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한 女목사의 낙태 고백과 교회의 침묵

[김기자의 이슈콕콕] 낙태 문제에 개신교회는 여전히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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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온누리교회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기복 목사가 과거에 자신이 "살인죄를 저질렀다"며 낙태 사실을 고백하는 모습.

한 여성 목회자의 낙태 사실 고백이 낙태법 개정안 이슈와 맞물려 네티즌들 사이에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이기복 목사는 최근 한 대형교회에서 전한 설교를 통해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시139:13~16)이란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하던 중 "과거에 자신이 지은 살인죄"라며 낙태 사실을 고백했다.

이 목사는 이날 설교에서 "사실 이 자리에 서는 데 절대적 용기가 필요했다. 60~70년대에 저도 세뇌당해서 끔찍한 낙태를 행했다. 살인죄를 저질렀다"며 "그게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죄책감과 고통을 말로 다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의 주장처럼 세포덩어리가 아니"라고 했다.

이 목사는 "제가 원망하고 싶은 것은, 그때도 제가 매주 교회를 갔는데, 목사님들이 태아가 생명이라는 것,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늘의 이 영상만 하나 봤어도, 초음파의 심장 소리만 들었어도, 제가 그렇게 무지하고 무식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성경에 나와 있는데, 교회는 침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몰라서, 여러 이유로 낙태했다. 자녀들의 피가 이 땅을 덮었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어떻게 보시겠나?"라고 덧붙였다. 이 목사의 해당 설교 영상이 공유된 커뮤니티 등에서는 상당수 개신교인들이 공감의 뜻을 표하며 낙태 이슈가 피부로 와닿는 문제가 되었다는 반응이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낙태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다. 정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 등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지난 10월 주요 일간지에 낸 광고에서 수정된지 11주된 태아가 손가락을 빨고 있는 모습과 함께 정부의 개정안이 갖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현행법상 낙태 허용 범위인 11주된 태아까지도 생명으로 읽어내고 있다. 개정안은 1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데 낙태의 95.3%가 임신 12주 이내에 이뤄지고 있는 만큼, 가톨릭교회는 사실상 전면 낙태 허용 법안이라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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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해당 일간지 캡처)
▲가톨릭교회가 지난 10월 주요 일간지에 낸 광고

반면 개신교회에서는 낙태 문제, 태아 생명권 등의 이슈에 대해 진지한 신학적 토론이나 성찰이 부족했고 따라서 지금껏 통일된 의견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 교계 연합기구인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은 얼마 전 부랴부랴 낙태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논평을 발표하며 이 같은 낙태 문제에 관한 개신교회의 불일치 문제를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한교총은 당시 "교회는 낙태를 방조한 책임을 회개하며 낙태를 줄이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며 "교회는 낙태가 사실상 전면적으로 행해지는 현실에 눈감고 '낙태가 죄'라는 성경의 진리를 담대하게 가르치지 못하였음을 반성적으로 성찰한다"고 밝혔다.

3일 발표된 진보 개신교 연합기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의 2020년도 인권선언문에는 인간의 기본권, 성적 소수자, 노동자, 양심의 자유 등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낙태 문제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낙태죄가 있음에도 낙태율이 OECD에 가입된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낙태율은 이처럼 높은데 출산율은 OECD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신생아 숫자는 고작 30만 3,100여명에 불과했다. 연간 110만여건의 낙태 횟수와 비교할 때 삼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초라한 수치다.

생명권의 문제에 있어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우선성을 두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태아의 생명에 우선성을 두어야 할 것인가? 긴장 관계 속에 여전히 일치된 의견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개신교회는 언제까지 침묵할 것이며 또 어느 편에 서서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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