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표징과 믿음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29장 13-14절, 시편 4편 3-5절, 요한복음서 2장 1-12절

한 문 덕 목사

[2022년 신앙 계획]

작년 송구영신 예배에서 우리는 모두 다 같이 로마서 12장의 말씀을 읽고 자신에게 특별하게 와 닿는 말씀과 구절을 서로 한 번 더 읽었습니다. 그 때 저는 2절의 말씀 중 "변화를 받아서"라는 구절을 선택했습니다. 목사가 된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고, 우리 생명사랑교회로 부름 받아 줄기차게 달려왔고, 신학공부를 한지는 25년이 다 되어, 뭔가 한번은 매듭이 필요하고 다시 한 번 더 도약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22년이 우리 모두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변화를 받고 도약의 해가 될지, 아니면 예나 지금이나 별 반 다를 것이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로 유지될 지는 모두 각자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이전의 목회와는 다른 방식의 목회, 즉 언택트 시대의 목회가 2년 넘게 지속되면서 목회와 신앙생활에도 양극화가 진행된 것이 사실입니다. 온라인 시스템을 갖추기가 어렵고, SNS 등을 활용하여 정보를 취득하기 쉽지 않은 노인층이 대부분인 소형교회들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50명 이하의 소형교회 목회자들 다섯 명 중 한 명은 코로나 1년 반을 겪은 시점에서 목회를 포기할 마음이 들었다고 얘기합니다. 실로 코로나 이후 50명 미만의 교회 4개 중 3개는 존립 위기에 있습니다.

다양한 목회활동과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에게 삶의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는 대형교회와 달리, 소형교회는 주일 예배와 설교가 가장 핵심적인 목회이고, 소규모 인원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공동체의 친교가 장점인데, 주일예배에 나오지도 못하고, 함께 식사도 못하고, 영상 설교도 듣지 못하게 되면서 작은 교회들이 너무나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코로나 19 시대에 새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역시 담임목사의 설교와 교회가 제공하는 성경공부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목회도 대면예배와 모임과 함께 지금처럼 꾸준하게 성경공부와 소그룹 모임, 온라인 예배를 지속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동안은 두 본문이나 세 본문으로 설교를 해 왔는데, 안식년 이후에는 설교에도 변화를 주어서 한 본문으로 하려고 합니다. 성서의 분석과 삶의 적용에 더 방점을 두고 한 본문에 집중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 본문 설교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처럼 3년 말씀 통독과 곁들여 세 본문을 매일 읽고 주일에 설교하기 때문에 전 교인이 성서를 골고루 읽고 설교의 본문도 다양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현실 진단]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의 말씀, 이사야서와 시편의 말씀은 모두 우리들의 신앙을 새롭게 점검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내실 없는 신앙을 책망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한다고 나불대지만 마음은 이미 멀리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관습으로 내려오던 사람들의 말을 그저 듣고 흉내 내서 할 뿐이라고 탄식하십니다. 이사야가 활약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야훼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애굽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신들을 보냈습니다(30:1-7, 31:1-3). 하나님보다 힘을 지닌 강대국에 기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공평과 정의를 택하고 탐욕을 버리는 것,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당장의 곤경만을 면하려고 하지 말고, 근원적인 원인을 치료하는 것,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어려움을 견뎌내는 것, 참다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끈질기게 노력하는 것! 돈이 최고라는 자본주의 삶의 방식에 맞서 생명 정의 평화 사랑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 아마도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마음의 진정성을 상실하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무지해서 실수하는 것도 문제이고, 어리석어서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속이는 자에겐 진보란 없습니다.

이사야서 말씀 중에 "들은 말을 흉내 낼 뿐이다"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것도 깊이 묵상해 볼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이 있듯이,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믿음의 선배들의 조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들은 말을 자신의 삶에서 적용하고 그것을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지, 주워들을 말을 아무런 반성과 점검 없이 바로 전달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물음과 대답 없이 주워들은 말만 하는 사람은 진짜 실력을 가진 자 앞에서는 무력하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등장하실 때 지혜가 있다고, 총명하다고 내세우던 사람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스위스 취리히 개혁교회 총회에서 발간한 성경해설집을 한 권 구입했습니다. 독일성서공회 해설판 성경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또 좋은 성경해설집이 번역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런 성경해설집을 읽고 있으면, 한국 개신교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성경해설 하나만 보아도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저자도 우리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합니다.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이사야 예언자처럼 역시 주님만을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장소와 시간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가 진정한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예배는 우리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우리동네 목사님>)던 기형도 시인의 말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존재가 변하고 삶이 구별됩니다.

