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여자대학의 미래: 뉴노멀의 노멀화

이화여대 김혜숙 총장

아시아대학 여성 총장 네트워크의 장인 제2회 아시아여성총장포럼이 '동북아시아 여성교육혁신 및 여성인재양성 협력 도모'를 주제로 지난달 말 열린 가운데 이 포럼에서 이화여대 김혜숙 총장이 '여자대학의 미래: 뉴노멀의 노멀화'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맡았다. 김 총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팬데믹 이후 변화된 세계에서 사회적 약자는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여성에게도 해당된다"며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 전환과 과학기술 시대변화를 맞아 여성들은 디지털 시대의 언어를 익히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고 여자대학은 여성 생애주기 특성을 고려한 교육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해당 포럼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으로 개최됐으며 아시아지역 약 100여 명의 여성 대학 총장, 부총장, 학장, 처장 및 주최 기관인 유나이티드보드와 이화리더십개발원 준비위원들이 참석했다. 이화여대 측의 동의를 얻어 김혜숙 총장의 기조연설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The Future of Women's Universities: Normalizing the New Nor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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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이화여대)
▲이화여대 김혜숙 총장이 지난달 말 열린 제2회 아시아여성총장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포럼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인간 문명 전환기에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몰고 올 파장은 특히 인간관계의 양상을 바꾸어놓을 것이며 인간의 자기인식에 급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 또한 가상현실, 증강현실이 운위되는 상황에서 급진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한때 지식의 여왕 자리에서 군림했던 인문학, 특히 인문적 지식이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을 지배했던 아시아 전통 안에서의 인문학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인공지능과 포스트 휴먼의 출현으로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포스트 휴먼은 생명의료 기술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변형되거나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증강된 역량을 갖게 된 인간을 말한다. 과연 앞으로 우리 앞에 전개될 기술혁명들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 우리가 전 지구적으로 겪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19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에서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했던 많은 관행과 규범들이 대부분의 사회 영역에서 바뀌게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 방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종교활동과 문화활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차원에서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그 동안 막연히 생각해왔던 기술 기반 미래사회로 자신들이 바로 던져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소위 "untact age"라고 불리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이 정상적인 것이고 무엇이 이례적인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헤겔이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 The rational is the real, the real is the rational"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the rational)이 현실에서 구현되어 인간문화를 생성(the real)하지만 또한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the real)이 이성적인 것이고 합리적인 것(the rational)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코로나 19로 인해 도래한 현실이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어도 그것은 결국 우리가 이해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 비정상으로 다가온 이것이 정상이 되어 더 좋은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하리라는 믿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이제까지의 인간 역사의 전개 과정을 통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우리는 일어난 일, 현실을 다시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고 이미 일어난 일에 기반 해서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가야 하기때문에 이제 팬데믹 이후 세계를 그려보아야 하는 것이다.

