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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수]에큐메니칼 선교와 로잔운동에 나타난 사회적책임에 대한 논의(1)

발표 : 김은수(전주대 선교신학대학원장/선교학)
행사명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직제위원회 주최 '에큐메니칼 신학 토론회 -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
일시 : 2010년 3월 25일
자료출처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or.kr

 

1. 시작하는 말

현대선교의 흐름은 개신교 영역에서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시작되어 국제선교협의회(IMC)와 세계교회협의회(WCC)로 발전되었고, 이 둘이 합쳐져서 오늘날 WCC 안의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를 중심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선교다. 다른 하나는 세계 복음화 로잔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복음주의 선교운동이다. 로잔운동이라고 하는 이 선교는 세계교회협의회가 해석하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님 중심의 선교를 지향하고 있어서 에큐메니칼 신학에서 해석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해석이 후켄다이크의 현재적 종말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며, 구속사적인 관점의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해석은 대체로 수용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신학적 흐름은 처음 하나님의 선교를 제시한 하르텐슈타인의 신학은 복음주의에서 강조하는 구속사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중시하는 종말론적임을 재발견한다면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신학적 접근의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실제 1960~70년대 양극화로 대변되는 두 흐름은 복음주의가 하나님의 선교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극복되고 있으며 오늘날 선교에서 ‘사회적 책임’은 전도와 함께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로잔운동에서 논의되어온 ‘사회적 책임’에 내용을 먼저 정리하고, 세계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공동의 의무를 실천하기 위한 신학적 차이와 전망을 간략히 살려볼 것이다.

 

2. 에큐메니칼 선교에 나타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

1) 1928년 예루살렘 국제선교협의회-선교과제로서 ‘사회적 책임’의 인식

1928년 3월 24일에서 4월 8일까지 부활절 기간에 예루살렘의 감람산에서 개최된 IMC총회는 실제적인 실무를 다루는 정기적인 대회로서 에딘버러 대회와는 달리 더 이상 개별적 선교회의 대표들이 아닌 국가적인 선교협의회나 교회협의회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선교대회의 배경과 상황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에딘버러와 예루살렘사이에는 세계 제1차 대전(1914-18)과 러시아혁명(1917)이 있었고, 에딘버러에서의 승리를 확신하는 선교적 낙관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서구교회가 비기독교 세계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고 도리어 서구 기독교인들이 서구문명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여 내느냐가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 대회는 세속사회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즉 세속주의(Secularism)가 선교적 과제로 인식되었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무가 강조되었다. 즉 그리스도가 보여준 제사장적 직무인 봉사와 섬김과 희생이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선교적 과제로 고백되었다. 이제 선교의 목표는 더 이상 개인의 영혼구령에만 머무를 수 없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예비적 실현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선교사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종이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많은 복음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대회는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사회적 관심은 이제 선교의 신학적 이해에서 한 보충적인 요소가 아니라 복음 그 자체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선교부의 사회선교적 차원 즉, 보건, 교육, 나눔의 사회복지는 단지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의 선교의 한 영역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선교 그 자체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영적인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반에 걸친 전인적 삶의 주님으로 고백되었다. 이러한 고백에 기초하여 사회복음(Social Gospel)은 결코 값싼 은혜로 선포되어서는 안 될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참된 결과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되었다.

복음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인식은 그 당시 한국교회에 적어도 두 가지의 영역에서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나는 예루살렘 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신흥우, 김활란, 정인과, 양주삼은 산업사회에서의 교회 선교를 촉진하게 되었고, 그해에 장로교 및 감리교의 총회가 각각 농촌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 여파로 1929년 4월에 사흘간 성황리에 개최된 조선 예수교 연합공의회 대회의 제1분과에서는 ‘경제적 파산’을 당하고 있는 당시의 조선이 지적되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농촌사업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다루어 졌다. 또한 이 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농촌부가 공의회에 1930년 상설되었다. 이것은 국제선교협의회가 세계적인 경제파탄으로 인해 제3세계의 농촌이 특별히 피폐해지고 있는 사실을 주시하면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예루살렘대회의 한 영향으로 평가된다.