분노할 때도 죄짓지 말라는 말씀도 역시 일상과 관계된 말입니다. 불의를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노예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자들에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분노가 거룩하려면 분노의 과정과 표출이 악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할 말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이성을 잃지 않으면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잘못을 하였다면, 그날이 지나기 전에 잠자리에 누워서라도 반성하며 눈물을 흘리며 철저하게 돌이켜야 합니다. 잘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극복하고 같은 실수와 잘못을 여러 번 거듭하지 않는 것이고, 그럴 때 사람은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런 삶의 자세와 태도로 일관되게 행동하고 살아가면 그 사람 속에서 표징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숨겨 두려고 해도 빛은 새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어둔 밤일수록 더 그러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믿음은 빛을 발하고, 지도력은 더욱 드러나는 법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서는 바로 이런 위기의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혼인잔치 날이어서 모두가 축제 분위기인데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잔칫날에 술이 떨어지는 것은 흥을 깨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당혹스런 일입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을 빠르게 인식하고 대처한 분은 예수님의 어머니였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는 아들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리고, 일군들에게는 예수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전하였고, 예수는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고 그것을 포도주로 바꾸셔서 하객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습니다. 이 사건을 요한복음서 저자는 표징이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건으로 표현하고 또 제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물이 언제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을 돌항아리에 갖다가 부었을 때에 포도주로 변했는지, 돌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결혼 잔치의 주인에게 가져다 주었을 때에 변했는지, 물을 받은 사람들이 입을 대고 마실 때 포도주로 변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서 저자가 이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새 시대가 열린다]

혼인잔치와 포도주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잔치를 베푸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 성서본문이었던 이사야서 25장 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먹을 것, 마실 것이 충분치 못했던 고대 이스라엘인의 최대의 꿈은 기름진 것과 맑은 포도주를 마음껏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손수 베푸시는 잔치, 누구나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이런 잔칫날은 언제 올까요?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읽으며 이런 날이 속히 오기를 매일같이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파가 있었지만 이들은 로마와 타협하여 도리어 민중을 억압하였고,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바리새파가 주변에 많이 있었지만 이들은 엄격한 율법 적용으로 도리어 사람들을 옭아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80%이상을 차지하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쁨과 자유를 주는 참 하나님의 구원의 현실은 머나먼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오늘 예수님을 통해 이런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합니다. 요한의 강조점은 시대의 마지막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에서 정결예법에 사용하던 돌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말합니다. 돌은 부정을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정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그래서 돌항아리입니다. 정결예법에 사용하던 항아리가 여섯 개인 것은 완전수에 해당하는 일곱에 못미치기에 유대교의 부족함을 상징합니다. 게다가 그 돌항아리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은 유대교가 이제 생명을 다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율법의 시대는 가고 예수님의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것, 역사의 종말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요한복음서를 쓴 이들은 오늘의 기적을 통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또 다른 얼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과 고통을 없애시고, 모든 것을 창조 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실 때는 언제 오는가? 요한복음서를 쓴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리셨을 때, 세상을 위하여 새롭고 영원한 생명이 열렸다고 생각했습니다(7:37-39; 12:31-32; 17:1-3). 그런데 아직 그 때는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가져오는 자라고 확신하면서 예수님에게 요청하고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어머니로 인해서, 그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실행하는 아들의 배려 속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종말적인 기쁨의 때가 지금 여기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은 창조가 완성되는 일곱째날 벌어집니다. 요한복음서는 세례요한의 이야기부터 날짜를 하나씩 세고 있는데, 가나의 혼인잔치가 벌어진 날은 바로 일곱째 날이 됩니다(1,29, 35, 43; 2,1). 다른 구절에서는 "다음 날"이라는 말이 반복되다가 갑자기 2장 1절에서 "사흘 째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사흘 째 되는 날"은 구약의 유대 전통에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려고 등장하신 하나님의 현존(출애 19:16)과 항상 연결되었으며, 신약에 와서는 예수의 부활을 암시합니다. 율법과 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예수에게서 온전히 드러난 것이며, 종말적 구원의 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부활과 관련 있음을 나타낸 것이고 게다가 붉은 포도주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와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마지막 일곱째 날!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축제를 벌입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은 출애굽 공동체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다짐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라고 외칩니다(출애 19:8). 예수의 제자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적대적인 세상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매주일에 모여 서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며 잔치를 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요한복음의 이 표징은 예수님을 만나서 매 주일마다 함께 모여 예배하고 음식을 나누던 이들의 체험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마지막 날의 잔치를 기다릴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매주일 예수님과 함께 잔치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요한복음서를 쓴 이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교회인가?]

