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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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사무엘상 2장 12-17절, 시편 26편 8-12절, 사도행전 26장 19-29절

[진화의 방향을 멈추게 한 코로나]

1998년 퓰리처상을 받은 <총, 균, 쇠>라는 저작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제레드 다이아몬드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고 인류문명의 발전사를 다루면서 앞으로 우리 모두가 공멸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좋은 학자입니다. 예를 들어 2019년에 한국에서도 출판되었던 <대변동>이라는 책에서는 인류가 앞으로 자원고갈의 문제와 불평등, 그리고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각국의 사례를 들면서 자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학자들의 권면에 따라 모든 국가와 기업들은 정책의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의 저작 중에 <어제까지의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고대인들의 문화를 연구하여 현대인들의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책인데 이 책의 프롤로그에 매우 재미있는 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자는 2006년 4월 30일 아침 8시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모르즈비 공항에서 탑승수속을 기다리는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파푸아 뉴기니 섬에는 약 5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었지만, 19세기 초까지도 이 섬은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31년 또는 1933년 호주의 한 광산업자가 파푸아뉴기니의 고원지대를 탐사하러 갔다가 거기에 살고 있는 한 무리의 원주민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고원지대에는 원주민 약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석기를 사용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탑승수속을 기다리던 2006년의 뉴기니와 1931년 호주인들에게 처음 발견되었던 뉴기니의 고원지대를 비교하면서, 여기에 살고 있는 뉴기니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는 수천 년이 걸린 변화를 그 75년 동안 압축적으로 겪었다고 진단합니다. 진화 계통에서 인간이 침팬지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 이후로 거의 600만년 동안 변화가 없었는데, 뉴기니는 어떤 점에서 그 변화가 없던 600만년의 시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문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호주의 광산업자가 처음 원주민을 만났을 때의 두 장의 사진을 보여 줍니다. 그 사진이 제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1931/3년 사진에 등장하는 뉴기니 사람들은 서양인을 처음보고 매우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원주민은 낯선 서양인을 보고 공포에 질려 울부짖기까지 합니다.

이 사진들은 다이아몬드 교수가 말하는 어제의 세계에 살던 인간들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대면했을 때,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지나치지만 어떠한 공포 감정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호의적인 친구와 자신들을 미워하는 적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살았던 원시의 인간들은 친구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공포라는 감정은 기본적으로 생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뇌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부의 상태를 지각하면서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지 아니면 불리한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을 배양하여 왔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낯선 것을 만났을 때, 경계심을 가지고 신경을 곧추세웁니다. 자신에게 위험이 될 것 같으면 크게 세 가지 반응을 하게 되는데, 첫째는 도망가기, 둘째는 공격하기, 셋째는 죽은 척 하기입니다.

온갖 자연재해와 맹수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켜야했던 어제의 인간들도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낯선 것을 맞닥뜨렸을 때 두려움과 공포감이 엄습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지 해가 될 지를 판단해야 했고, 적인 경우 빨리 피하거나 피할 수 없으면 서로 싸워 물리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족간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계속되는 보복 전쟁으로 마을은 황폐화되기 일쑤였고, 이것은 결국 모두가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점점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낯선 것에 공포심을 느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낯설더라도 얼마든지 서로 상관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지금 오늘 우리들은 거리를 활보하며 수없이 낯선 사람들을 지나쳐 가면서도 어떤 공포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한밤중에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나 공포감이 밀려오지, 대낮에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어제까지의 세계 사람들은 그런 우리와 달랐습니다. 인류의 진화 방향은 바로 이렇게 낯선 것에 대한 공포를 줄이고 낯선 사람이나 상황을 만날 때도 오히려 설레고 기대되며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끊임없이 조정되어 온 것입니다. 이 과정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낯선 이들과도 서로 소통하며 협력할 수 있었던 그 힘이 지금의 문명을 만들어 온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터졌습니다. 이것은 지난 모든 생명체들의 진화 방향, 특히 인류가 만들어 온 문명의 방향을 통째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낯선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전처럼 마음 놓고 만나고 함께 했다가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장 믿을만한 가족조차도 바이러스 감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철저하게 마스크 쓰고 손 소독하고 조심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코로나 19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

