 행습으로서 고린도교회 혼란의 주요인(主要因)임을 비꼬는 투로 비판적으로 지적하였고, 교회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그러한 이교적인 악습(惡習)은 교정되어야 할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그는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서적인 참 방언이란 LT방언이며, 이것도 방언통역의 은사를 가진 자들에 의해 올바로 통역이 되어야만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유익한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통역이 된"(interpreted) LT방언은 예언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LT방언은 사도나 예언의 은사처럼 계시적 은사들(revelatory gifts)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중얼중얼하는 "통역될 수 없는"(uninterpretable) UT방언 기도는 성령의 은사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 믿기 전에 델파이 신전이나 아프로디테 신전 등 이교신전들에서 행하던 옛 사람의 부도덕한 이교적인 신앙행습이라고 본 것입니다.

1. 고린도전서 12장

a. 12장 8-10절

(고전 12:8-10)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은사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12장에서 은사들의 종류를 나열하기 전에 "은사 베푸심의 목적"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여기서 "유익하게 한다"는 말은 주위 사람들과 교회를 유익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사들은 개인의 사적인 유익이 아니라 교회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 14장 4절의 전반부 말씀("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과 명백하게 배치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사도 바울에게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서 서로 상반되는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4장 4절의 전반부 말씀은 그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에서 UT방언 주창자들이 그릇되게 주장하는 내용을 인용하며 비판한 말이고 4절의 후반부 말씀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들의 주장을 도입하고 있는 표현인 것입니다. 예언과 방언을 포함하여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자기의 덕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아홉 가지의 은사들을 열거하면서 영적 은사들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영적 은사들의 다양성(多樣性, Diversity)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도 바울은 그러한 은사들을 주시는 분의 통일성(統一性, Unity)을 먼저 강조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령, 주, 하나님은 같은 분이시며 "한 분"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은사들을 가진 자들로 이루어진 교회 역시 "한 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 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the same Spirit),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the same Lord),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the same God)."

(고전 12:12-13) "몸은 하나(one)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many members) 한 몸(one body)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all) 한 성령(one Spirit)으로 뱁티즘을 받아  (one body)이 되었고 또 다(all) 한 성령(one Spirit)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적인 은사들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뜻대로," "그 분이 원하시는대로" 교회의 지체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선물들임을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 12:11, 18)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자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그러니까 은사들은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이 사모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은사들을 베풀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어떤 공로를 쌓아서 그 보상(補償, reward)으로 은사들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graceful gift)입니다. "은사"(카리스마타, charismata, charisma)라는 말과 "은혜"(카리스, charis, grace)는 동일한 어원을 가진 낱말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면서도 사도행전을 쓴 누가처럼 방언에 관하여 대다수를 복수형 단어(glossai, glossais, glosson, glossois)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단수형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희랍어원어성경에는 복수형으로 "각종 방언들 말함을"('etero gene glosson)입니다. "각종 방언들 말함"(divers kinds of tongues-KJV, different kinds of tongues-NIV)이란 각 나라의 다양한 언어들(외국어들)을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LT방언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 2장에서 기록했던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라고 기록했을 때의 바로 그 복수형 단어(glossais, glosson)를,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에서 그리고 14장의 절반 이상의 경우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들 통역함"('allo de 'ermeneia glosson, the interpretation of tongues-KJV, NIV)이라는 표현에서도 복수형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에서 "UT방언들 통역함"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중얼중얼하는 소리로서의 방언(UT방언)은 통역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본인도 그 의미를 모르면서 뜻과 메시지가 없이 내는 소리(voice)를 어느 누가 통역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인간이 그 뜻도 모르면서 중얼거리는 UT방언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알아 들으실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자신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내는 소리(voice)이기 때문입니다. 통역이란 어떤 의미를 내포한 언어(외국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거나 통역하여 발설해서 그 뜻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방언통역에 관해서는 14장 13절과 27절을 주해할 때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날 UT방언 주창자들은 UT방언의 유익성(有益性)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방언 받는 법"(How to speak in tongue)에 관해서 여러 가지 방법과 기술을 가르칩니다. 심지어는 방언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기도할 때 정상적인 한국말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하라고 권면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기도를 할 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면 자꾸 본능적으로 정상적인 한국말이 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입과 혀가 움직이는대로 소리를 내면서 발성을 하면 방언기도를 하게 된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Youtube 홈페이지에서 "방언기도"나 "방언기도 하는 법"을 치면 이와 유사한 조언이나 권면을 하는 목회자들의 설교들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들을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다윗, "방언기도 받는 방법과 방언기도 하는 법,"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 /watch?v=xZTwksnYWos. 김영현, "방언기도 이렇게 하라!" [Youtube 동영상] https:// www.youtube.com/watch?v=B33JYFBNRNk. 송명상, "방언의 은사를 받는 방법!"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uNBCG6NwzE. 유기성,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는 방언기도를 할수 있습니다,"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 F6wRYqbSFZA 등.].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20번 이상 반복해서 발설하면 방언을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기도를 세게, 빠르게, 크게 할 때(세빠크 기도), 우리의 의지적인 기도가 사라지고 영으로 드려지는 기도가 될 때 방언이 열리게 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이정애, "방언을 받는 방법-성령의 말하심을 따라하라,"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 EfF-5yQcdpc, 2019년 7월 1일 접속. 이정애, "방언기도를 드리는 방법-세게, 빠르게, 크게,"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276iCvhCgI, 2019년 7월 3일 접속.].

