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이제 생명을 택하고"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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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신명기 30:11-20, 빌립보서 2:12-16, 마태복음 7:13-14 -

4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연 교회당에서 주일예배 개회찬송으로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550장)을 부를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에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같이 누리겠네." 바빌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듯이, 코로나에 매였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은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꿈꾸던 복이었습니다. 고대 예루살렘에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닥쳤을 때 예레미야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결혼식이 취소되는 것을 세 차례나 목격합니다. 예레미야서 7:33-34에 그는 시체들이 쌓여 있어 결혼식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이 백성의 시체들이 공중의 새들과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다... 내가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마다 환희와 기쁨의 소리, 신랑 신부의 소리가 사라지게 할 것이다.") 16:6-9에서 예레미야는 결혼식은커녕 장례식조차 치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높은 사람이든지 낮은 사람이든지 모두 죽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위하여 슬피 울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네 시대와 네 눈앞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끊어지게 할 것이다.") 급기야 예레미야는 25:10-11에서 시온이 폐허와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내가 그들 가운데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끊어지게 할 것이다... 이 모든 땅이 폐허와 황무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을 듣습니다. 29:11-13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절망과 재앙이 아니라 희망과 미래를 주시려는 하나님은 마침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임을 선언합니다. 31:2-5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이제 예레미야는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거리마다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 즐거움에 겨운 사람들의 웃음소리, 신랑과 신부의 소리, 성전에서 들려오는 찬양 소리를 보고 듣습니다. 텅 비었던 이 예배당에서 오늘 들린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33:11입니다.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오늘 하나님의 교회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순간도 당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황폐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신실하셨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고백입니다. 이것이 애끓는 마음으로 민족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예레미야의 믿음입니다. 예레미야의 믿음은 집요하고 타협하지 않는 희망을 붙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갈 거라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목적에 도달하시기까지 절대 단념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사람은 포기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 세상을 다스리는 최종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이 전쟁과 기근과 질병의 악한 힘마저 꺾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바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예레미야는 오래전에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고]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고]...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고]... [황폐한]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 흘러오[는]", 그래서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보았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의 주제는 '회복'(回復, restoration)입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와 일상의 행복을 회복하는 게 예레미야가 꿈꾸던 복입니다. 즉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우는] 것"(33:7 - 개역개정), 다시 말해 "그들을 옛날과 같이 다시 회복시켜 놓[는] 것"(새번역)이 바로 "오래전 선지자 꿈꾸던 복"입니다. 예레미야 30:18입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야곱의 장막들을 회복하여 놓고, 야곱의 거처를 불쌍하게 여겨, 폐허의 언덕에 다시 성읍을 세우고, 궁궐도 다시 제자리에 세우게 하겠다."(새번역) 32:42-44입니다.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 비록 이 백성에게 이토록 큰 재앙을 내린다마는, 그만큼 약속한 행복도 모두 베풀 것이다. 너희 예언자들은 이 땅이 바빌론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쑥밭이 되어 사람이나 짐승의 그림자도 어른거리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이 땅에서 다시 밭을 사고 팔게 되리라. 증인을 세우고 문서를 만들어 봉인을 치고 돈을 내어 밭을 사게 되리라...이렇게 나는 이 백성의 운명을 회복시켜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공동번역) 이렇듯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 백성의 '운명을 회복시켜주신다'(restore the fortune)가 예레미야서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입니다.(29:14; 30:3, 18; 31:23; 32:44; 33:7, 26)

그런데 무엇이 회복입니까? 예레미야가 말하는 회복은 '좋았던 옛 시절'(good old days)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었습니다. 그 과거는 이미 심판받은 과거입니다. 어떤 과거였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울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예레미야 2:7-8, 13) 그 과거는 이미 심판받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말하는 회복은 상처 입은 포로들을 첫째로 '치료'하는 것이며, 둘째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며, 셋째로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약속의 미래를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33:4-9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라]."(예레미야 33:4-9a)

예레미야가 말하는 회복은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닙니다. '좋았던 옛 시절'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말하는 회복은 포로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새 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딛고 하나님 약속의 미래를 향해 다시 도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라 미래로의 모험입니다. 오늘의 교독문인 시편 85편의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신 이유는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나아가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은 모험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도전입니다. 새 출발입니다. 주께서는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시편 85:8)라고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사막에 은거하는 고명한 은수자(隱修者)가 있었습니다. 은수자란 종교적 완덕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를 떠나 외딴곳에 숨어 살며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이 은수자를 찾아 물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믿음을 보여주세요." 은수자는 한참 동안 먼 산을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이레 뒤에 저기 보이는 산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내가 산을 움직여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겠습니다." 그날이 되자 수많은 군중이 모여 들어 은수자가 산을 움직이길 기다렸습니다. 산 앞에서 고요히 기도를 마친 은수자가 이윽고 산을 향해 소리칩니다. "산아, 움직여라!" 산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수자가 다시 외쳤습니다. "산아, 움직여라!" 산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하던 군중들이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은수자는 다시 산을 향해 크게 소리쳤습니다. "산아, 내게로 오라!" 산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은수자가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아,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가면 되지, 뭐!" 웅성대는 군중 사이를 헤치고 은수자는 산을 향해 떠났습니다. (정호승, "산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내가 산에게로 가면 된다" 중에서).