다른 하나는 한국적 신앙의 적극적 표현을 다짐한 신흥우의 ‘적극신앙단’을 비롯한 토착화의 시도이다. 신흥우는 1926년 YMCA 총무직에 있으면서 기독교 연구회라는 反선교사적이고 反보수적인 기치를 든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그가 1928년 예루살렘 대회를 참석하고 돌아온 뒤 더욱 구체화되었다. 즉 예루살렘에서 논의된 토착화를 한국교회와 연결시키기 위해 1932년 6월 장로교(8명) 및 감리교(10명)의 동지들과 함께 적극신앙단을 결성하고 5개의 신앙선언과 21개의 실천강령을 채택하였다. 적극신앙단은 1935년경 신흥우 자신의 과오 등으로 한국교계로부터 단죄를 받고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기독교 신앙을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에 토착화하려는 적극적인 하나의 시도로서 평가받고 있다.

 

선교사역과 관련하여 사회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하게 된 예루살렘회의는 인종차별주의와 산업화 등으로 인해 그 당시 세계 각처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의 문제들을 선교적 과제로 인식함으로서 선교의 통전적 이해를 갖게 되었다. 사회문제의 여러 분야 가운데 협의회는 특별히 인종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에 대한 다음의 성명서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어떠한 차별이나 이기적인 착취, 그리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어떠한 억압행위도 예수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 당시 세계의 곳곳에 인종차별이 상존하고 있었던 현실에서 교회와 협의회 앞에 이 문제를 선교적 과제로 당당히 제기한 공로는 다른 누구보다도 당시 총무였던 올담(J. H. Oldham)의 덕택이었다. 그는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아프리카 식민 국가들과 관련하여 당면한 중점적인 선교적 과제로서 인종상의 관계를 검토할 것을 제안하였다.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 창립회의에서 그는 기독교적 가르침 안에서 인종상의 관계에 대한 특별연구를 해줄 것을 협의회로부터 위임받았고, 1934년에는 1937년에 개최되는 ‘교회, 사회와 국가에 대한 옥스퍼드 회의’를 위한 연구의장직에 선출되었다. 올담은 그의 저서에서 인종차별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다른 여러 현상들과 관련된 것으로서 결코 순수한 형태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인종간의 긴장과 원한은 이들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의 종합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서구의 우월감과 무비판적인 식민주의적 음모가 깔려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기여로 예루살렘대회는 도처에 있는 모든 기독교 세력이 힘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과 인종차별을 근절하고 인권을 지키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기회균등을 다함께 누릴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국제선교협의회가 해 줄 것을 촉구하는 문서를 채택하였다.