낯선 이들도 환대하고, 서로 힘을 모아 협력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고, 그리스도교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상황에서는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이런 일들을 해 내야 합니다.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함께 힘을 모았기 때문에 인류는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명의 건설이 인간을 중심에 놓고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을 주변부로 밀어 내었으며, 심지어 이용 도구로만 삼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코로나는 바로 그 지점을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코로나는 계속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새롭게 진화할 것입니다.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들은 대부분 후유증이 있는데, 여러 가지 후유증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피로감이라고 합니다. 이것 또한 저는 큰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인류는 엄청 빨리 달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 좋은 지구별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신나게 창조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만해진 우리들은 우리 외에 다른 존재들, 지구의 생명체들을 너무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했던 것입니다. 이제 바이러스가 인간의 교만을 깨부수고 있고, 그동안 너희들이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을 차분히 앉아서 그것도 모이지 말고 홀로 앉아서 생각해 보라고 계속 우리들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가 터졌을 때,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지금의 상황을 진단했습니다.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 개발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동안 다른 바이러스도 그런 방식으로 퇴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해결책은 최재천 박사가 말한 대로 인류가 단 한 달만이라도 잠시 멈추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인류 전체가 모든 활동을 접고 멈출 때, 바이러스는 숙주를 잃어버리고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또 모든 인류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택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탐욕을 통 크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좀 불편하더라도, 좀 가난하더라도 그것을 견디며 감수하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국가가 모두 나서야 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구 전체가 살아야만 우리 모두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입니다. 이 해결책을 무시하고 백신 개발에만 의존한다면 바이러스 또한 계속 변이를 일으키며 또 다른 방식으로 인류를 위협할 것입니다.

[창조신앙의 회복과 수도원 운동의 일상화]

그리스도인들이 코로나 19 시대를 맞이하여 깊이 묵상하고 계속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창조신앙이며, 또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훈련해야 하는 것은 기도와 노동과 독서로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수도사들의 일상입니다. 구약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은 구원과 창조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갖 자연재해 속에서 위기를 겪으며 살아남아야 했던 인류는 그동안 구원의 하나님을 줄기차게 불러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창조신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인류가 신의 자리에 올라서 유전자 지도를 파헤치고 우주가 운영되는 원리를 알았다고 자만하는 순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의 신비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숙연해져야 합니다. 인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일에 더 몰두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집에 쌓아두고 통장에 넣어 두는 것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에 핀 꽃 한송이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이마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한 점에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도사들은 평생을 수도원에 머물며 얼마 되지 않는 농토를 일구며 평생을 검소하게 살면서 주님의 뜻을 추구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읽었고,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전부 유명한 대학에 가려고 안간힘들을 쓰지만, 대학이라는 것도 바로 이 수도사들이 평생을 노동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는 수도원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서 인간들이 이렇게 흥청망청 쓰고 누리던 때는 없었습니다. 인간의 말초적인 감각을 즐겁게 하려고 온갖 약품들을 복용하고 유희거리를 만들고, 또 광란의 밤들을 보내며 지금처럼 과도하게 환락을 추구하며 살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소비를 찬양하며 마구 쓰레기를 만들면서도 죄책감하나 갖지 않는 인간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 전체를 살리는 그리스도교 운동은 과거 수도원 운동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실천해야 합니다. 크고 높고 많은 것을 지향하기보다 꼭 필요한 것으로 작지만 깊고 적지만 진한 체험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삶의 핵심은 정신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상의 말씀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저지른 악행들에 대한 것입니다. 소나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주관하던 제사장들에게는 오른편 넓적다리와 가슴 고기가 몫으로 주어졌습니다(레위 7:28-34). 이 부분의 고기들은 꽤 좋은 부위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절기마다 수많은 양과 소를 도축해야 하는 제사장들의 수고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평생 고기를 먹는 것조차 힘든 평민들에 비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특권일 수 있는데, 거기에다가 맛 좋은 가슴고기와 오른쪽 넓적다리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의 아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고기 먹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이제는 다른 부위도 먹고 싶어집니다. 살이 세 개 달린 갈고리를 들고 다니면서 냄비나 솥이나 큰 솥이나 가마솥 뚜껑을 열고,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여기 다양한 냄비와 솥을 열거하는 것은 그들의 욕심이 얼마나 과한 것인지를 은연 중 드러냅니다. 실로에 와서 주님께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일들을 당했지만, 제사장의 노고를 생각하며 봐 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삶은 고기는 진저리가 났으니 구워 먹겠다면서 날고기를 요구합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율법의 규정대로 먼저 기름을 태운 다음 가져가라고 했더니 그 말을 무시하고 강제로 빼앗아 갑니다.

