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1. 들어가며: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 우상화 경향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층층켜켜 자기 우상화 경향이 점차 뚜렷해 지고 있어 실로 문제다. 한국교회에 팽배해 있는 이념주의, 문자주의, 교회주의 등을 관통하는 핵심이 자기 신념, 자기 확신, 자기 믿음의 절대화라는 점은 이를 잘 방증해 준다. 먼저 교회주의는 교회 건물, 즉 예배당 우상화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데 이것이 문제인 것은 이러한 예배당 절대화가 자기의 편협한 믿음을 그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꼴, 즉 예배당에서의 형식적인 예배 전통 내지는 문화로부터 자유로우신 분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믿음을 근거로 하여 익숙한 교회 전통 또는 관습으로 낯선 하나님을 예배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몰아 넣어 하나님을 제 멋대로 길들이고 일상화 시키는 종교적인 행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예배당 밖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불현듯 마주할 수 있는 신의 현현이 가져오는 두려움과 이끌림이라는 양가 감정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두려움을 줄이고 이끌림은 늘려 종교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다.

종교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욕망에 휘둘려 예배당 우상화를 시도하는 자기 중심적 믿음이 문제인 것은 자기 무의식적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좁디 좁은 예배당이라는 공간에 가두는 일을 획책하여 하나님은 예배당에만 계시다는 허위의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허위의식은 왜곡된 신관을 만들어 내 신자들을 잘못된 믿음으로 이끌기에 위험하다. 

예배당 우상화만 문제가 아니다. 이념과 신앙을 동일시하다 못해 이념에 신앙을 흡수시켜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념을 내세워 이를 우상시 하는 이념주의도 문제다. 이는 자기의 이념을 대상화하는 과정을 거쳐 신앙과 이념을 동일시하고 나아가 신앙 위에 이념을 군림시키는 우상숭배 행위다.

또 성서를 기록된 신의 계시로 여기며 성서 문자를 숭배하는 성서 문자주의는 어떠한가? 자기 믿음을 성서 문자에 투사해 성서를 우상화하는 행위인데 이로써 신은 기록된 계시, 즉 성서를 통해서만 말을 걸어오는 존재가 된다. 다시 말해 성서를 덮으면 아무 말이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인간의 믿음에 의해서 신의 계시가 문자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자주의의 심각한 문제는 신의 계시를 과거의 사실로 옭아매 계시의 미래를 차단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념주의, 문자주의, 교회주의 등을 관통하는 것은 자기 믿음을 절대화 하는 인간의 자기 우상화 시도다. 인간이 자기중심성을 근거로 투사한 신을 가리켜 의심의 대가 포이어바흐는 "무한한 의식의 자기 대상화"라고 비판한다. 일찍이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인간의 종교적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의식을 지성,의지,감정의 요소로 나누어 살피면서 믿음의 꼴로서의 종교 형식이 갖는 종교의 비밀을 누설했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에서 모양을 달리해도 그 내용만큼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인간의 자기 우상화 시도에 대해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이 지니는 함의를 분석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변혁과 교회 개혁이라는 과제 앞에 실천 가능성을 담보하는 믿음의 길을 모색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2. 왜 무신론적 성찰이 필요한가?

그리스도교의 변혁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왜 하필 무신론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벌과 보호라는 양면성 속에서 은근히 신자를 억압하고 오도하는 잘못된 종교로부터 해방을 위해 무신론은 하나의 관문과 같다는 것이 현대시대 정신을 공유하는 이들의 공통적 견해다. 말하자면 무신론은 종교의 정죄와 위로를 너머 참된 믿음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현대 무신론의 서막을 올린 인물로 인식론 시대의 끝자락에 등장한 인식론적 형이상학에 반동을 꾀한 유몰론자였다.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인간학적 유물론'을 형성시킨 포이어바흐는 독일 고전 철학의 정점인 헤겔 철학에 도전해 새로운 철학의 여명을 밝혔으며 신학의 반성에 있어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헤겔의 '절대정신'이란 개념 속에 갇힌 신의 허상성을 환상이라고 주장한 그의 종교비판은 신 개념을 마치 신 자체로 착각하고 사는 당대 기독교인들을 헛된 망상에서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이었다. 포이어바흐의 이 같은 통찰은 오늘날 자기가 믿고 싶은 하나님과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 사이의 간극을 좁히다 못해 일치시키며 자기 우상화된 하나님과 성서가 가리키는 하나님을 혼동하고 사는 현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포이어바흐의 새로운 철학의 목표는 헤겔이 자연을 절대정신의 외화현상으로 치부하는데 반기를 들고 오히려 자연, 존재, 물질을 기초로 철학을 재정립 하려는 데 있었다. 이는 헤겔 철학이 순수하게 사유에 기초한 철학이었다면 사유의 기초가 되는 자연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철학의 등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존재가 사유에 의존하는 헤겔 철학에 반동을 꾀하므로 도리어 사유가 존재에 의존한다는 새로운 철학의 기획이었던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유적 본질이 영원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이러한 본질을 절대화시킨 것이 신이라고 주장하는데 헤겔은 인간의 신에 대한 의식을 신의 자의식으로 말한 반면 포이어바흐는 오히려 신에 대한 의식이 인간의 자의식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헤겔의 철학을 거꾸로 세우고 있는 셈이었다. 특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은 기독교의 철학적 분석을 통해 관념론 위주의 기존 철학에 도전하는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을 인간심성의 본질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통해 신학과 더불어 사변적인 종교철학까지도 포괄적으로 비판한다

