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화목하게 하는 말씀"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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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시편 33:1-8, 고린도후서 5:18-21, 마태복음 12:35-37

인간은 언어적 존재입니다. 언어를 통해 세상과 지각하고 자신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인간 존재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언어가 비틀어지면 생각이 비틀어지고 세상이 비틀어집니다. 별 생각 없이 말해도 인간은 자신이 말하는 대로, 자신이 말하는 만큼 삽니다.

어느 회사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에 어린아이가 그렸을 법한 카드 두 장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 얼굴이 그려진 카드의 제목은 '자주 하는 말'이었습니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공부해라', '빨리해', '늦었어', '일어나'... 아빠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여보', '피곤해', '밥 먹자'... 그 앞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평소 무슨 말을 자주 하나? 생각해보니, '짜증 나', '머리 아파', '귀찮아', '이따가', '지금 바빠', '무슨 말인지 알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세상에 좋은 말들도 많을 텐데, 나는 무심코 이런 말들을 뱉으며 살았습니다. 별 생각 없이 말해도 인간은 말하는 대로, 말하는 만큼 삽니다. 말은 인간 존재의 수준입니다. 요즘 어떤 말들을 하며 사십니까?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어크로스 2018)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 우리는 말이 칼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말로 상처를 주고, 인격을 살해하고, 사람을 짓밟는 일이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국정에 이르기까지 만연합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칼이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지요. 근거 없는 말과 험한 댓글로 힘들어하다 스스로 생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들은 귀는 천 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바닷가 모래 위에 글씨를 쓰듯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쇠 철판에 새기듯 들을 때가 있습니다. 파도가 치면 모래 위 글씨는 지워지지만, 철판 위 글씨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두고두고 그걸 잊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긴 인생에 짧은 말 한마디가 평생 고통을 줄 수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을 평생 가두는 존재의 감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벼운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 흰 종이에 / 손을 베었다 // 종이가 나의 손을 / 살짝 스쳐간 것뿐인데도 / 피가 나다니 / 쓰라리다니 // 나는 이제 / 가벼운 종이도 / 조심조심 / 무겁게 다루어야지 / 다짐해본다 // 세상에 그 무엇도 / 실상 가벼운 것은 없다고 /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 //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 가벼운 말들이 / 남을 피 흘리게 한 일은 없었는지 /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 "(이해인, <종이에 손을 베고>)

어느 날 예수님이 대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무리가 데리고 오니 예수께서 그를 긍휼히 여겨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라 "이분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찬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적대자 바리새인들은 질투심에 못 이겨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태 12:24)라고 힐난했습니다. 거룩한 치유의 은총을 악령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비방한 것입니다. 심한 모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화가 나셨든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라고 입을 여시고선,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 12:31, 34-37) 하셨습니다. 마지막 말씀을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면,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공동번역), 혹은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새번역)라는 뜻입니다. 요즘 내가 지껄이는 터무니없는 말은 무엇입니까? 내가 내뱉는 온갖 쓸데없는 말은 무엇입니까? "물고기가 입으로 낚싯바늘을 물어 잡히듯 인간 또한 언제나 그 입이 문제입니다."(『탈무드』)

예수께서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태 12:35)라고 하시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 15:11) 말씀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 15:18-20) 하셨습니다. 말은 인간 존재의 수준이고 품격입니다.

인간이 말을 하는 존재라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성서에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욥기 1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자신을 계시(啓示)하시는 분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이사야 40:8) 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37)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히브리서 4:12)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첫째로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사무엘하 22:31)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편 12:6)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시편 33:4) 그리고 넷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다고 말합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시편 119:14) 이렇게 진실하고, 순결하며, 정직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입에 달다고 한 시편 기자는 노래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편 119:103) 그리고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10절)이신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11절), "바라고"(81절), "사모하고"(123절), "즐거워한다"(162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萬象)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편 33:6)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이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1) 그리고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고 육신(肉身)이 되신 이 말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라는 글에서 '말을 걺으로서의 말씀'과 '관념으로서의 말씀'을 구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을 걺'(Anrede)으로서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이성 안에 머무르는 말씀은 '관념'(Idee)으로서의 말씀입니다. 말을 걺으로서의 말씀에서 독일어 "rede"는 '말을 하다, 말을 걸다'이고, "an"은 '누구누구에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말씀입니다. 그냥 계셔도 되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관념'(Idee)으로서의 말씀은 말을 걸어오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향연 Symposion』에서 그의 말은 우리의 인격에 말을 걸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향한 살아 있는 말씀'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말을 걺'(Anrede)은 '응답'(Antwort)과 '책임'(Verantwortung)을 낳습니다. 인간이 된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는 "낮고 낮은 인간의 말로 내려가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역사 안에서 오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우리의 인격적인 응답과 책임을 요구합니다. 본회퍼 목사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떤 새로운 하나님 개념이나 도덕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책임으로 부르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을 걺이 중요하다고 설파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그리스도론』 중에서.)

그냥 계셔도 되는데, 홀로 계셔도 되는데,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셔도 되는데, 하늘과 땅을 지으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을 거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말을 거십니다. 우리의 책임과 응답을 요구하십니다. 어떤 요구입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린도후서 5:15, 19)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화목(화해, reconciliation)은 하나님의 말을 걸어오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책임 있는 응답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使臣)이 되[기를]"(고린도후서 5:20), 즉 화해(화목)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사(大使, ambassador for Christ)'가 되기를 요청하신다고 말합니다.