국제선교협의회는 창립초기부터 산업문제와 관련된 기독교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1927년 3월에는 국제선교협의회의 새로운 총무로 W. Paton이 선출되면서 예루살렘대회에서 산업문제를 다루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는 아프리카의 현실에 기초하여 ‘기독교와 산업주의의 성장(Christianity and the Growth of Industrialism)’이라는 소책자(brochure)를 출간하였다. 그의 소책자에는 국회의원이었던 C. P. Trevelyan과 편지를 교환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Trevelya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혼돈속에서 억압받는 다수를 만족시킬만한 경제적 강령을 찾는데 종교가 헌신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다음시대에 공허해질 것은 명백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수가 사회주의자였다는 데에 한치의 의심도 없다.” 이에 대해 Paton은 답하기를 “나는 그리스도가 경제적 상황과 관련된 용어에서 말하는 사회주의자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의 원리는 사회주의가 제공하는 일종의 사회적 표현을 요청하고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었다”고 밝히고, 이와 관련된 기독교의 적절한 이해가 산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느낌을 피력하였다. 이러한 기여를 바탕으로 산업문제에 대해 예루살렘회의는 성명서를 작성하였고 산업문제의 유형을 다음의 4가지로 나누어 그들의 입장을 밝혔다. 1) 미개발지역에 있어서 자본투자: 공공개발대출은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위험한 결합을 피하고 이를 위한 방패막이 있어야 한다. 인적인 투자는 투자를 받는 나라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고 투자하는 나라의 특권을 위해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 경제적 자원의 개발은 공적인 다수를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 2) 미개발지역의 경제적 자원개발: 경제적 개발은 사회적 환경과 사람들의 사회적 행복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지역주민의 동의 없이 외국인에게 땅을 매각하는 일은 비난받아야 한다. 국가의 수입은 토착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교육과 건강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3)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보호: 강제적 노동은 즉각적으로 중지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계약에는 노동시간, 임금, 주거, 음식, 의복, 병원 및 위생시설을 만족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노동환경은 국제 노동기구의 원칙에 따라 입법되어야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를 위한 협의회와 기구조직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교육, 공중보건 및 주거와 같은 사회적 서비스의 개발과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조성에 힘써야 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4) 경제적 팽창으로 인한 국가 간의 마찰해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경쟁 및 자원개발을 둘러싼 제국주의의 경쟁과 토착민과의 파괴적인 경쟁은 비난받아야 하며, 이를 조절하기 위한 국제기구의 활동은 지원되어야 한다.

 

2) ‘사회적 책임’ 신학의 기초-‘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20세기 후반이후 선교신학의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로서 하나님의 선교가 지난 반세기를 지배하여 왔다. 한국에서는 1969년 1월 27일 부터 29일까지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제2차 총회가 “오늘의 한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선교”라는 전체적 주제 하에서 진행됨으로써 공교회의 협의체에 의해 정식으로 이 개념이 도입되었다.그러나 한국 교회의 ‘Missio Dei’의 이해는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1976년 한국신학연구소의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대표적 신학자, 소위 ‘Missio Dei’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신학자와 비판적인 신학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Missio Dei를 찬성하는 심일섭이 “하나님의 선교신학과 한국의 교회 문제”를, 그리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김명혁이 “하나님의 선교 이후의 선교신학의 동향”을 각각 발표하였다. 여기서 심일섭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성찰을 통하는 Missio Dei를 소개하면서 매우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선교 즉, Missio Dei란 말이 세계교회가 공적으로 처음 사용한 때가 1952 윌링엔 협의회(Willingen Conference)부터인 것과 이때 특히 후켄다이크가 이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김명혁도 그 동안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글을 발표해 온 신학자였으나 그 역시 “1952년 윌링엔에서 주장되었던 ‘Missio Dei’개념”이라고 단정 짓는다. 심일섭은 물론 김명혁 역시 이 발제에서 Missio Dei에 대한 건설적인 제안 가령, 김명혁은 “구속 중심”(Missio Christi)인 동시에 창조질서의 회복을 지향하는 Missio Dei의 선교 신학적 정립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면서도 이들은 Missio Dei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 Missio Dei라는 개념이 빌링엔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단정하고 있지만 빌링엔 대회 기간 중 어디에서건 단 한번이라도 Missio Dei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이 있단 말인가? 빌링엔 대회의 공식보고서 󰡔십자가 아래에서의 선교󰡕에서 어디 단 한 번이라도 Missio Dei가 기록된 적이 있는가? Missio Dei라는 용어는 빌링엔 대회 기간 중이나 공식보고서 어디에도 사용된 적이 결코 없다. 물론 한국 상황에서 자료 수집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까지 이와 같이 중대한 신학적 개념의 출처를 명확히 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위에 언급된 두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용어를 사용하여온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Missio Dei의 기원을 정확히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학문이란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확한 기원이 밝혀지면 그것이 Missio Dei 개념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는 최우선의 일차적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Missio Dei의 기원이 흔히 한국에 알려진 학자와 대회가 전부라면 그것은 단지 해석을 위한 참고 내지는 이차적 자료가 될 뿐인 것이다.

