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예수의 상흔을 몸에 새기고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입력 Mar 07, 2022 10:37 AM KST

성경본문

미가서 2장 1-6절, 시편 55편 9-16절,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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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을 시작하며]

지난주 수요일,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에 대해서는 수요일 설교에서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의 각 절기는 저마다 뜻이 있고, 절기를 잘 지키면 우리의 신앙과 삶이 단단해집니다. 사순절은 여러 뜻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 자신의 부활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동안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이웃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고, 고난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자연환경과 기후를 생각하며 일주일에 한두 가지라도 실천을 한다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는 4월 17일 부활절이 매우 뜻깊은 부활절이 될 것입니다.

찬란한 부활절을 기대하면서 여러분에게 임영조 시인의 '3월'이라는 시 한편을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 켜 듯

하늘을 힘껏 밀어 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3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 본다.

추운 겨울에는 언제나 따뜻한 봄이 그립고, 그래서 얼른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3.1절 독립 만세를 외쳤던 우리 선조들은 식민지 시절 내내 빼앗긴 들판에도 과연 봄이 오는가 하며 절규했고, 군인들이 총칼과 군화발로 백성들을 짓누를 때 민주의 봄 찬란한 오월이 오기를 모두가 고대했습니다. 날마다 죽음의 땅, 생지옥의 거리를 헤매는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생사의 길목에서 평화의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코로나 판데믹을 2년 넘게 보내면서 지치고 힘든 우리나라 국민들 또한 미래 5년을 책임지고 이 나라를 이끌어 줄 대통령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리의 지도자는 좀 더 밝은 미래를 우리에게 열어주기를, 강한 책임감과 갈고닦은 실력으로 이 위기의 국면들을 헤쳐나가 주기를, 오랜 민주화의 역사를 이어서 더 나은 민주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증오와 비난,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고, 거짓과 위선은 몰아내고, 남북의 화해와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하여 새 시대 새로운 문명의 비전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한참 뒤떨어진 듯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는 실로 눈부시게 발전을 했지만, 정치의 지형은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형식에 얽매여 대통령 후보들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못하는 법정 토론부터 시작해서, 양대 정당의 네거티브한 선거 운동들과 막말들, 제3의 물결을 꿈꾼다면서 야심 차게 도전하지만 결국은 야합으로 끝나고 마는 한심한 작태들, 준비되지 않고 덜 익은 후보를 내세우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과 국민을 위해 나선다면서도 언제나 정권을 잡으면 해이해지는 사람들 속에서 국민들은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합니다.

정치는 우리 일상을 좌지우지하기에 더 나은 정체 제도와 체제를 만들고 그것을 실행하는 인물들을 길러내는 것은 그야말로 중요한데, 선거가 시작되고 벌어지는 부정적인 모습 속에서 국민들은 정치를 혐오하거나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판이 진흙탕 싸움판이라고 해도,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연꽃을 피워야 하고, 놀랍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숱한 어려움과 더럽고 치사한 정치 공작 속에서 자라온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 3월 9일 본 투표에 반드시 참여하셔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3월 4일에 이미 투표를 했습니다.

3월 9일 밤이 되면 아마도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 거대 양당 후보 중 한 명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될 것입니다. 두 후보의 지지세력이 거의 반반으로 갈려 있기 때문에 누가 되든지 간에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크게 실망하고 마음이 힘들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했을 때에 생기는 좌절과 괴로움, 다른 한편으로 상대방을 지지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우리는 우리나라의 국민 상당수가 선택한 대통령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되었을 경우, 무작정 반대만 하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 되었든,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전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울 것은 돕고, 또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데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안 됩니다. 못마땅한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하더라도 국민이 힘을 합쳐서 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길을 통해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란 바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국민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성찰하고 그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국민 스스로가 깨어 있지 못하고, 시민들 자신이 헛된 욕망만을 추구한다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도 거기에 머물게 되고 맙니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위기가 찾아 왔을 때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선거 때에는 더욱 그러하지만 평상시에도 언제나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미가와 시인의 탄식]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성서 미가 예언자와 시편의 시인은 세상에 악한 자들이 들끓는 모습을 보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아, 주님, 그들이 사는 성에는, 보이느니 폭력과 분쟁뿐입니다. ~~ 그들이 밤낮으로 성벽 위를 돌아다니니 그 성 안에는 죄악과 고통이 가득 차 있구나. 파괴가 그 성 안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억압과 속임수가 그 광장에서 떠나지 않는구나."

세상은 늘 변하고 물질문명은 이전과 다르게 몰라보게 발전했지만, 어느 세상이나 악한 궁리를 하고, 권력을 쥐고 자기 맘대로 모든 것을 하려는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남의 것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이 있고, 뺏는 과정에서 억압이나 속임수, 폭력과 분쟁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밭이나 집을 빼앗았다면, 오늘날은 주가 조작이나, 건축업 등을 하면서, 또 금융자본을 이용하면서 특혜와 불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서민들은 대출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지만, 힘 있고 뒷배가 든든한 이들은 수백억 되는 돈도 쉽게 가져다 쓰곤 합니다. 이미 권력을 잡고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 노력하고 심지어 매우 성실하기까지 합니다. 정경유착이라든가, 검언유착이라는 말이 심심지 않게 들리는데,기득권자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빼앗길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서로 결탁하여 어떤 틈새도 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이 세습되는 사회의 불평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습니다. 국민이 자신의 힘으로 권력의 핵심에 대리인을 세워도, 기득권 카르텔은 눈 깜짝하지 않고,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예언자들이 시대마다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불의로 가득한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고 불법을 행한 자들은 알거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대변인들을 내세워서 "하나님이 절대 그러실 리 없다."고 호언장담하거나,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며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세상이 악할 때는 믿던 사람들마저도 유혹에 넘어가고 배반과 배신도 밥 먹듯이 일어납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이유입니다.