성서를 보니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은 평화의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시편 85:8)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편 119:50)라고 했습니다.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스가랴 1:13)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베드로전서 4:11)고 권면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라고 묻는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는 자]"(시편 15:1-3)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평화와 화해와 위로의 말씀을 걸어오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수백 번, 수만 번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 있습니다. '힘내세요', '걱정 말아요', '용서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워요', '사랑해요'입니다. 인간의 말 중에 가장 귀한 말은 격려하고, 칭찬하고, 긍정하는 말입니다. 격려는 기적을 낳습니다. 격려의 말은 마치 꽃과 같아서 받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손에도 그 꽃의 향기를 남깁니다. 사람들은 어떤 때 말 한마디에 너무나 행복해합니다. 어떤 때는 말 없이 미소만 짓는데 그 향기 오래갑니다. <만날 때마다 하면 좋은 말 25가지>랍니다. "1. 상대의 걷잡을 수 없는 화를 가라앉히는 말 : 미안해. 2.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 : 고마워. 3. 상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말 : 잘했어. 4. 화해와 평화를 부르는 말 : 내가 잘못했어. 5. 존재감을 쑥쑥 키워주는 말 : 당신이 최고야. 6. 상대의 기분을 '업'시키는 말 : 오늘 아주 멋져 보여. 7. 더 나은 결과를 이끄는 말 : 네 생각은 어때? 8. 든든한 위로의 말 : 내가 뭐 도울 일 없을까? 9. 상대의 자신감을 하늘로 치솟게 하는 말 :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대? 10. 열정을 샘솟게 하는 말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11. 상대의 능력을 200% 이끄는 말 : 당신을 믿어. 12. 용기를 크게 키우는 말 : 넌 할 수 있어. 13. 부적(符籍)보다 큰 힘이 되는 말 : 널 위해 기도할게. 14. 충고보다 효과적인 공감의 말 : 잘되지 않을 때도 있어. 15.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호감을 사는 말 :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16. 자녀의 앞날을 빛나게 하는 말 : 나는 네가 참 자랑스러워. 17.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는 말 : 첫 마음으로 살아가자. 18. 환상의 짝꿍을 얻을 수 있는 말 : 우린 천생연분이야. 19 다시 일어서게 힘을 주는 말 : 괜찮아, 잘 될 거야. 20. 상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 : 보고 싶었어. 21. 배우자에게 사는 보람을 주는 말 : 난 당신밖에 없어. 22. 상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말 : 넌 역시 달라. 23. 상대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말 : 그동안 고생 많았어. 24.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에 눈뜨게 해주는 말 : 어디 한 번 해볼까? 25. 백번, 천 번, 만 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말 : 사랑해." (<카스-명언 좋은 글>에서.)

미국의 시인 헨리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의 시 <화살과 노래 The Arrow and the Song>는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아 올리니 /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을 내 눈이 따를 수 없었기에 //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부르니 /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 누가 그처럼 예리하고 강한 눈을 가져 / 날아가는 노래를 따를 수 있으랴. //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어느 떡갈나무에서 / 그 화살을 발견했네 부러지지 않은 채로 / 그리고 온전한 그대로 그 노래를 / 한 친구의 가슴속에서 다시 찾았네."

말을 공중을 향해 쏘아 올리는 화살과 같습니다. 말은 공중을 향해 부르는 노래와 같습니다. 무심히 내뱉은 이 말 한마디가 때론 남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하고, 때론 넘어졌던 사람에게 다시 용기를 내어 일어서게 합니다. 그만큼 내가 지금 하는 말은 그냥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갖습니다. 노래하는 마음, 시를 쓰는 마음으로 하는 말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중에서.)

생각 없이 쏟아내는 불평과 경멸의 말은 땅에 나쁜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좋은 씨앗, 선(善)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당장은 열매가 맺히지 않더라도 좋은 씨앗, 선의 씨앗에서 반드시 좋은 열매, 선의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또 착한 말을] 하[자]"(갈라디아서 6:9-10)라고 바울이 권면합니다. "기회 있는 대로"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작하면 됩니다. 공중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이, 공중을 향해 부른 노래가 어디에 어떻게 떨어질지 모른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한 그루 나무가 숲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한 마리 새가 봄을 알릴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악수가 영혼에 기운을 줄 수 있습니다. 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한 줄기 햇살이 방을 비출 수 있습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작입니다.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린 일입니다."(작자 미상)

교우 여러분, 말이 칼이 되어 사람을 베고 인간을 짓밟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을 타고 혐오와 증오와 차별의 말이 온 세상에 난무합니다. 바이러스만이 아닙니다. 말도 전염됩니다. 성서는 그런 말을 하고 옮기는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다서 1:10)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할 것]"(베드로후서 2:12) 했습니다. 성서는 우리가 이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베드로전서 2:1-2)라고 권면합니다. 왜 우리는 그래야 합니까? 왜냐하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는 자"(베드로전서 2:9-10)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 따뜻한 말, 고운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가슴에 씨앗처럼 떨어져 열매 맺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잡초와 같이 끈질기게 자라는 나쁜 생각을 걷어내십시오. 미움은 미움의 대상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병들게 합니다. 누군가 밀어 넣은 말의 감옥에서 이제는 나오십시오. 그의 말 한마디가 나를 평생 가두는 존재의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숨어 있는 예쁜 말들을 찾아보십시오. 선하고 아름다운 말을 잃어버리면 존재가 무너집니다. 사회가 무너집니다. 우리에게 화해와 평화와 위로의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러므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성서가 권면하는 대로,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십시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입니다]."(베드로전서 3:10, 15-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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