Missio Dei의 정확한 기원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감독 하르텐슈타인(Karl Hartenstein)이다. 그는 함부르크대학교의 발터 프라이탁(Walter Freytag) 교수가 편집한 󰡔어제와 오늘 사이에 있는 선교󰡕(Mission zwischen Gestern und Morgen)라는 빌링엔 대회에 관한 독일어 보고서 가운데 ‘신학적 각성’(Theologische Besinnung)이라는 글을 쓰면서 Missio Dei(특별히 라틴어 형태)를 처음 채택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글을 쓴 지 몇 달도 지나지 않은 1952년 10월 1일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라틴어 형태의 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출처(source)는 하르텐슈타인 만이 밝혀 줄 수 있으나 그의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 암호로 조차도 그가 그전에 사용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르텐슈타인은 ‘Missio Dei’를 말한 뒤 곧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에 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Missio Dei’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해석으로 이 개념을 널리 알리는데 공헌한 피체돔(Georg F.Vicedom)은 그의 저서 「Mission Dei」에서 하르텐슈타인의 ‘Missio Dei’를 구속사적 의미에서 해석하였다. “선교(Missio)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사이에 있는 높임 받은 주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공동체의 회중 속에서 완전하신 분의 선포와 그의 나라의 알림을 통하여 구원사(die Heilsgeschichte)를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하는 과제를 가졌을 뿐이다.” 여기서 교회의 비중은 특별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높임 받은 주님은 세계의 주인일 뿐 아니라 교회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회는 땅위의 그리스도의 통치의 중심이자 세계역사의 중심”이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고 성령의 수행자(Trägerin)”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한다는 하르텐슈타인의 구속사적 신학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하르텐슈타인에게 있어서 교회는 폐쇄된 성곽인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언제나 떠나야 하는 일시적인 장막으로서의 교회의 성격과 성육신의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으로 세계와 연대하는 교회의 성격이 강하다.

하르텐슈타인 이후 ‘Missio Dei’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심 되는 신학적 술어가 되었다. 이 신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 사람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후켄다이크(Jan C. Hoekendijk)이다. 그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전도부 초대 간사 및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국제선교협의회(IMC)의 협력위원회 간사(1949-1952년)로 일하면서 1951년 대륙선교협의회에서의 강연을 통해 지금까지의 교회 중심적인 선교를 맹렬히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교회 중심적인 모든 선교이론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할 이 세계에 복음이 증거 되어야만 하고, 이때 하나님 나라와 이 세계와의 충돌은 사도직 안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성과 복음은 근본적으로 함께 속해 있어서 사도직 안에서 복음은 편만하게 된다(롬 15:19).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상과 싸우시는 하나님은 이 사도적 사명의 근거가 되며, 이 사도직 안에서 교회는 비로소 선교적이 된다. 그가 말하는 사도직(Apostolate)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서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즉 교회 스스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활동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살아 있는 손잡이로서 선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기능 즉, ‘하나님 - 세계 - 교회’의 구조를 갖게 된다.

후켄다이크의 교회 중심적인 선교관에 대한 비판의 절정은 1963년 멕시코 세계선교와 복음화대회(CWME)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내용은 위임한 교회의 선교적 구조에 대한 연구 보고서인 「구조 원리로서의 선교」와 웁살라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분과(제2분과) 준비서인 「타자를 위한 교회」에서 보인다. 그는 역사를 선교의 결정적인 내용으로서 이해하며 이스라엘이 메시야에게 기대한 성서적 “샬롬”(schalom)을 이 땅에 수립하는데 선교의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샬롬은 개인적 구원의 이상의 것으로서 평화, 공동체, 정의, 구원, 용서, 기쁨 등이다(시편 85편). 그에 의하면 이 샬롬은 사회적 사건이며 인간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일어나는 사건이다. 즉 ‘평화를 만드는 것’(Schalomatisieren)이란 생명에 관계되며 그 안에 종사하고 있는 때 묻은 손들을 통해 세 가지 지평인 ‘생명과 정의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주위에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 평화를 만들어 감으로써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위해 교회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역사 이해는 다분히 현재적이며, 하나님 나라의 ‘벌써’(alredy)와 ‘아직 아니’(not yet)의 종말적 이해에서도 ‘벌써’에 강조점이 있다.