제사를 지내는 장소는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엘리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이런 짓들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악행은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성 노동 여성들과도 동침하고, 아버지의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그리고 있는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의 아들들의 행태는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무한 증식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대죄가 있는데, 오늘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그 중 네 가지인 탐식과 탐욕, 탐색과 교만한 모습을 몰아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자식들의 모습이 사실 우리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 맛있는 것, 더 편한 삶,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풍성히 누리려는 욕심이 끝 간 데 없이 치달았기 때문에 지금 인류는 지금의 곤혹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 와중에도 돈에 혈안이 된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부를 증식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함께 나누어서 모두가 공존하는 길보다는 오직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앞에서도 서슴지 않고 그런 일들을 합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

코로나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 이미지 또한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습니다. 신천지와 전광훈, 인터콥의 상주 열방 센터 그리고 최근의 IM 선교회까지. "또 교회냐!"라는 말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계속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라고 하셨는데, 오늘 언론에 등장하는 한국 개신교는 세상의 독이 되어버렸습니다. 왜일까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개신교 일부 세력들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객관적인 눈으로 차분히 살피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외치고, 온갖 거룩한 용어들, 그리스도교가 사용하는 언어들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실천 가치는 늘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IM 선교회의 마이클 조는 코로나 상황에서 2000천명이 넘는 아이들을 모아 집회를 해도 자신들에게서는 한 명도 확진자가 없었다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과학적으로 지켜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바로 신앙의 언어들을 타락시키고 더럽게 물들이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들의 잘못을 깨우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업을 키우는 데만 골몰했던 것입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모든 교회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무지함이고, 또 하나는 탐욕입니다. 탐욕이 정치권력이 되었든, 물질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종교적 명예욕이든 간에 지금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교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곡하고 있고, 신앙을 탐욕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연설과 베스도와 아그립바의 반응, 그리고 참 멋진 사람]

오늘 바울은 유다지역을 담당하던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의 종교체험을 설명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들과 모세 즉 예언서와 율법서가 예언하신 분이며,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의 빛이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부활 이야기를 들은 베스도는 바울이 미쳤다고 조롱하고,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짧은 말로 자신에게 전도를 하느냐면서 반문합니다.

바울과 같은 언변과 지식과 열정과 능력으로도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전하고 보여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1세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과연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를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묻고 찾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사회의 조롱거리가 된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섬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행태가 매우 천박하고 건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를 제대로 믿은 것이 아니라 잘못 믿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8월 7일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부산 감천동에서 신문을 배달하시는 한 할아버지를 소개합니다.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은 1950년대 한국 전쟁당시 피난민들이 몰려와 만들어진 마을로, 산자락을 따라서 집들이 빼곡하고, 그 골목길 사이로 수천 개의 계단이 미로 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 계단을 누비며 달리며 35년간 신문배달을 하시는 오광봉 할아버지의 나이는 당시 무려 82세였습니다. 매일 골목과 계단을 뛰어다니며 신문을 배달하였기에, 몸이 얼마나 날랜 지 30대 젊은 피디도 할아버지를 따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가내 수공업을 하다가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 손가락을 펼 수 없는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400부나 되는 신문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배달하시면서 헤드폰을 끼고 늘 음악을 들으시는데, 듣는 노래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바의 맘마미아부터 경음악, 클래식, 세미 클래식, 교향곡들과 심포니들입니다.

