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52:7-10, 골로새서 2:6-10, 마가복음 1: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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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오늘은 신년주일입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년주일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의 '왕위 즉위식' 예배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승리의 대관식' 예배입니다. 새해 첫 주일, 우리는 지금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위에 오르시고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선포하는 장엄한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구약(히브리)성서를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의 신관(神觀)은 배타적인 유일신론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애굽기 20:3, 신명기 5:7)는 십계명의 첫 계명처럼, 이스라엘은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아야]"(출애굽기 23:13) 합니다. 여호수아도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여호수아 24:14)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편을 읽다 보면 이런 구절들이 나옵니다.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시편 86:8, cf. 시편 89:6, 138:1). 마치 하나님이 여러 신들 중 하나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2). 하나님이 다른 신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지만 역시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합니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시편 135:5).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지만 비교우위 정도인 것처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고대 근동(近東)의 세계는 수 많은 신들의 세계였습니다. 여러 신들은 때로 협력했지만 더욱 빈번하게 충돌하고 서로 경쟁했습니다. 그리고 신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높은 신이 있었고 낮은 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에서 출애굽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신들 사이에서 승리를 쟁취한 사건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에서 파라오의 군대와 애굽 신들을 무력화시키십니다. 출애굽기 15장에는 하나님의 이 위대한 승리를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1-18절)와 그의 누이 '미리엄의 노래'(20-21절)가 실려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애굽기 15:1)라고 모세의 노래는 시작합니다. 미리암도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애굽기 15:21)라고 소고(小鼓)을 치며 화답합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모세의 노래의 끝은 제18절, 즉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The Lord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입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가장 유명한 합창곡 "할렐루야"의 핵심 가사가 된 바로 그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주께서 영원무궁하도록 왕이 되실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신들을 물리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 되심을 기념하는 위대한 송영인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는 '여호와의 승전가'입니다. 다른 신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 혼돈과 위협에 대한 승리, 악과 죽음의 세력에 대한 승전가입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흔히 인정되던 신들의 복수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우월성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구약성서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이 말하는 것처럼, 모세의 이 장엄한 노래는 '대관식(戴冠式) 시편'이라 불리는 여섯 편의 시편들(시편 47, 93, 96, 97, 98, 99)로 이어져 온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합니다. 대관식 시편들에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들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여호와는 왕,' 즉 여호와가 모든 신들과 왕들의 왕이라는 선포입니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시편 47:6-8, cf. 93:1, 96:10, 97:1, 98:6, 99:1, 4). 한 신학자(Sigmund Mowinckel)의 말처럼, '여호와는 왕이시다'를 '여호와는 왕이 되셨다' 혹은 '여호와는 막(just) 왕이 되셨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 번역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 즉 대관식 시편이 울려 퍼지는 그 예배의 순간에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왕이 되십니다. 이스라엘은 매해 신년기념일(Rosh Hashanah) 예배를 드리는데, 바로 이 예배에서 '대관식 시편'을 낭송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해에도 세상을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분이시며, 그분이 다른 모든 신들을 다스리는 '왕의 왕'이라는 것을 해마다 새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신년기념일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은 자연스럽게 여호와의 '왕위 즉위식'과 '승리의 대관식'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관식 시편의 두 번째 주제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시편 96:10, cf. 98:2, 99:2-3) 온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가 다스리는 질서정연한 세상이 되고 만물은 이런 여호와의 통치를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shaphat, 샤파트)하시리라...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shaphat, 샤파트)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shaphat, 샤파트)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shaphat, 샤파트)하시리로다"(시편 96:10, 13, cf. 98:9). 이 구절에는 하나님의 '정의'(misphat, 미슈파트)와 같은 어근을 가진 '심판'(shaphat, 샤파트)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사용됐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정의와 심판은 동의어로 묶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정의를 실행하고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대관식 시편은 하나님의 정의를 계속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구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능력 있는 왕은 정의(misphat, 미슈파트)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sedeqah, 체테카)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misphat, 미슈파트)와 공의(sedeqah, 체테카)를 행하시나이다"(시편 99:1, 4). 하나님의 정의(justice)와 공의(righteousness)는 하나로 뭉쳐 왕이신 여호와의 통치를 상징합니다. 그러자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즐거워[하며]...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시편 96:11-12)한다고 대관식 시편은 환호합니다.

