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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 "남을 정죄하지 말아라"
17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서 전해

입력 Jul 18, 2022 10:18 AM KST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가 그리스도인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을 심판하는 일과 정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17일 누가복음 6장 37~38절 말씀을 본문으로 한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심판, 정죄로 번역되는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고찰하며 이 같이 전했다.

먼저 김 목사는 "인간은 관계를 맺는 존재"라며 여기서의 관계는 "빗장' 관關과 '걸리다' 또는 '잇다'는 뜻의 계係가 결합된 단어다. 닫아 단절하기도 하고 열어 연결되기도 하는 것이 관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틴 부버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라고 말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과 내용과 질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목사는 인간의 만남이 아름다운 관계로 맺어지기 위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타인을 심판하는 일과 정죄하는 일이다"라며 "심판하다는 뜻의 헬라어 krinō는 '분리하다', '개별화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다'라는 뜻이다. 심판하지 말라는 말은 아무런 도덕적 판단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분별력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옳고 그름을 가릴 능력이 없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지 못해 우리 인생이 복잡하다"고 했다.

김 목사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성의 능력과 도덕성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며 "그렇다면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스스로 절대 선인 것처럼 처신하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인류의 첫 사람들이 따먹은 선악과는 결국 자기를 모든 행위의 척도로 내세우려는 인간의 태도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너나할 것 없이 하나님의 정의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내하심 덕분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남을 정죄하는 일도 멈추어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정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katadikazō는 '누구를 거슬러 말하다', '죄가 있는 것으로 단정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할 때가 참 많다. 일부분만 보고 그의 전체를 매도하기도 합니다. 오만함이다"라고 말했다.

칼 야스퍼스와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언명 등을 인용하며 "정죄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특정한 시간 속에 못 박는 행위다. 과도할 정도로 남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자기 속에 상처가 많아서다. 차마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이나 열등감이 많은 이들일수록 관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남을 용서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목사는 "심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라며 "용서는 받아들임이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자리에 서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용서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내게 해를 끼친 이에게 되갚아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용서의 마음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용서해야 한다는 신앙적 당위를 들이대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용서 행위의 전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목사는 "용서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인정과 참회 더 나아가 배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참회하지 않았는데도 용서할 수 있는가? 우리는 조건 없는 용서가 참회를 가능하게 할 때도 있음을 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은 당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그냥 받아들이셨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다그치지 않으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이 말 속에 담긴 따뜻함이 베드로 속에 있던 얼음을 녹였다"고 했다.

김 목사는 그러나 "완고하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보면 천불이 난다. 우리 속에서 아물어 가던 상처가 다시 피를 흘린다"며 랍비 해럴드 커슈너의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일어날까>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용서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해럴드 커슈너는 용서란 "슬픔을 벗어던지는 것인 동시에, 더 중요하게는 희생자로서의 역할을 벗어던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며 "즉 죄 지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괴롭히는 일이고 자신을 분노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기에, 그가 나를 희생자로 규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용서라는 것이다. 우리가 용서를 실천할 때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용서와 더불어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라고도 했다. 김 목사는 "일곱 가지 죄의 뿌리 가운데 하나인 '인색'은 물질을 다랍게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리킨다"며 "주는 일을 실천해본 이들은 누구나 고백한다. 하나님은 잘 주는 이에게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눅 6:38)이다. 이 표현은 곡물을 거래할 때 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푸진 사랑이 그러하다는 말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웃의 눈에 어린 눈물은 가끔 하늘을 비추어주는 렌즈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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