1. 팬데믹과 여자대학

코로나 사태는 특히 고등교육 시장에 많은 변화를 촉발 시켰다. 대학에서 원격 교육은 지금껏 교실에서 이루어진 대면 수업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윤추구 사업체를 지향하며 1997년 설립되었으나 지금은 쇠락한 미국의 University of Phoenix 와 같은 대학이 기존 고등교육 체계에 하나의 충격을 주기는 하였지만, 지금과 같은 온라인 수업의 확장은 전혀 다른 가능성을 우리에게 펼쳐놓았다. 온라인 강의가 선택의 여지 없이 일반화되면서 우리는 이제껏 익숙해 있던 교육의 포맷(형식)에 관해 성찰할 수있는 기회를 갖게되었고 한편에서는 온라인 교육의 장점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팬데믹 이후 대학이 대면하게 될 도전 3 가지를 여자대학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온라인 강의의 확산과 경험은 앞으로 대학이라는 제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제 고등교육 시장은 거의 일원화된 시장체제 (one-market system) 으로 변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야구 중계는 거의 전 세계인들이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팬데믹 사태로 벌어진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미국인들이 미국내 야구계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한국의 야구 중계를 시청했다는 것이다. 이제 세계는 경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문화의 많은 영역에서 점점 하나로 수렴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서구의 팝 음악을 차용한 한국의 BTS는 이제 빌보드 차트를 장식하면서 전 지구적 현상(global phenomenon)이 되었다. 문화적 차원에서나 고등교육의 차원에서나 하나의 시장이 작동하지만 그 양상은 다양한 지역(local) 문화의 요소들이 결합 된 것이 될 것이다. 여자대학의 교육 내용(컨텐츠)도 따라서 다양성을 강화해주는 하나의 차별성 있는 지역적인(local)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AR (augmented reality), VR(virtual reality) 기술의 발달, 다양한 교육 solution과 영상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Zoom과 같은 기술의 발달은 교육의 편의성, 공공성을 높이고 값싸고 질 좋은 교육의 전면적인(ubiquitous) 보급을 통해 교육격차를 좁힘으로써 교육 정의(正義)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급한 교육의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이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팬데믹 상황에 따라 온라인 교육이 확산 되었다는 사실이 여자대학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피상적 차원에서 보자면 팬데믹 상황이 여자대학에 대해 특별하게 다른 의미를 만들어낼 것은 없다고 본다. 캠퍼스에 디지털 환경이 잘 구축되고 교수, 학생들이 이 교육 매체에 접근할 수단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다른 남녀공학과 크게 다른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상성을 벗어나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대학 바깥의 여러 가치체계나 일반적 사회규범의 문제가 팬데믹과 연관된 대학의 변화에 투사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온라인 교육의 확산은 여학생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특별한 규범적 사명(normative mission, 여성의 인간화, 나눔 리더십 등등)을 갖고 작동했던 캠퍼스 중심의 여자대학은 그 동력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껏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여자대학 캠퍼스는 여학생들이 일상적 삶을 공유하면서 동료 여학생들과 교류 및 상호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했다. 학생들은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면서 여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면하는 방식을 서로 배우면서 여성의식women consciousness을 확장하고 여성의 주체성subjectivity을 강화하면서 여성 집단지성으로서의 면모를 키울 수가 있었다. 반면 온라인 교육을 통해서는 주로 지식 습득과 온라인상의 토론 진행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대면(face-to-face) 환경에서의 인간적 유대나 집단의식의 성장과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여성의식이 배양될 수 없는 환경 속의 여자대학이 과연 어떤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팬데믹 상황은 여자대학의 운영자들에게 다시금 '왜 여자대학이어야 하는가'의 물음에 정면으로 마주서게 만들고 있다. 만일 팬데믹이 오래 지속되어 온라인 강의 상황이 고등교육의 일반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이화여대와 같이 지식의 최전선에 서있는 종합대학은 여성주의 지식 (feminist knowledge) 생산의 문제를 더 첨예하게 의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치 중립적이지 않은 세상은 여성에게 많은 불평등을 경험하게 만들고 있다. 이 구조화된 불평등은 단지 사회제도 안에만 있지 않고 여성들의 내면과 심리 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치중립을 표방하는 기술은 이런 세상을 다루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순진하다. 그렇다면 단순한 기술이 어떻게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반영하고 나아가 교정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여자대학은 이런 어려운 문제들을 제기하고 해결할 방법을 탐구하고 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성적 관점에서 지식과 기술의 패러다임을 다시 디자인하고 그것을 실험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성주의 지식생산이라고 내가 말한 개념의 내용이다. 남성의 몸과 삶의 경험을 표준으로 한 연구들에 대비하여 여성들의 몸과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연구결과들은 인간 이해를 더 풍부하게 하고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이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들을 산출할 것이라 믿는다.

3) 팬데믹 이후 변화된 세계에 여성들은 더욱 취약해질 것이다. 사회변화는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약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타격을 준다. 그들에게는 변화에 대응할 융통성을 발휘할 만큼의 여유가 없으며 대체로 변화를 기회로 만들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자대학은 더욱더 여성 생애주기(lifelong experience) 특성을 고려한 교육의 방식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생교육 뿐만 아니라 여성 직업인들 대상의 재교육, 기술교육에 좀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생애 단계의 특성에 따른 교육 내용을(컨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가부장 문화 안에서 여성들은 고도의 전문지식 영역보다는 간호사와 같은 특정 직종에 종사한 경우가 많았고 정책결정자보다는 하위직 실무자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4차시대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비되어있지 않으며 그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기 때문에 여자대학은 이들 여성들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언어를 매개로 전개되며 여성들은 디지털 시대의 언어를 익히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2. 문제로서의 '아시아 여성'

왜 지금 아시아 여성인가? 아시아 여성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문명이 처하게 된 상황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성이나, 나이,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모두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상을 누가 정의하고 누가 디자인하는가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발달의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디지털 기술은 여성들에게나 남성들에게나 모두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이 기술발달에 개입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여성들은 새롭게 열리고 있는 이 새로운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여 남성 중심의 옛 세계 질서와 규범이 그대로 재생산되고 반복되도록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가부장적 질서와 가치에 의해 살아왔던 아시아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술의 시대는 옛 질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여성을 종속적 매개로 해서 유지되어온 전통 질서 내의 가족 체계를 변화시키고 아시아 여성의 존재 이유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 기술, 생명공학 등의 발달은 우리가 친숙한 이분법과 범주들을 무력화시키거나 변화시킬 것이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남자와 여자, 정신과 물질,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진리와 환상, 진실과 거짓 사이의 이분법적 경계가 불분명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마저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전까지 철학자들은 이성을 인간의 가장 위대한 특성으로 꼽았었지만 인간 이성을 흉내내고 그것을 능가하기조차 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성이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오히려 인간의 동물적 특성, 울고 웃고 공감하고 감성을 갖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여성이란 무엇인가, 남성이란 무엇인가, 진짜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오늘날처럼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을까?

