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샬롬나비, 2022년 새해 공동선 선언 발표

입력 Jan 10, 2022 11:56 AM KST

샬롬나비가 델타, 오미크론 복합 쇼크로 장기화되는 코로나 펜데믹 상황 속에서 "소외와 갈등이 일상회되고 비대면으로 타자의 얼굴을 상실한 시대에 희망과 공동선의 공동체를 실현하자"는 내용의 새해 공동선 선언을 발표했다. 아래는 선언문 전문,

<2022년 새해 공동선 선언>

델타, 오미크론 복합 쇼크로 장기화되는 코로나 펜데믹 상황을 백신접종에 기반한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이겨내자

소외와 갈등이 일상화되고 비대면으로 타자의 얼굴을 상실한 시대에 희망과 공동선의 공동체를 실현하자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고 격변의 시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2년이나 경험한 우리는 새로운 2022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한 해 코로나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사회 모든 일원들과 방역의 최전선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의료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위로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지난 한 해도 코로나19의 팬데믹 속에서 경제적이고 심리적 타격을 입은 우리에게 백신 개발과 접종은 그나마 잠시동안 위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해 위기상황이 재현되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샬롬나비는 한국사회 구성원이 공동선 정신(자유, 사랑, 정의와 평등)으로써 무엇보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치료제 개발과 더 나은 백신 개발로 다가오는 2022년 한국 사회에서의 희망과 바람을 제안한다.

1. 우리들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등장에 동요하지 말고,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현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잘 이겨나가야 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times with Corona)에 전세계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침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자영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우리에게는 힘든 시기들이 많이 있었다. 지난 1997년 외환 위기에도 대량 실직이 발생해서 직장과 학업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시작했다. 국민들은 집에 조금씩 보관하던 금을 가져 나와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우리 국민들은 위기에 강한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당시 대량 실직으로 가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민 모두가 동참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은 원조를 받았던 나라에서 원조를 지원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코로나를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우리 국민은 또다시 거리두기 동참 뿐만 아니라 방역을 함께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도 변이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의료진들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방역의 최전선에서 조용히 일하는 방역 본부와 일원들 그리고 국민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는 다시금 방역에 솔선수범하면서 철저한 마스크 쓰기에 동참하면서 위드 코로나를 잘 대처해 나가야 한다.

2. 세대 및 계층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공동선 실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간의 갈등이 심해졌다. 사소한 갈등에서 지역과 이념의 갈등까지 그 양상이 너무 다르고 심지어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양상은 공동체에 위해를 가할 정도이다.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 이념의 갈등이 심하여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내가 속한 공동체와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타자와 다른 공동체의 가치관을 수용하는데 여유가 없다. 심지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타자에 대해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 비판을 앞세우고 있다. 이에 우리는 타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 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다. 예수는 우리에게 이웃, 곧 타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선행될 때, 공동선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수는 공동선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의 실천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생각으로 인해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다름'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언제나 양보와 배려로 고쳐나갈 수 있다.

2022년에 우리는 세대와 지역 그리고 서로 다른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갈등의 요소들을 배려와 양보라는 치료제로 봉합하고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비대면 사회에서 '타자의 얼굴'과 마주하는 소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올해 우리에게 타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가피하다. 내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줄어들고 치료제가 보급되어 사람들과의 소통의 시간이 넘쳐나야 할 것이다.

비대면 사회에서 우리는 스마트폰과 같이 모바일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져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과의 마주 대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소통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가족간의 소통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 소통의 부재는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타자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타자의 얼굴'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에서 비춰지는 '아픔'과 '연면' 그리고 '동정'을 느끼고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타자의 얼굴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배고픔이 묻어나온다. 타자의 얼굴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비로소 우리가 타자의 얼굴을 보게 될 때,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비대면 사회에서 타자의 얼굴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모바일로 소통하는 사회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에서 나오는 연민과 인류애를 경험하면서 공동체에서 휴머니즘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4. 동성애와 동성혼의 무차별적인 인정을 허용치않는 양성 질서의 한국사회 존속 소망한다.

동성애와 동성혼 인정은 남성과 여성으로 천부적으로 주어진 이원적 성적 질서와 다름을 깨뜨리는 인간 존엄성의 파괴요 남성과 영성의 성적 결합에 의한 가정과 사회적 존속의 파괴다.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해야 하지만 동성애와 동성혼 인정은 창조 질서인 성적 타자인 남성과 여성의 성적 다름을 무차별적으로 동일시함으로 성적으로 다른 진정한 타자의 모습을 상실하는 것이다. 동성애 인정은 남성과 여성으로 주어진 천부적인 인간의 양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남성과 여성으로 천부적인 성적 다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가정의 파괴요, 양성 결합에 의한 인류사회의 존속을 깨뜨리게 한다.

5. '꿈의 상실' 시대에 살아가는 청년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코로나와 경제적 침체로 인해 많은 20-30대 MZ청년들이 취직난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꿈과 좌절에 너무 무관심하고 그들의 꿈을 빼앗는데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들은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의 준말)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꿈의 상실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현재 많은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접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젊은이들에게 꿈을 빼앗아가는 사회적 구조들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대안이 절실하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강한 확신을 주고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들에게 기회와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19세기 미국인 선교사요 초빙교사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는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21세기의 MZ세대들에게도 해당되는 비전이다. 우리 사회는 정보화와 AI 시대 미래 세대의 주역들인 청년들에게 희망과 야망을 심어줄 사회적 구조를 만들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6. 2022년에 한국교회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맞는 공동선(자유와 사랑, 정의와 평등 증진)에 참여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지켜나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국민들이 지쳐있는 시대에 무엇보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이라는 단어와 자신감을 선물해야 한다.

코로나로 우리 사회가 많이 지쳐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사명인 이웃 사랑 실천에 대한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코로나 방역 준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공동체의 선(자유, 사랑과 정의와 평등)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타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 그리고 예수의 헌신적 사랑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야기가 나온다. 이 비유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누가 네 이웃인가?"라고 묻고 있다.

코로나로 침체된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이 필요하다. 타자의 얼굴을 보고 손을 내밀어줄 이웃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나는 이웃에게 공동선인 자유와 사랑,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증언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오는 2022년에는 주변에서 아파하는 목소리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교회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야 할 것이다.

2022년 1월 10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

오피니언

연재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9):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포이어바흐는 고대 기독교도들이 삼위일체의 신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신비스러운 대상으로 여긴 것에 대해 "이들이 현실성, 생활 속에서 부정한 인간의 가장 ..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