고린도전서를 비롯해서 성경 어디에 방언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 이와 유사한 조언이나 권면이 나오던가요? 과연 이렇게 해서 받는 방언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연유한 신적 은사(神的 恩賜, divine gifts)일 수 있을까요? 성경 어디에서도 UT방언 은사를 받는 비법(秘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훈련(訓練)이나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UT방언 은사를 받을 수 있다고도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한 비법이나 훈련이나 연습을 통해서 UT방언 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인간으로부터 연유한 은사라는 사실을 자인(自認)하는 꼴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UT방언 기도 자체를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서 아홉 가지 은사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여덟 번째 "각종 방언 말함"과 아홉 번째 "방언들 통역함"은 LT방언을 말하는 것과 LT방언을 통역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UT방언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사도 바울은 중얼중얼하는 UT방언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성령의 은사로 간주조차 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UT방언을 통역하는 것 역시 성령의 은사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UT방언도 가짜이고 UT방언에 대한 통역도 가짜입니다. 이것을 "신령한" 은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벌거숭이 임금님이 천의(天衣)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직조공들의 거짓 수작(酬酌)에 속아 넘어가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b. 12장 28-30절

(고전 12:28-30)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28절(gene glosson,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diversities of tongues-KJV, those speaking in different kinds of tongues-NIV)과 30절(me pantes glossais lalousin,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do all speak with tongues?-KJV, do all speak in tongues?-NIV)에서 사용된 "방언"이라는 말도 복수형으로 LT방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사들을 어떤 한 사람이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외 없이 어떤 특정 은사를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방언(UT방언)은 천국의 언어이기 때문에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UT방언 주창자들의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UT방언 은사의 유익성을 주장하면서, 그것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은사인 것처럼 강조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은 29절과 30절에서 반복적으로 의문문을 제시하면서 반문하고 있습니다: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필자는 다양한 은사들은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에 은사들 간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구절에서 "첫째는,...... 둘째는,...... 셋째는,......"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이라고 말하면서, 맨 나중에 "각종 방언(LT방언들, gene glosson, 복수형)을 말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와 같은 직분과 은사는 초대교회 당시의 상황에서 교회가 정착되고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은사들에 비해서도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것으로 사도 바울은 간주했던 것 같습니다. LT방언이라고 할지라도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순위에 있어서 맨 나중에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LT방언의 은사가 그 중요도에 있어서 다른 은사들에 비해 가장 뒤떨어지는 은사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30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뜻과 의미가 함유되어 의사전달이 가능한 언어로서의 LT방언을 의미했습니다. 30절에서 "다 방언(LT방언, glossais)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LT방언에 대한 통역, me pantes diermeneuousin)라는 의문문에서 복수형 단어(glossais, speaking in tongue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복수형 단어는 사도행전 2장과 10장과 19장에서 사용된 복수형 단어들과 동일한 단어인 LT방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을 권장하는 한국교회들에서는 다른 여러 가지 은사들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여기서 사도 바울이 언급조차 하지 않는 UT방언 기도의 은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입니다.