이처럼 막스, 니체, 프로이트와 더불어 의심의 대가로 손꼽히는 종교비판가의 맏형격인 포이어바흐에게 당대는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조차 '교회 파괴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포이어바흐의 사상이 유신론과는 양립 불가능한 '유물론'에 기초해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기에 그를 교회의 존립을 뒤흔드는 반기독교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철학의 통일을 꾀하며 합리화된 신학 체계를 완성하려는 헤겔 철학에 시종일관 반신학적 태도를 보인 포이어바흐가 펴낸 <기독교의 본질>이 기독교 비판서적으로 분류돼 일종의 금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포이어바흐가 정신 보다 물질이 앞선다고 하고 '신은 인간의 자기대상화의 결과'라고 하니 그의 주장은 가히 신성모독으로 들렸을 법 하다.

하지만 포이어바흐가 '있음'과 '없음'의 구도로 엮어진 다분히 실체주의적 입장에서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논의를 새롭게 구성해 볼 필요성이 있다. 즉, '무신론자'라고 불리는 포이어바흐가 고전적인 무신론의 테두리 안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그의 연구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주요 연구 대상을 신이 아닌 신을 내세워 신 뒤에 숨은 인간으로 설정하고 인간의 심성에 관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서 인간의 '살과 피'를 말하며 신체와 욕망의 문제를 꺼낸다. 이러한 중요한 키워드는 포이어바흐가 실체주의적인 '있음'의 차원에서의 신의 부정 따위에 애당초 관심이 없었고 그의 연구의 주된 대상이 인간이었음을 웅변해 준다.

그러므로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신을 실체주의적 관점이 아닌 의미론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포이어바흐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신의 존재 유무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철지난 고전적 무신론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차라리 신 부재 체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예언자적 외침으로 들을 때 그 진의가 드러날 것이라 전망한다. 포이어바흐는 신에 대하여 있음과 없음으로 판명이 되는 '무엇'을 묻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따지는 '왜'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이어바흐는 '있는 그대로'의 신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이 믿고 싶어하는 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결국 신 자체가 아닌 신에 대한 관념, 즉 신관을 말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살과 피'로 이뤄진 인간이 신체 특성상 제한된 조건, 즉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원초적 종교성에 기인해 무한을 동경하던 끝에 자기 욕망을 투영해 만든 것이 신이었음을 폭로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신관에 불과한 것을 신 자체로 여기며 자기무의식적으로 자기 욕망의 투영의 산물을 신이라고 호칭하며 자기 믿음을 우상화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마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은 또 전통 형이상학에서부터 시작해 근대 칸트에 이어 헤겔에 이르기까지 독일 고전 철학의 관념론에서 신화처럼 떠받들어진 '같음' 혹은 '동일성'에 대한 '다름'의 반동으로도 새겨 볼 수 있다. 헤겔에 의해서 집성을 이룬 '있음과 앎의 같음', 다시 말해 사유와 존재의 일치로서의 인식론적 형이상학이 정반합의 변증법을 통한 자기동일성의 보편적 확장이라면 불가피하게 개체 인간의 '삶의 다름'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있음과 앎의 같음'으로서의 종교는 '삶의 다름'으로 엮어진 이 세계를 부정하고 '있음과 앎의 같음'이 그려내는 저 세계만을 바라보게 하는 유토피아적 허위의식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에 이른다.

종교와 정치의 야합이 위험한 까닭은 이같은 허위의식이 피지배 계층으로 하여금 못 가진 자가 받는 억압의 상황을 숙명으로 포장하게 하여 가진 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붙들린 못 가진 자가 스스로를 노예화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지배 계층에 의해 종교가 가진 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봉건잔재 청산을 바라던 포이어바흐는 이미 종교 이데올로기화된 헤겔의 '있음과 앎의 같음'으로서의 진리 추구에 반기를 들며 이러한 객관적 관념론이 현실과 괴리된 이상 내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삶의 다름에 터해 갖가지 모순들이 부딪히는 현장으로서의 삶을 직시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이 글에서는 인간의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을 부추기는 왜곡된 종교 이데올로기의 형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동시에 인간 자신의 욕망을 종교적으로 포장해 신이란 이름 뒤에 숨어서 신이 아닌 인간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이른 바 인간의 자기우상화의 비밀을 누설하는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특히 투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예배당 우상화를 비롯해 종교적인 허위의식으로 둘러싸인 고착화된 교리주의, 문자주의, 이념주의 등 종교 이데올로기에 침식된 오늘날 한국교회의 변혁을 위한 신앙성찰까지를 목표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자기중심적 믿음이 초래하는 왜곡된 신관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까지 전개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를 위해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현대 시대정신의 마중물 역할을 독톡히 소화해 낸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를 택해 그의 종교비판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는 『기독교의 본질』을 중심으로 무신론적 종교비판의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동시에 그의 이런 무신론적 통찰을 공유하는 현대 신학자들의 언명도 곱씹으며 논의의 효과를 증대시켜 보고자 한다.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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