후켄다이크는 하르텐슈타인이 말한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사이에 서 있는 현재 중간시대의 결정적인 예표로서의 선교를 현재적 종말론적 시각에서 더욱 전개시켜 나갔다. 하르텐슈타인은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 통치의 ‘벌써’(schon)와 ‘아직 아니’(noch nicht)의 철저한 긴장 속에 서려고 했으나 그는 아직 숨어있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강조함으로서 ‘아직 아니’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비해 후켄다이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숨어 계시는 활동과 실제 이 땅위에 펼쳐지고 있는 세계 역사의 진행과정을 적극적인 상관관계로 파악함으로써 ‘Missio Dei’를 철저히 종말론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있다. 여기에는 피체돔처럼 아들의 파송이나 교회의 파송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파송이 강조되므로 세계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출애굽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분리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관점을 통해 격변하는 세계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화되었고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에서 폭 넓은 선교의 영역과 과제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그의 선교신학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세계교회협의회는 사회참여를 활발히 전개하였다.

 

3) 1968년 웁살라 세계교회협의회 - ‘사회적 책임’ 논쟁의 정점

웁살라총회가 열릴 당시 세계상황은 혁명적인 격변기로서 대회가 직면한 강력한 도전은 사회정의와 인간성회복의 필요성이었다. 그리하여 웁살라총회는 제2분과위원회에서 “선교의 갱신”(Renewal in Mission)을 주제로 다루면서 “인간화”(humanization)를 선교의 목표로 삼았다.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로 주장함으로서 선교의 목표를 전통적으로 ‘복음화’라고 이해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고, 이것은 한국교회에서도 소위 ‘인간화’냐 ‘복음화’냐 라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로 내걸었던 웁살라총회의 제2분과는 그 준비과정에서 부터 많은 도전과 비판에 직면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와 국제선교협의회가 1961년 인도의 뉴델리총회에서 통합되어 선교(IMC)와 교회(WCC)가 일치를 이룸으로서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이며 근거가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회전체로서의 선교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교회의 선교적 구조’(Die missionarische Struktur der Gemeinde)라는 연구 작업을 의뢰하였고 그 결과는 멕시코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연구서는 그 후 함부르크대학교의 선교학 교수였던 마굴(H. J. Margull)에 의해 편집되어 󰡔구조 원리로서의 선교󰡕(Mission als Strukturprinzip)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선교적 교회구조를 위한 이러한 노력은 서유럽교회와 북미교회에서 각각 계속 되어졌는데 서유럽에서는 󰡔타자를 위한 교회󰡕(Die Kirche für andere)라는 이름으로, 북미에서는 󰡔세계를 위한 교회󰡕(Die Kirche für die Welt)라는 이름으로 작업이 이루어 졌다. 그 두개의 연구결과는 곧 하나의 단행본으로 엮어져 최종적으로 󰡔타자를 위한 교회󰡕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웁살라대회의 선교분과의 신학적 근거로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타자를 위한 교회’라는 명제는 본회퍼(D. Bonhoeffer)의 교회론적 형식에서 비롯된다. 그에 의하면 “교회가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이 진정한 교회이다”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1944년 8월 감옥에서 ‘작업초안’(Entwurf einer Arbeit)을 스케치하였는데 기독교의 존립근거를 조사하면서 얻었던 결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교회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교회의 재산을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주어야만(muß) 한다. 그리고 인간공동체 삶의 세계적 과제에 대해서 교회는 지배해서가 아니라 돕고 봉사하면서 참여하여야만(muß) 한다.” 그의 이러한 신학적 작업의 초안이 내포하는 뜻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활동(Gotteshandeln in unserer heutigen Welt)을 인식하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본회퍼의 이 같은 주장을 󰡔타자를 위한 교회󰡕에서는 샬롬(Schalom)이라는 성서적 개념으로 수용하였고, 이를 하나님의 선교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았다. 이 성서적 샬롬에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인간 삶의 모든 전망들이 포함된다. 그것은 정의, 진리, 공동체 그리고 평안, 화평 등등으로 불려진다. 가령 미가에서는 장차 나타날 메시야를 ‘평강’(Schalom)이 될 사람이라고 했으며(미가 5:5), 바울은 메시야를 ‘화평’(Schalom)이라고 부르며(엡2:14), 복음을 ‘평안’(Schalom)의 복음이라고 하였다(엡6:15). 메시야적 목표로서의 이 샬롬은 헬라어의 평화(eirene)가 내포하고 있는 마음속의 평안으로만 결코 해석될 수 없고 사회적인 사건으로 그리고 인간사이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샬롬은 특정한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Gottes Gabe)로서 발견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계획의 초점(Brennpunkt)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발견된다. 즉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계는 세계이고 교회는 세계의 부분으로서 정의되어 진다. 바로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은 전통적인 명제인 “하나님(Gott) - 교회(Kirche) - 세계(Welt)”의 순서가 “하나님 - 세계 - 교회”로 뒤바뀌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기초하여 웁살라총회 제2분과의 ‘선교의 갱신’이란 제목의 초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화를 선교의 목표(die Humanisierung als das Ziel der Mission)로서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역사적 시점에서 메시야적 목표의 의미를 우리는 중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근본적인 질문은 진정한 인간(wahren Menschen)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공동체의 결정적인 관심은 선교의 목표로서 그리스도의 인간성(die Menschlichkeit Christi)을 드러내는데 있어야만 한다.”