"나를 비난하는 자가 차라리, 내 원수였다면, 내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가 차라리,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내 원수였다면, 나는 그들을 피하여서 숨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난하는 자가 바로 너라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바로, 내 동료, 내 친구, 내 가까운 벗이라니! 우리는 함께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님의 집을 드나들곤 하였다."

불의한 세상에서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됩니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면,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히면 몇 배나 더 힘듭니다. 깊은 상처가 생기고, 쉽게 아물지도 않으며, 냉소적 감정만 남아 이 세상에 대한 불신의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릅니다.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고, 주위를 둘러 보아도 믿을 사람 하나 없고, 믿었던 사람에게는 배신을 당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고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요?

세상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할 때에도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삶의 이유를 찾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자신도 이 세상 입장에서 볼 때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울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즉 바울은 죄로 가득한 세상은 살아 있는 세상이 아니라 죽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세상을 뒤로하고 바울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썩었다고 한탄할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도전과 모험을 해야 합니다. 선거판 한복판에서 한쪽은 정권 교체를 말하고, 다른 한쪽은 정치 교체를 말합니다. 정권 교체이든 정치 교체이든 정작 중요한 것은 실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실로 많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최근 시골에서 목회하는 제 후배 목사가 쓴 페이스북을 보니 자신의 살고 있는 군의 인구가 5만이 무너졌다면서, 점점 사그라드는 시골 농촌 마을의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제주도에서 꿀벌 3억 마리가 순식간에 실종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꿀벌이 멸종하면 국내 농산물 생산량의 39%이 사라집니다. 지난 해 우리 국민소득은 일인당 3만 5천 달러가 넘었다는데, 그래서 경제 순위로는 세계 10위라는데,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고 높고, 최근의 뉴스에서는 발달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가고, 남북간의 문제와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서 우리나라의 외교와 안보, 화해 협력과 통일 등 풀어 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 모두를 정치인들이 풀어야 할 몫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환경 켐페인을 실시하고, 교인들 중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돌보고, 마다가스카르의 태풍 소식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교단에서 요청하는 각종 선교 활동에도 참여하는 모두가 어둔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혀 보려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투표하는 것도 그 중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둔 세상을 밝히려는 사람, 잘못된 세상을 고치려는 사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려는 사람은 좁은 길, 힘들고 험난한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를 마치면서 이렇게 씁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권력을 쥐고 기득권자들이 누리는 혜택을 가지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죄악된 세상을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결정합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예수님의 상처 자국이 남게 됩니다. 그의 선교여행은 편안한 해외여행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온갖 고난과 곤경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길입니다.

우리 또한 바울처럼 우리 몸에 예수님의 상흔을 간직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고, 중세 시대 수도승처럼 채찍으로 자신을 때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부러 고행과 금욕의 길을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신이 속한 집단만을 고려하는 것을 넘어서서 더 공적인 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것,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임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우리가 나서자는 것입니다. 저마다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갈 때에도,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도록,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협력과 연대를 외치며 나아가는 삶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사순절은 의를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박해를 받으신 주님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믿음의 선배들, 하나님의 예언자들 또한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어리석어서, 욕심과 탐욕에 물들어서 겪는 고난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다가 얻는 상처를 입어야 합니다. 첫 제자들과 첫 교회의 믿음의 선배들은 선교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고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이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상처 자국이라고 되어 있는 말의 그리스어는 스티그마타입니다. 스티그마타(Stigmata)라는 단어는 원래 소나 양의 소유주가 "이 짐승은 자신의 것"임을 표시하기 위해 고유한 글씨나 문양을 불에 달구어 짐승의 몸에 지져서 낸 표식을 가리킵니다. 고대에는 죄인이나 노예에게도 이런 표식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문양을 보고 저 동물이나 사람이 누구의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난을 무릅쓴 자신의 선교적 삶이야말로 주님께서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낙인을 찍은 표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 사랑 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의 스티그마타를 간직하고 계신가요? 어떤 삶의 모양으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지, 하나님의 사람인지 드러내는 표식이 될까요? 사순절 첫 주일을 맞이하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 삶에 예수의 흔적을 남기시길 빕니다. 여러분이 남기시는 삶의 자취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의 향기를 맡고,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를 읽어 내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사순절을 보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 40년 신앙공동체의 훈련을 생각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주님의 그 광야 40일도 기억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돌판을 깎아 준비했듯, 우리도 찬연한 부활을 맞기 위해 준비된 신앙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때가 악하여 복음을 선포하며, 옳은 일을 하다가도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원하시는 사회는 보이지 않고, 거짓과 속임수만이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주님 안에서 언제나 희망을 간직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으로 주님의 흔적을 남기게 하시고, 매일의 삶에서 새로운 창조와 부활이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는 3.1절 기념 주일로 예배드립니다. 우리 민족을 택하시고, 지난 100년의 세월의 숱한 나날들을 우리와 동행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판데믹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코로나 19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며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소서. 동시에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어둠 속에 감춰진 빛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 사역에 올바로 쓰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예수님의 상흔을 우리 맘과 몸과 삶에 간직합시다. 우리 모두가 세상으로 보내진 하나님의 편지임을 기억합시다. 소리 없이 빛을 비추어 배들을 안내하는 등대처럼 말이 아닌 삶으로 세상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합시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죄악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며 살아가려는 생명사랑 교우들과, 이 시간 함께 예배하고 생명사랑교회와 함께 좁은 길 걸어가는 전국의 모든 믿음의 형제자매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오피니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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