이제 기술의 발달은 여성에게, 특히 아시아 여성에게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제까지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것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생각과 상상 안에만 존재했던 것들이 인간 선택의 대상들이 되었다. 아시아 여성들에게도 그 어느 때보다도 넒은 선택의 지평이 열린 것이다. 아시아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부장적 가치체계들과 봉건적 정치체계들, 남성 지배 하의 종교와 문화적 실천들이 기술 발달로 인해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시아 여성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포스트휴먼 여성주의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인조인간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신세계를 정의한다.

"인조인간은 유기적 가족의 모델 하에 구성된 공동체를 꿈꾸지 않는다. 이제 그의 꿈에는 오이디푸스적 프로젝트가 없다. 인조인간은 에덴동산을 모른다. 인조인간들은 어른도 모르고 우주를 기억하지도 않는다. 전체성보다는 연결성을 원하며 정치에서는 전위부대 없는 최전선 연합에 자연스레 끌린다. 인조인간의 주된 문제는 물론 국가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군국주의(軍國主義:밀리터리즘)과 가부장 자본주의의 사생아들이란 것이다. 그러나 사생아들은 종종 지나칠 정도로 자기 뿌리에 불충실하다.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어쨌거나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술 그 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화적 습관과 교육을 받았는가에 따라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듯이 인공지능 또한 그것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배웠는가에 따라 다르게 창조될 수 있다.

아시아 여성이 기술의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자기 문화 안에 놓여진 문제들을 직시하고 풀어가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목적을 개개인들이 이루기는 매우 어렵고 공동의 지적 플랫폼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 공동의 플랫폼 안에서 아시아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을 통한 상호역량 강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역량 강화는 비판적 사고능력 함양을 통해 자신이 놓인 역설적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구성하면서 구속하고 있는 여러 신화들과 심리적 기제들을 재정의 또는 재정립해야 한다.

3. 여성 빅데이터 저장고로서의 여자대학

이제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우리 문화의 각 영역에서 많은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관행convention, 관습custom, 규범norms들이 재조정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비일상적이고 이례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오히려 일상이 되는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소위 New Normal의 시대에 여성들이, 나아가 여성들의 집단지성으로서의 여자대학이 과연 여성들의 삶의 편의성에 맞도록 규범을 다시 짤 수 있을 것인가? 규범을 다시 짤 수 있기 위해서 여성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빅데이터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빅데이터 시대를 살고 있다. 구글에서 하는 모든 검색, 우리가 인터넷의 무한한 공간 안에서 잠시 머무는 모든 곳의 모든 흔적은 고스란히 쌓인다. 구글과 같은 회사들은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들을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하고 그로부터 부를 축적해나가고 있다. 노동, 교육, 경제활동, 문화활동, 심지어 종교활동까지 점점 더 많은 종류의 인간행위들이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구글이 제공하는 수단을 이용하고 어떤 식으로든 댓가를 지불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구글이 더욱 더 강력한 힘을 갖도록 그에 정보를 제공하고 그것을 살찌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존은 나보다 더 나의 취향과 욕망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은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에 사로잡혀있으며 이를 벗어나기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지만, 이제 더욱 더 인간의 자유와 개인의 존재가 위협받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내에도 빅데이터가 쌓여가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을 선택하고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한 특정한 선택들을 하고, 교수 및 친구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데이터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이제 대학들은 이런 데이터들을 모아 빅데이터로 만들고 이를 자기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 분석하고 이용한다. 여자대학에는 여학생들이 보이는 여러 행위와 선택의 패턴들을 추출해 낼 수 있는 거대한 빅데이터가 존재하는 곳이다. 이 정보는 여성집단만의 데이터라는 점에서 매우 유니크한 것이다. 대학은 교육의 방향을 정하고 학교의 다양한 정책들을 수립하기 위해 이 빅데이터들을 활용하고 인공지능 기술은 매우 빠르게 우리가 원하는 방책들을 찾아줄 것이다.

인간이 법을 만들었지만 법에 종속되었고, 인간이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컴퓨터가 요구하는 합리성에 종속되었으며 인간이 데이터를 생성시켰지만 그 데이터에 의해 지배당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누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살피고 있는가? 누가 데이터를 컨트롤 하고 있는가?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 여자대학은 비판적 입장(스탠스)를 유지하면서 여성관점에서 빅데이터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는 무색, 무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무엇이 데이터화 되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의도된 것이며 분석은 절대적으로 방법의 선택을 필요로 한다.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는 때에 여자대학 또한 변화를 위한 과감한 선택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대학 자체가 하나의 빅데이터일 수 있지만 데이터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자율성 또한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여자대학의 미래는 그 자율성만큼 열려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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