논란이 거듭된 이 초안은 본회의 제1소분과에서 ‘선교적 위임’이라는 주제아래 새로운 초안이 마련되었다. 보다 완곡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인간성은 단지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른 신앙을 가진 자나 종교가 없는 자들과의 만남은 우리를 불가피하게 대화(Dialog)로 이끈다... 그러나 대화는 선포가 아니다. 대화는 전체적 증언을 보충한다”

결론적으로 웁살라총회의 제2분과에서 다루어진 ‘선교의 갱신’에 대한 최종성명서의 가장 큰 약점은 선교에 관한 서로 다른 서술들이 긴장관계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한편으로는 선교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한 복음을 아직도 듣지 못한 수억의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영원불변한 사명이라고 정의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자체가 복음을 들어야하는 선교의 영역이라고 말함으로써 선교란 전적으로 타자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으로 정의한 전자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말았다. 결국 테일러가 개인의 회심에 기초한 복음과 사회적 책임의 복음이 서로 대립된 채 두 개의 복음을 웁살라대회가 말하고 있다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이것을 채택한 이유는, 그가 개인 회심에 기초한 전통적인 선교신학과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의와 평화 등의 문제까지도 무시하지 않는 사회 책임적인 선교신학을 서로 연결 지으려는 노력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를 위해 그는 웁살라를 비판하는 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들이 요구하는 전통적인 개인회심의 선교에 관한 문구들을 성명서에 삽입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웁살라총회의 전체적인 신학적 기조와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어설프게 끼워 넣게 된 형태가 되어 도리어 최종성명서의 신학적 일관성을 잃고 말았다. 또 이것은 웁살라를 비판하는 자들의 복음화에 대한 요구를 제대로 수용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간화에 대한 주장과 조화를 이루어 선교를 통전적으로 이해한 것도 아닌 애매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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