은수자는 정말 산이 움직여 자기한테 온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이 우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무엇이든지 간절히 원하는 게 있으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것을 향해 떠나라는 것입니다. 은수자는 믿음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믿음을 향해 떠나라"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이 우화는 믿음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기다림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그냥 막연히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다림에도 능동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은 끈질기게 참고 기다리는 데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능동적으로 찾아감으로써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앞으로 달려가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가고자 하는 자에게는 길이 만들어지고, 길을 가지 않고자 하는 자에게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오지 않으면 내가 그 기다림을 찾아가면 됩니다. 산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내가 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 됩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는 최고의 모험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먼저 이 모험을 감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모험입니다. 성육신이 하나님의 거대한 모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한복음 1:14)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다른 모든 아이와 마찬가지로 먹을 것을 받아먹어야 하고 기저귀를 차야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로, 누워서 빤히 엄마를 바라보며 꼼지락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아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신 분이 인간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셨습니다. 사탄이 된 천사를 만드신 분이 사탄의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위험을 감수하시고 모험을 감행하십니다. 사랑을 위해, 생명을 위해, 언약을 위해 모험을 감행하십니다.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기피합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자넷 랜드의 시 <위험들>입니다. "웃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 우는 것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에 휘말리는 위험을 /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 자신의 생각과 꿈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는 것은 순진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 사는 것은 죽은 위험을 / 희망을 갖는 것은 절망하는 위험을 / 시도하는 것은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 그러나 위험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 /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기에 /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 아무 것도 갖지 못하고 / 아무 것도 되지 못하므로 /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을 것이나 / 배움을 얻을 수도, 느낄 수도, 변화할 수도 / 성장하거나 사랑할 수도 없으므로 / 확실한 것에만 묶여 있는 사람은 /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와 같다 /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 오직 / 진정으로 자유롭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믿음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시편 85:1) 우리는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시편 85:8)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우리가 기억해 내지 못해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넘어졌고,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때 물에 빠졌습니다. 홈런을 제일 잘 치는 강타자들도 자주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합니다. 베이브 루스는 714개의 홈런을 날렸지만 1,330개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습니다. 코로나를 불러온 우리의 과거는 실패한 과거입니다. 우리는 실패가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아 놓치는 기회를 더 걱정해야 합니다. 문이 닫혔다고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쪽 문을 찾아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영원히 열정을 몰고 가는 자는 행복하여라." 한쪽 문이 닫히면 언제나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에 눈이 쌓여 있어도 눈을 밟아 가며 길을 나서지만, 어떤 사람들은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이 길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이 없이는 눈밭을 홀로 걷는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익숙했던 것에서 떠나 하나님의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일상자에서 상한 과일들을 골라내다 보면 대개의 상처는 과일끼리 서로 맞닿은 부분에서 생겨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주고 입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내 곁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사실 가족과 친구, 교우와 동료들은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인데 우리는 관계의 익숙함에 무감각해져 그 소중함을 잃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다하라"라는 말이 나온 것같습니다. 운전이 가장 위험해지는 때는 초보를 벗어나 이제 막 운전이 익숙해지는 때입니다. 운전에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이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경력자들은 너무도 잘 압니다. 운전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삶도 익숙해지면 자신을 확신하게 되고 자신을 확신하는 만큼 인간은 교만해집니다. 생각은 깊지 않고, 말은 가벼워지고 대처는 미숙합니다. 이렇듯 삶의 위기는 익숙함이 만든 교만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코로나도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불편하던 마스크 착용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낄 정도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마스크 착용처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익숙해진 것 중에 하나가 온라인 예배입니다.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온라인 예배가 그 선호도나 참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하지만 처음의 어색함이 익숙함으로 변하고, 익숙함이 편리함으로 변할 때 거기서 자라날 수 있는 자의적 신앙은 미숙한 운전자의 과속만큼이나 위험합니다. 신앙도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져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는 목적은 각 개인의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인격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에도 온라인 문화에 익숙해져 교제도 나눔도 없는 형식적 신앙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됩니다. 익숙함이 소중한 것을 잃게 합니다. 우리는 익숙함이 편리함이 되고 교만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구약성서 본문인 신명기 30장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모세가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명기 30:15-20)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또 "복과 저주"의 두 길을 두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단지 우리만이 아니라 "너와 네 자손이 사기 위해 생명을 택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생명을 택하라"(Now choose life - NIV) 하셨습니다. 생명을 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험입니다. 그것을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마태 7:14)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기 때문입니다.(마태 7:13) 우리는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생명을 택하십시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살기 위하여 지금 생명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그 길은 믿음의 길입니다. 그 길은 모험의 길입니다. 그 길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되어 살아가는 일에 또다시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라"(시편 85편)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니 우리가 이 생명과 복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내 주와 맺은 언약을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십니다. 그러믈 우리는 이제 "주님을 찬송하면서... 내 앞길 멀고 험해도... 주님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신약서신의 축복의 말씀처럼 이제 우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시기 바랍니다.(빌립보서 2:15) 여러분이 "세계 열방 앞에서 [여호와]의 기쁜 이름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되기를]"(예레미야 33:9)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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