새벽부터 신문 돌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끝나는데, 할아버지는 그 때도 쉬지 않고 동네에 있는 파지들을 모읍니다. 용달차 한 차를 실을 정도 모으면 12만원 정도 벌 수 있는데 그 돈으로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돕습니다. 늘 저녁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시는 할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읽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찍은 PD도 놀라지만 저도 놀란 것은 그 방에 있던 책의 양과 질 때문입니다. 작은 방안이 책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2,230권이나 되었고, 그 종류도 정치, 경제, 역사, 철학 매우 다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책들이 모두 수준 높은 교양서적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는 루브르 박물관 회화를 소개하는 8만 5천원이나 되는 고가의 서적도 있고, 한정판으로 찍었던 친일인명사전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신문 배달로 한달에 90만원 정도 버시는 데 그중 20-30만원을 책값으로 씁니다. 그가 책을 사는 이유는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신을 살찌우게 하고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을 하십니다. 1.4후퇴 때 부산 내려와서 터를 잡고 살았기에 먹고 사느라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셔서 열심히 책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얻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찍는 PD에게 책을 소개해 주시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처음에는 소로우의 월든을 소개해 주시면서 "우리가 얼마나 허무하게 살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책이고, 자연이 얼마나 귀중한 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라고 말씀하시더니, 이어서 PD에게 묻기 시작하십니다.

"PD 양반,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븐이 지은 책 읽어 봤습니까?" "아니요, 안 읽어 봤는데요." "플라톤 전집 41권 중에서 <향연>, <국가>, <파이돈> 읽어 봤습니까?" "못 읽어 봤는데..." "그럼 이건 알겠죠? 몽테뉴 수상록, 읽어 보셨습니까?" "못읽어 봤는데요" "그러면 대화가 안되겠는데요. 정신이 가난하네요"

딸들이 있지만 자식들에게 신세지기 실어서 80이 넘는 노구에도 스스로 일하며 돈을 벌며, 책을 읽으며 소박하게 사시는 할아버지, 그런데 그의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가 가득하고, 그의 정신은 그야말로 풍요로왔습니다. 예수를 따른다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고, 욕심을 부리는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더 참된 삶을 살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어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인으로 살려고 하는 것일까요? 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주님이 보시는 앞에서 우리 삶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그것은 진정으로 참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이 보시는 앞에서 참된 삶을 살아갈 때, 그 때, 많은 이들이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온전히 주님을 경외하게 하여 주소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소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라는 주님의 질문 앞에서 겸손이 머리 숙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떠벌이며 나대는 이들을 잠잠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을 벌하소서.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서 깨우침을 얻게 하시고, 주님의 모든 창조물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상생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체득하게 하여 주소서. 고요히 머물며 주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게 하시고, 그 뜻을 이루는 방법도 새롭게 깨치게 하여 주소서. 거룩한 주일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도 주님의 은총을 누렸사오니 올 한 해도 감사가 넘치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주님 올 한해,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코로나 19의 상황이지만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소서. 동시에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거룩한 영으로 새로운 길을 열도록 우리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주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고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들의 자유는 방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름으로써 참된 자유를 얻습니다. 주님 앞에서 참 자유를 누리시는 한 주 되시길 빕니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주님 앞에서 참된 신앙인이 되고자 애쓰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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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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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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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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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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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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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