대관식의 세 번째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가 다른 신들(우상들)의 패배를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며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편 96:4-5). 어떤 사람들은 하늘을 신으로 섬길지 모르지만 시편 기자는 그 하늘조차 하나님께서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선포합니다.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편 97:7). 이제 세상의 신들은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신"(시편 97:9) 하나님,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요 모든 왕의 주재"(다니엘 2:47)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이스라엘은 매해 이렇게 신년기념일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의 왕'으로 모든 신들과 왕들 위에 오르시며 정의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2021년 신년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도 대관식 시편을 가지고 바로 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시편 대관식의 웅장한 선포를 음악적으로 잘 표현한 곡은 한국의 작곡가 류형선이 지은 <주께서 왕이시라>라는 국악 찬송일 것입니다. 의 문수정이 이 노래를 불러줍니다. (음악 1)

우리 하나님께서 왕위에 오르시고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이 놀라운 선포는 기원전 6세기 포로기를 살았던 선지자 이사야에게 이어집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빌론 제국의 무력에 패배한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대관식 시편을 인용하며 이렇게 역동적인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이사야 2:7). 시편 96:10과 공명하는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이 구절 역시 '네 하나님께서 왕이시다' 혹은 '네 하나님께서 막(just) 왕이 되셨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지금 막 바빌론의 권력을 전복시키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시려는 참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관식 예전은 바빌론의 포로기라는 고통스러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갑니다.

또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이 선포는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역에서 중심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의 첫 선포는 '하나님의 나라'(basileia tou teo), 즉 '하나님의 왕권적 통치'(God's Kingly Rule)였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처럼, 예수께서는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말씀하시기를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 1:15)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보내 예수께서 "오실 그이," 곧 메시아인지 묻자,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누가 7:22)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분의 사역(ministry)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실 누가복음 2장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 역시 대관식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천사는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kyrios)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 2:11)라고 선포하며 새로운 왕(메시아)이 탄생했음을 목자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시편 대관식의 선포는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을 통해 앞으로 도래할 궁극적인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미래적 희망으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기를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요한계시록 11:15b)라고 선포합니다. 이 구절은 신약성경 시대에 '바빌론 제국'으로 불리던 로마제국도 결국 패배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렇듯 아주 오래전 '모세의 노래'(출애굽기 15:18)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확신은 대관식 시편, 이사야의 예언, 예수님에 대한 선포와 예수님에 의한 선포,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통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집니다. 이 깊은 신앙의 맥(脈)은 오늘날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제2부의 마지막 합창곡 "할렐루야"를 통해 우리에게 가까이 전해져 있습니다. 이 합창에서 "그가 영원무궁토록[길이] 다스리시리"(He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라는 가사는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왕위 즉위식과 승리의 대관식 축제를 잘 재연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1741년 헨델이 작곡한 영국 오라토리오입니다. 로버스 쇼(Robert Shaw)가 지휘하는 <아틀란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챔버 코러스>의 연주로 이 곡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음악 2)

이 곡을 연주할 때 모든 청중이 기립하는 관습은 이 곡의 런던 초연 때 영국 왕 조지 2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사람들이 따라 일어났다는 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헨델은 이 곡의 필사본 마지막에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느님께 영광)라고 기록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기도 안에는 아주 먼 옛날 모세로부터 시작되어 시편에서 꽃피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갈망이 숨어있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마태 6:10, 13)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통치를 갈망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이 기도를 드실 때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정말로 갈망하십니까? 우리는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십니까? 우루과이 어느 성당 벽에 적힌 주기도문입니다.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일에만 빠져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하나님의 아들딸로 살지 않으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지 마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지 마라, 누군가에게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만 엿보고 있으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주께서 왕위에 오르십니다. 정의와 공의의 오른팔을 쳐드십니다. 무서워 숨는 자 누구이며, 두려워 떠는 자 누구입니까? 산천과 초목이 노래하고 우리의 마음은 기뻐 뜁니다. 비록 세상은 아직 하나님의 다스림에 부합하지 못하지만 '그가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이다'라고 오늘 우리는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우리가 이제 그의 통치 아래 살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거짓 신들, 즉 우리가 신처럼 섬기는 재물과 권세와 명예와 이익과 이데올로기에서 돌이켜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다짐을 의미합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신명기 8:19)고 성서는 경고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왕위 즉위식과 승리 대관식의 뒤늦은 참여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 새해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뜻깊은 신년주일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 한 해에도 만복을 베푸시며 그의 정의롭고 공의로운 오른팔로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그리고 코로나로 고통받는 세계를 지켜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골로새서 2:10)가 되십니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릅니다]"(시편 145:13). 우리 하나님의 통치가, 주 예수의 나라가 이 땅에 마침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20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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