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국말하는 외국인들

오강남·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

kangnam
(Photo : ⓒ오강남 교수 페이스북)
▲오강남 교수

1974년도 일본 동경대학에 가서 얼마를 지냈습니다. 그 때 일본 학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외국인 학자들이 유창한 일본 말로 발표하거나 토의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후에 한국에 와서 학회에 참석했는데, 한국에도 러시아에서 온 박노자 교수 같은 분이 훌륭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그런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 학자로 레바논 출신 무함마드 깐수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무슨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 분이 제 옆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제 강사로 등장한 어느 분이 하버드대 새뮤엘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는 그 연사의 강의 내용을 비평하면서 "저렇게 거두절미하고 문맥에도 안 맞게 이야기하면 곤란하지요."하고 제 귀에다 대고 속삭였는데, 그의 말에 외국인 티가 전현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가 만난 외국인 중에 가장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네요."하고 말하니, 그냥 싱긋 웃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본명이 정수일이라는 북한 간첩으로 판명되어 사형 언도까지 받았지만 감옥에 있으면서 이슬람 세계와 동아시아 사이의 문명교류에 관한 연구로 이슬람 연구 대가가 되어 5년 후 특사로 풀려 나오고 복권까지 된 사람입니다.

40여년 전입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그 때는 한국말 하는 외국인이 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었는데, 요즘 한국 TV나 Youtube를 보면 한국말 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래 전 "미녀들의 수다" "비정상 회담," 요즘 하고 있는 "대한 외국인"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말을 너무나 잘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세종학당 한국어대회> <경희대와 연합뉴스 주최 한국말 대회> <전 일본 우리말 말하기 대회> 등을 보았는데, 연사로 나온 젊은 학생들이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어느 경우 눈을 감고 들으면 외국인인지 한국인이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말 하는 것을 보면 일본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처럼 일본인 특유의 "하므니다"라든가 이응(ㅇ) 받침을 어색하게 하는 것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호사카 교수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그의 한국 전문 어휘 구사력을 대단합니다.) 미국에서 온 사람들도 옛날 선교사들이 하던 어색한 한국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영어 농답에, "If you speak two languages, you are bilingual. If you speak three languages, you are trilingual. If you speak one language, you are America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나와있는 미국인들 중 한국말을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이런 농담도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Youtube에서 'awesomekorea'로 검색해보면 한국말을 정말로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으로 몽골, 이란, 타일랜드, 터키, 영국, 중국, 대만, 독일, 인도, 파키스탄, 벵글라데쉬, 네팔, 프랑스, 노르웨이, 핀랜드, 코가서스 3국 중 하나인 조지아, 이집트,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등에서 온 외국인들의 한국어 실력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제가 들어본 이런 나라에서 온 사람들 중에 한국어 뿐 아니라 한국 역사, 문화, 사회 등에도 깊은 조예를 보이는 사람 몇을 꼽으라 한다면 독일에서 온 다니엘, 미국에서 온 타일러, 러시아에서 온 에바를 들고 싶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오네게, 르완다에서 온 피스(평화), 몽골에서 온 이수 같은 이들도 한국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한국 트롯을 한국인처럼 노래하는 미국인 마리아도 특별나고요.

이렇게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잘하는데, 한국어가 세계 여러 언어들 중 가장 어려운 말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Monterey에 있는 미국 군사 언어훈련소(Defense Language Institute) 분류에 의하면 한국어는 영어를 말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중국어 일본어와 함께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제3부류의 언어에 속합니다. 물론 한국인에게는 중국어나 일본어가 비교적 배우기 쉽고 마찬가지로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경우 한국어가 쉬운 언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국어 표기 수단인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쪽에 속하지요.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의하면 한국어 사용 인구가 전 세계에서 14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재미나는 현상은 세계 전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이 2019년에는 180개였는데, 2020년에는 270개로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 대학에서 2006년에서 2016까지 외국어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이탤리어 -27.4%를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은 감소하고 있는데, 중국어 3.3%, 일본어 5.2%, 아랍어 26.3% 증가하고, 한국어의 경우 무려 95.0% 증가했다고 합니다. 2021년 통계라면 한류 덕으로 더 많이 증가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어를 정규과목이나 방과후 과정으로 가르치는 나라가 27개국이고, 이들 중 상당 수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고, 베트남의 경우 한국어가 제1외국어라고 합니다. 한국어가 이렇게 퍼지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 이 글은 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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