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성서는 우리의 거울, 그리고 창문

이화여대 대학교회·이경숙 명예교수

leekyungsuk
(Photo : 사진=지유석 기자)
구약학 권위자 이경숙 명예교수(이화여대)

성경본문

(마태 23:23-25)

설교문

오랜만에 이렇게 대학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7월이면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더욱 기승을 부리니 걱정이 많이 됩니다. 매일 매일이 긴장의 연속입니다. 언제나 끝이 보일런지 그저 암담한 심정이지만 우리는 이 시기도 잘 견디어 내야 합니다. 서로 조심하고, 방역에 협조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차분히 숙고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만 오늘 전할 내용은 조금 무거운 내용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설교를 믿겨주신 장윤재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목사님의 짐을 나누어 진다는 생각으로 지난 1년 반 정도의 코로나시기를 겪으면서 생각했던 바를 여러분과 잠시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깊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느끼시겠지만 우리 인류가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될 것이라는 깨달음입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현상 이외에도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해서 매일 몇 번씩 비를 맞으며 살게 된 현실, 그리고 캐나다의 기온이 48,6도까지 올라가 800여명이 사망하는 상황 등등 인간이 저지른 환경파괴의 죄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욕심도 소비도 줄이는 삶의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반적인 깨달음 이외에 코로나시기를 겪으면서 저 개인에게 절실하게 닦아온 문제들이 또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코로나시기를 겪으면서 보여준 우왕좌왕하는 일부 기독교 교회의 맹목적인 종교적 열정에 대한 우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수차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간단히 지적만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그러나 아까 읽어드린 마태 복음 23장 23절에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종교적 의식 즉 예배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정의와 긍휼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종교는 사회에 통용되는 상식이나 지식, 지혜와 함께 우리 사회에 순기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 결국 사회에 봉사하고 공헌하는 것이라고 잠언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잠언 2:1-5)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일반 상식을 무너트리거나 거부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성서를 빌미로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비상식적 내용을 그대로 우리 상황에 적용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성서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되는 내용으로는 먼저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적들에 대한 학살 및 증오에 관련된 내용이 묵시록이나 종말론 많이 나옵니다. 이 구절들은 본래 이스라엘의 국가와 종교 자체를 말살하려고 했던 이방민족들과 싸울 때 적들을 향해 외친 절규였습니다.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서 국가와 종교를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민족 생존의 몸부림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의 내용을 평화 시에 개인적 적대자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 다음으로 저를 심히 놀라게 한 사건은 공군의 여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성추행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저를 심히 분노케 합니다. 제가 학교에 재직할 때 ROTC 등 여성이 군대로 진출해야 된다고 주장했었고 또 제자가 여군이 된 경우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3월 2일에 있었던 성추행 사건, 그리고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자고 이리저리 호소해 보던 이중사가 5월 21일에 목숨을 끊기까지 그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정말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중사 사건이 커져서 막 조사를 하고 있는 과정에, 다른 공군의 중령이 다른 여성 공군 대위를 성추행했었던 소식이 전해졌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이 알려져서 6월 28일 "성폭력 피해 특별 신고 기간"에 성범죄 조사가 수사되고 있는 과정 중에 국방부의 한 준장이 소속부대 여성을 성추행 했다는 소식이 또 들려 온 것입니다. 삼군 중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개방적인 병영문화"가진 것으로 알려진 공군에서도 이렇게 계속해서 성추행과 이를 은폐하고 무시하고 실제로는 끝없는 2차 3차 가해를 가하는 것을 보면서 아까 읽어드린 마태복음23장 25절의 너희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구나" 하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2018년부터 서지현 검사 사건 이후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여성들이 성추행과 성폭력을 고발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 정치가들도 고발 되었구요. 그러자 곧 반미투 운동을 벌이는 남자들이 늘어나서 소위 백래쉬 운동 즉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남성들의 여혐운동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런 성추행 사건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공군에서 있었던 이중사 성추행 사건 자체는 놀랍습니다만, 이를 관리해야할 수많은 부서들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은폐와 회유에만 힘썼다는 사실이 더욱 분노케 합니다. 직속 상관도 있었고, 군사 경찰(구 헌병대), 양성평등센터, 성고충상담관, 국선변호사고 모두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허울 뿐이고, 이중사에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책임만 모면하려고 했습니다. 아무도 자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살인을 한 셈입니다. 심리적인 살인, 감정적인 살인, 경제적인 살인 등 우리 이웃의 살아갈 의욕과 희망을 빼앗는 광범위한 행위를 살인행위로 간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공군의 양성평등 담당자들은 참모총장까지 모두 살인죄에 가담한 것입니다.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살인도 했고, 간음도 했고, 거짓 증언도 했고, 남의 몸도 탐했습니다. 십계명의 계명을 네 개나 어긴 셈입니다.

