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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단상] 8.15 해방 76년의 생각(4)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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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지유석 기자 )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회장)

"88선언"이 발표된 이후, 소문에 따르면, 정보부는 "88선언" 기초 위원 전원을 일망타진할 목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며칠 후의 일관된 조사 보고는 "문제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였다고 한다. 오히려 유신헌법 철폐 이후 개헌을 통해 청와대를 찾이한 노태우 전권의 통일부장관은 기초위원들을 불려 드려 "88선언"에 대한 취지와 목적, 그리고 내용에 대한 설명을 통일부의 실, 국장 앞에서 하도록 하고, 깊이 있는 질의응답과 토론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평화통일 정책 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에서 1984년 일본 도산소 모임을 시작으로 하여, 남 북 교회 지도자들이 스위스 글리온에서 처음으로 모여 앉아 남북 분단을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7.4 공동성명의 통일기본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화해와 분단극복을 위한 민간교류와 협력을 다짐하였고, 남북 교회 지도자들의 모임을 계속할 것을 다짐하기도 하였다.

1988년은 새 민주헌법에 의한 정부가 들어 선 해일뿐 아니라, 서울 하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은 7.7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적대 국가가 아니고 평화 통일을 향한 "동반자"라고 하였다. 1990년, 독일이 흡수통일되었다는 소식에 놀랐고, 이어서 다음해에는 소련 공산당 독재 정권이 자폭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우리 남 북한 정부는 총리급회담을 서울과 평양에서 이어가며, 평화 통일의 정책 방향에 동의하였다. 그 내용은 놀랍게도 "88선언"의 내용을 거의 고대로 담은 것이었다는 평가였다.

1991년은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남한, 대한민국이 동시에 UN에 정식으로 가입한 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우리는 "분단국가"가 아니라, 두 "독립국가"로 국제사회가 인정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이 남과 북이 두 독립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데 도움이 된다든가, 앞으로 통일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방해가 될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이 와중에, 세계사적 변화무쌍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1989년 글리온 회의에 남한교회 대표의 한사람으로 참석하여, 북한에서 온 그리스도교도연맹 대표 목사님들과 통역관 그리고 수행인사들과 만났다. 1991년 여름에는 뉴욕 근교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고, 가을에는 캐나다 토론토와 동부 몬트리올 수도에서 카나다 정부 당국자들과 세계교회협의회 지도자들과 북한 그리스도교도연맹 지도자 목사님들과 만나 민족의 통일과 평화 정착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하는데 가담했다.

이런 만남의 과정에서 심각하게, 깊이 느낀 것은,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동족이라는 것,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로 이해할 수 있고, 정을 통할 수 있는 같은 나라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 결코 원수가 될 수 없다는 것, 함께 한반도에 전쟁 아닌 평화를 만들어 내고, 결국 통일된 나라에 살게 될 거라는 마음은 한결같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둘로 갈라져서, 아웅다웅 서로 미워하고, 무슨 이념이나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해서 싸우고만 살 수 없다는 생각은 매한가지라는 믿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북한 교회 측 통역관이 영어가 짦아서 나에게 통역을 부탁할 때 주저하지 않고 북한 대표들의 우리말을 영어로 옮겨서 세계교회 지도자들을 이해시켰고, 세계교회 지도자들의 발언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북한 교회 지도자들이 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토록 북한 교회 지도자들과 모임을 거듭할수록, 마음이 가까워지고, 경계심이 풀리고, 동족의식이 깊어지면서, 우리 순교자 아버지를 총살하게 한 청천지 원수라는 증오와 혐오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용서하는 마음과 측은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올리고, 눈물로 하나님의 평화를 기도했다.

독일이 통일했다는 소식, 소련이 내부에서 붕괴됬다는 소식, 남북 정부가 각각 유엔에 가입했다는 소식에 온 세계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1994년에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공산주의 독재자의 자리를 1942년 생 아들 김정일이 52세의 나이로 세습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터져 나왔다.

1980년대 후반 북한의 해 마다의 홍수와 수해로 "고난의 행군"에 지쳐 있던 어려운 시기에 정권세습의 정치변동과 재정비에 여념이 없었다. 남북의 교류는 민간부문이나 정부간의 왕래는 두절된 상태에서, 1998년 현대그룹 회장인 정주영씨(1915-2001)는 83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500마리의 한우를 몰고 판문점을 넘었고, 같은 해 금강산을 개발하여 남한의 민간인이 자유롭게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는 관광지를 여는 데 성공하였다.

같은 해 1998년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을 선포하고, 21세기 벽두 2000년 6월에는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평양에 날아갔다. 깅정일 국방위원장의 환영을 받으며,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성 속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6.15 공동선언의 중요 골자는 앞으로의 통일된 한반도의 정치 체제를 남의 "연합체" 제안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골자로 지향한다는 것과, 남북간의 신뢰구축을 위하여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증진하며,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증진할 것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평양 방문과 6.15 공동성명의 성과를 인정받아 같은 해 겨울 노벨 평화상 수상의 영광을 찾이하였다.

이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에 따라, 휴전선에서 가까운 개성시 근교에 개성공단을 설립하기로 합의하여, 2004년에 공단 설립 공사를 시작한지 3년 뒤인 2007년에 문을 연 공단에는 남한의 크고 작은 공장들이 입주하였고, 2012년에는 북한 근로자 5만 명이 임금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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