29절과 30절에서 등장하는 의문문들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렇지요. 모두 "아니오"가 정답입니다. "다 방언(LT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LT방언에 대한 통역)하는 자이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역시 "아니오"입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은사들을 가질 수 없고, 어떤 은사도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오순절 계통의 목회자들이나 그에 영향을 받고 있는 UT방언 주창자들은 모든 성도들이 UT방언으로 기도하도록 유도할뿐 아니라, UT방언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을 별로 신령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필수적인 요소를 결격(缺格)한 그리스도인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기도원 원장은 "개(犬)도 방언을 하는데,.... 방언도 못하는 주제에,....."라는 막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 목회하는 어떤 부흥사 목사가 미국에 있는 어느 한인교포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하며 UT방언을 강조다가, 마지막날에 방언은사를 가졌다는 참석자들을 한 사람씩 강대상으로 불러내어서는, 그의 방언기도 소리를 듣고 진짜방언인지 가짜방언인지를 분별해 주기까지 하는 것을 필자가 직접 목격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비성경적인 가짜방언(UT방언)를 놓고 진짜와 가짜를 감별(鑑別)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던가 하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선출할 때 "방언 말하기"가 신앙생활에서 그렇게나 중요한 요소라고 여겼다면, 당연히 그러한 은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그 조건으로 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조건이 거론된 적이 없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열두번째 사도를 뽑을 때(행 1:21-28)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와 함께 다녔던 사람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행 1:22)을 조건으로 제시했지, UT방언을 체험한 사람을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최초로 안수집사들을 뽑을 때(행 6:1-6)에도 UT방언 기도를 하는 자가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행 6:3)을 택하자고 했습니다. 또 안디옥교회에서 최초로 선교사들을 뽑을 때(행 13:1-3)에도 "방언을 말하는 사람" 혹은 "UT방언 은사를 체험한 사람"이 그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금식하면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고, 바나바와 사울(바울 사도)을 따로 세워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그들이 방언을 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목회서신들(디모데전·후서, 디도서)에서 사도 바울이 영적 지도자들(장로들과 감독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안수집사들)의 자격을 거론하면서도 "UT방언 기도를 하는 자, 방언체험을 한 자"라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딤전 3:1-7, 8-13; 딛 1:7-9). UT방언의 은사를 체험했거나 가진 자이어야만 집사나 안수집사나 권사나 장로나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매우 비성서적입니다. UT방언 은사를 체험했다는 성도들이 그러한 체험을 하지 않은 담임목사를 신령하지 못한 목사라며 교회로부터 쫓아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UT방언을 하는 자라야 담임목사가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물며 모든 성도들이 UT방언을 해야 한다든지 할 수 있다든지 하는 주장 역시 매우 비성경적이고 반성경적입니다. 성경에 그러한 주장이 기록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8절("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gene glosson, diversities of tongues-KJV, those speaking in different kinds of tongues-NIV)과 30절("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me pantes glossais lalousin, do all speak with tongues?-KJV, do all speak in tongues?-NIV)에서도 복수형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방언은 뜻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 LT방언들(언어들, 외국어들, glosson, glossais)입니다. "각종 방언"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종류의 언어들(외국어들, 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UT방언은 메시지가 없는 중얼거리는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모두 비슷비숫한 소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각종 방언"(divers kinds of tongues-KJV)이라고 표현했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UT방언을 단수형으로 표현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통역 자체가 불가능한 소리(voice)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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