이번에 공군에서 일러난 이중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말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삼하 13장에 나오는 다말의 이야기는 성서에 나오는 많은 불편하고 거북한 이야기들 중에 하나입니다. 다말은 다윗의 딸로 이복형제인 압논에 의해 겁탈 당했습니다. 암논은 이복 여동생 다말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성폭행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됩니다. 이때 암논은 요나답이라는 친구가 있었고, 요나답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다말이 자신을 병간호하게 해달라고 아버지 다윗에게 청하라고 조언합니다. 다윗은 이를 허락했고 다말은 이복 오빠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제 암논은 다말을 붙잡고 성폭행을 시도합니다. 이 때 다말은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마세요,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악을 행하기 마세요" 라고 (삼하 13:12) 필사적으로 외칩니다. 그러나 암논은 외침을 묵살하고 성폭력을 가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 다윗과 친 오빠 압살롬도 이를 은폐하라고 지시하고, 다말을 위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다윗의 딸이라는 엄청난 지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보호자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도 이 사건을 왕위 쟁탈전에서 경쟁자였던 이복형 암논을 제거하는 구실로 삼았을 뿐, 다말을 위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평생 오빠의 집에서 처량하게 살았습니다. 죽은 듯이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이중사 이야기와 너무 유사합니다. 이중사도 약혼까지 한 몸으로써 가해자에게 제발 그만두라고 요청을 하고, 여기 저기 고발도 하고 신고도 해 보았지만 그녀의 고발은 모두 무시되었고 "살려 달라"는 호소도 묵살되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시달릴 것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전역을 해도, 애인이 있다고 해도, 결혼을 했다고 해도, 소위 상관들을 이중사와 그 남편을 부하라는 이유로 인권을 계속 유린할 것이라고 판단했겠지요. 다말의 이야기는 다윗 시대의 일이니까 약 3000년 전의 일입니다. 그 뒤로도 이런 성폭행은 수없이 계속되면서 저질러졌습니다. 그렇다면 성서의 다말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 불편한 이야기를 그냥 무시하면 될까요?

구약성서에는 다말 이외에 디나, 미갈, 레위인의 첩, 이야기 등등 수많은 여성 멸시와 여성 비하의 본문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성신학자는 구약성서 내용 일부를 뽑아 Text of Terror 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폭력적 내용을 성서에 나오니까 하나님의 뜻이고 질서라고 해석하면서, 여성들을 설득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레아와 라헬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우리는 이 본문들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읽기가 너무 괴롭고 불편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런 불편한 이야기들은 엄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서에 들어 있습니다. 여성 성서학자들은 이런 성폭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고발하는, 이런 일들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울 같은 본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발장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본문들은 형태만 바꿔 현대에도 자행되고 있는 여성의 상품화, 인신매매, 여성에 대한 비하를 외면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고 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본문들을 가지고 진지하게 교회에서 다루고 토론해서 이 문제랑 씨름을 해야 했다면 지금 보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않았을까요? 성서는 거울처럼 우리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반성하고, 이 불편한 일들을 공론화 하고, 저지시키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현실은 어떤가요? 이런 불편한 이야기는 그냥 덮어 두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오용하고, 민 12장에 나오는 이야기 가령 미리암이 모세에게 대들다가 문둥병에 걸린 이야기는 자주 인용됩니다. 목사님을 비판하거나 목사님께 까다로운 질문을 하거나 하면 현대적 문둥병인 암에 걸린다고 협박하는 것이지요. 불편한 이야기는 덮어 두고 입에 맞는 이야기만 계속 강조하는 한국 교회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다가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의 불편한 이야기들도 신중하게 붙잡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고 또 성서는 우리의 모습을 바로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서 속에 들어 있는 여성들이 겪었던 "고통을 기억하고", 우리의 무관심을 고백하고, 우리 주변에서 지금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하여 해방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 안에는 이런 가부장적 억압과 폭력을 전하는 내용보다는 이를 비판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여성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한 곳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십계명에 보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고, 신명기(22장)에는 강간당한 처녀가 부르짖으면 남자에게 벌이 가해져야 됨을 선언하고 있고, 또 레위기 18장에 보면 근친의 하체를 범한 자에게 금령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나 사도 바울의 말씀도 모두 여성을 포함한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본문입니다. 양성평등의 메시지도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성서는 우리가 나아가고 지향해야할 방향이 뚜렷이 제시하고 있어서,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창문의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창문 즉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성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고,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창문입니다. 성서의 성폭력을 담은 내용들은 과거나 현재나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을 현장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고발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본문들은 창문처럼 인류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배려해야 될지 약자 옹호의 방향 즉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서의 이 두 역할을 올바로 이해하고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이에 덧붙여 신학자들은 "Text - Context" 즉 "성서와 상황"이라는 두 기둥으로 붙잡고 성서를 해석하라고 말합니다. 참 기독교인들은 이 중에 어느 하나에 갇히지 말고 둘을 올바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성서나 우리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풀어내고, 알아야" 합니다. 불편한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고, 동시에 창문을 통해 우리의 희망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 우리는 성서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성서를 통해서 우리 상황이 바뀌는 감동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우리의 상황을 통해 성서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읽어내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들도 성서를 읽으면서 많은 감동과 용기를 얻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교회 성경공부의 무한한 발전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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