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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안에서 예수님 생일 케이크 자르는 일은..."
채영삼 백석대 교수, 23일 SNS서 "예수의 탄생은 축하가 아닌 경배 받을 일" 강조

입력 Dec 23, 2022 05:16 PM KST
youngsam
(Photo : ⓒ채영삼 교수 페이스북)
▲백석대 채영삼 교수

채영삼 백석대 교수가 성탄절을 맞아 예수의 탄생이 축하할 일이 아니라 경배할 일이라며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예수의 탄생을 자기가 익숙한 육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축하하는 행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채 교수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매해 찾아오는 성탄이지만, 이번 성탄에는 강단에서 목사가 한복 입고 설치며 '예수님 생일 케이크' 자르는 기이한 짓을 보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번 성탄에는 '예수님, 생일 축하해요'라며 영아부 아이 생일 챙기듯 하는 경박하고 낯선 축하인사가 오가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채 교수는 "하늘의 영광을 버려두고, 우리처럼 육신을 입은 그분에게 무슨 '축하'인가. 우리 같은 피조물이야 육신의 생명을 얻는 것이 '은혜요 선물'이지만, 어찌 그 영원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처럼 육신을 입으신 고난이 그분께 '축하'할 일인가. 애초에 '영원한 생명'이신 분께서, 육적인 생명을 입고 오신 것이 그분께 무슨 '태어나서 다행스런' 일이라는 것인가"라고 했다.

또 "이것이 다 교회 안에서도 '인간적 관점으로' 사는 일이 익숙해져서 생긴 일이다. 성경을 읽지 않거나, 읽어도 모르는 '육적인 관점에서' 교회생활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의 주제넘은 '축하'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를 땅에 대고 '경배'해야 할 일이다"라며 "동등하거나 먼저 태어난 자들로서 우월한 입장에서 던지는 '축하'가 아니라, 창세전부터 계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이 엎드려 '경배와 찬송'을 올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채 교수는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위는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 오신 그의 사정을 남의 일 보듯 하는 자세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는 "그분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겠다고 오신 것에 대해서 마치 남의 일 보듯 주제넘게 '축하'를 드릴 일이 아닌 것이다"라며 "다 '죄인 된 우리 때문'이 아닌가? 감옥에 갇힌 사형수가 자신을 대신 해서 죽어줄 사람이 들어오는데 '축하'하고 케이크를 잘라주는가? 그것이 '축하'할 일인가? 엎드려 감사함으로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채 교수는 이어 "이번 성탄절에는 차라리, '예배당 밖에서' 슬피 울며 탄식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한 걸음 더 나아면 좋겠다"며 "그분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 없이 망나니처럼 살던' 당신과 나에게까지 찾아오셨다. 하나님을 모르고 거짓과 죄악과 죽음에 갇혀 '이단, 삼단' 같았던 우리들에게까지 찾아오셨다. 어디까지 찾아오셨는가? 죽음의 밑바닥에 던져져 '하나님께 버려진 자들'에게까지 찾아오셨다. 그러므로 성탄의 현장은 '죄인들이 있는 곳, 죽음 한 복판'이다. 예배당 안에서 성탄을 축하하려면, 우리가 그 '죄인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채 교수는 이번 성탄절에는 "'예배당 안에서' 케이크나 자르며 '예수님 생일 축하해요' 같은 낯 뜨겁고 무지한 우리의 모습은 지워버리자"며 "예배당 밖에서, 자식도 잃고, 소망도 잃고, 세상의 죄에 찢기고, 죽음에 짓밟히고 허무에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화려한 궁정이 아니라, 거친 들판에 계셨던 그분이, 지금도 거기 계신다. 이번 성탄절에는, 말구유 같은 곳에서, 아니 길거리 주차장 한 구석 같이 추운 곳에서 그분을 만나, 거기 웅크린 사람들과 함께 계신 주께 한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와 찬송을 올리자. 이 어둠 속에 참 빛이 오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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