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안병무의 민중신학에 대한 위르겐 몰트만의 제언

《신학과 교회》 제18호에 〈민중신학의 그때와 오늘〉 기고

위르겐 몰트만

혜암신학연구소의 연구 저널 《신학과 교회》 제18호(2022, 겨울)에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논문이 실려 이목을 끈다. 이 저널의 특집 주제는 '민중신학에 대한 성찰과 전망'이다. 한국의 대표적 토착화 신학인 민중신학에 대하여 몰트만 박사는 "민중신학의 그때와 오늘"이라는 주제의 연구논문을 기고했다.

몰트만 박사는 한국의 민중신학자들과 연이 있다. 몰트만 박사는 1970년 박봉랑 교수의 초청으로 한국신학대학교를 방문했고, 여기에서 민중신학 창시자 안병무 교수를 만났다. 그 후 연세대 게스트하우스에서 서남동 교수와의 만남도 가졌다. 서광선 박사와도 여러 번 만났는데, 서 박사와는 미국, 홍콩, 타이완 등에서 만났다.

때문에 그의 논문 "민중신학의 그때와 오늘"에는 몰트만 박사가 민중신학의 개척자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했던 '그때'의 민중신학, 그리고 '오늘'날 상황에서 보는 민중신학에 대한 몰트만 박사의 시각이 동시적으로 교차한다. 특히 몰트만 박사는 안 박사의 '민중' 이해에 대하여, 보다 확대된 시각을 제안한다.

몰트만 논문에 따르면 안병무 박사의 민중신학 논의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안 박사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 제출한 논문에서 마가복음에서의 예수의 '백성'에 주목했다. 마가복음서는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지칭할 때 '오클로스'(ochlo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오클로스는 성경에서 '무리'라고 번역하였는데, 안병무 박사는 오클로스를 '민중'으로 해석했다. 이것이 민중신학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이 누구인가'가 주요한 쟁점이다. 일반적으로 민중신학에서 '민중'은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힘없는 사람들이다. 죄인, 가난하고 재산이 없는 소작농(암 하아레츠), 바리새인들이 멸망의 무리라고 간주한 사람들, 세리들 등이다. 특히 마가복음서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쓰여졌다는 사실에 착안할 때 마가가 주목한 오클로스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당시의 노숙자들, 추방자들, 흩어지고 권리를 박탈당한 백성"일 것이라고 안 박사는 생각했다고 이 논문은 밝힌다.

하지만 민중신학에서 '민중'은 타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예수께서 오신 이유가 "백성을 위해" 오신 것이고, 예수가 선포한 메시아 왕국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오클로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민중신학은 본다. 그래서 안병무 박사에게 이 '무리' 즉 '오클로스' 즉 민중은, "예수의 오심과 사역을 위해 중요한 존재"이다.

몰트만 박사는 안병무 박사의 '오클로스'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오클로스는 "사회적 계급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적 개념 곧 굴복당한 자와 피예속자에 대한 지배 개념"이다. 둘째, 오클로스는 "어떤 혁명도 이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즉 로마에 대항하는 젤롯 당원들과는 구별된다. 셋째, "예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오클로스의 편에 서신다." 안병무 박사는, '예수께서 고난당하는 민중과 함께 싸우신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몰트만 박사는 이에 대하여 보다 폭넓은 관점을 제시한다. 다음 두 가지를 주목해 볼 만 하다. 먼저 몰트만 박사는 "예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라고 밝힌다. 예수의 백성은 특정한 무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다. 둘째, 몰트만 박사는 "안병무는 제자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산상수훈은 제자들에게 가르쳐진 것이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태5:1). 또 요한복음서 기자도 증언하기를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세 있음을 선포하셨다: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한20:20-23)

이와 같이 몰트만 박사는 예수를 따르던 백성들을 '민중'에 환원하지 않고, 민중을 통한 예수의 사역과 제자들을 통한 예수의 사역을 구분한다. 예수 사역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것이다. 이것은 민중신학 논의에서는 확장인데, 사실상 민중신학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보충하여 바로 잡은 것이기도 하다. 이 논의에서 논문은 '가시적 교회'와 '잠재적 교회' 개념을 제안한다. 가시적 교회는 보내심을 받은 자와 믿는 자들의 교회이고, 잠재적 교회는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자들의 교회이다. 논문은 이 맥락에서 그리스도를 또한 '계시된 그리스도' 그리고 '숨겨진 그리스도'로 표현한다. 계시된 그리스도는 드러난 교회 안에 오시고, 숨겨진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들 안에서 기다리신다. 민중신학 논의의 장 안에서 숨겨진 그리스도를 찾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한편 이 논문의 마지막 장에서 몰트만 박사는 매우 흥미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민중신학의 요체는 결국 민중의 해방이다. '해방'은, 예수 사역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선포하셨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누가4:18) 그런데 오늘날 자유세계 현대인들이 자유를 뺏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다. 몰트만 박사는 "현대세계는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내세워 사람들을 유혹한다. 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사람들을 매우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현대인들은 돈을 주고 데이터를 사서라도 엔터테인먼트의 정보를 흡수한다. 만약 이같은 미디어가 독재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인간의 "자기 결정권과 인권의 휴머니즘은 신기술의 이름으로 폐지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우리 시대 대학자의 예리하고도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민애 eleison20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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