오늘 요한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을 통해 새 시대를 알리는 나팔이 이미 울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새 시대를 체험한 이들이며 그 새로운 시대는 이전의 율법을 대체하고 마지막 날에 있을 잔치의 기쁨을 여기서 누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 포도주도 좋지만 새 포도주가 훨씬 더 좋다고 자랑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이단 관련 이야기가 많이 들려옵니다. 보통 비상식적인 종교나 이단 사설에 중독되는 현상은 사회가 암울하고, 현실의 삶이 너무나 비참한데, 기존의 종교가 충분히 답을 해주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 사회에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진리를 갈구하고 참된 평안을 누리기 원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수를 찾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습니다. 누가복음서에 따르면 비범한 예수가 하던 일들을 마음 속으로 간직했습니다. 마리아는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아직 자기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꾼들에게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해 놓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의 어머니는 상황파악을 잘하고 그 문제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해결할 수 있는 지를 잘 아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새 시대를 열려면 바로 지금 이 시대가 가지는 문제를 잘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누구인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사람을 양육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개 성숙하지 못한 공동체는 문제가 발생하면 당황하고 서로 불평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공동체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의지를 모아갑니다. 이럴 때 합리적 이성이 필요하고, 동요하는 마음의 조절이 필요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요청됩니다. 폭력이나 비상식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물이 포도주를 바뀐 사실을 안 사람들은 일꾼이었습니다. 연회장 즉 잔치를 맡은 이는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사람,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을 헌신했던 사람,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공동체에 대해 알고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때가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에 따라 물을 포도주로 만듭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것이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때를 앞당겨야 한다고 요한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실 수 있었고, 어머니 마리아는 지금 해야 한다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우리 생명사랑 신앙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라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당장에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지속시키게 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됩니다. 오늘 우리교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웅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과감하게 나설 필요도 있습니다. 손님으로 혼인잔치에 왔지만 주인과 같은 마음으로 나설 때 모두가 즐거운 잔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교회의 머리요, 주인은 예수님이시지만, 예수께서 우리를 친구로 삼아 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으니 우리 모두가 주인과 같은 마음을 지닙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이어 나갑시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하나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표징은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믿음은 또 다른 기적들을 만들어 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2022년에도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기쁨의 잔치를 베푸시고 우리를 초대해 주시는 하나님! 주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때로 그 행복한 시간을 깨트리고, 소중한 시간들을 망치는 위기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가 온전히 주님 앞에 나아와 지혜를 구하게 하시고, 기도하며 말씀 가운데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올 한해도 우리가 열심히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시고, 때를 앞당겨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징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말만이 아니라 삶으로, 입술만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올 한해, 우리의 삶이 분주할 지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게 하소서. 자신의 일에 취하여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세상이란 벽에 자신을 걸어 놓고 불안에 빠져 있지 않게 하소서. 시간을 내어 대화하며 건강한 사랑을 만들게 하소서.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서로의 만남을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늘 행복하게 하시고, 우리의 사랑이 힘 있고 아름답게 피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아주소서. 움켜쥔 손을 펴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을 서둘게 하소서.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서 부를 때에, 달려 나가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길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주님의 때를 앞당겨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잔치를 벌이십시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주님이 베푸시는 생명의 잔치 자리에 늘 함께 하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이주 노동자 환대의 윤리적 전략 "데리다의 환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12일 오후 안암로 소재 기윤실 2층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교회의 역할'이란 주제로 '좋은사회포럼'을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