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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4 04:00
새로운 정의
글쓴이 : 손규태


설교본문: 마태복음 5:17-20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폐지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계명을 지키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5:17-20)
 
 
오늘 우리는 1993학년도 처음 일주일을 지내고 나서 이 거룩한 장소에 모였다. 연구원 학생들을 제외하고 우리 학부 학생들 가운데는 학년에 따라서 지나간 3년 혹은 2년 혹은 1년 동안의 대학생활을 반성하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 성장한 과정 그리고 나태했던 시간들을 이 시간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여기 앉은 신입생들을 포함해서 우리는 다양한 삶의 조건들을 뒤로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성공회의 오랜 신앙의 유산을 통해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 자리에 앉게 되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깊은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별로 확신도 가지지 못한 채 마지못해서 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개중에는 별 자부심이나 신앙심도 가지지 못하고 이 대학에 들어 왔으나 그 동안의 과정을 통해서 누구 못하지 않은 자기 확신과 신념을 얻은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우리 학생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바라는 희망들을 각기 다를 것이다.
우리 각자가 이렇게 각기 다른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또 각기 다른 희망을 가지고 이 자리에 있지만 본 대학이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게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대학이 내걸고 있는 표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학”이라는데 잘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시대는 무엇이고 새로운 대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중세중기부터 교회에서 신학을 가르쳐서 사제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유럽에서 시작되었던 대학은 그 동안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리스 사상의 부활을 가져오는 중심지로서 그리고 종교개혁 당시에는 교회개혁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계몽주이 이래로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대학이 맡아 왔다. 오늘날에도 대학은 학문과 기술의 발전과 전수의 중심지로서 그 어느 때 못하지 않게 사회정치적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학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실천함으로써 정신사에서 그 중심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는 어떤 것이며 또 새로운 대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1985년 소련수상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소연방의 붕괴 및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해서 발생한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사라졌을 때 당시의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고 형성되는 질서를 “세계의 신질서”, 즉 새로운 세계를 말한바 있다. 레이건이 말하는 신 세계질서란 것은 이제까지의 동서 냉전(冷戰)에서부터 남북의 열전(熱戰)으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의 실체는 곧 이락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과 함께 국제무역질서에서의 강대국의 엄청난 시장개방 압력 등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 대학이 말하는 새로운 세계란 미국의 레이건이 말하는 신 세계질서는 아닌 것이다.
그러면 우리 대학이 말하는 새로운 세계란 요즘 온갖 뉴스 매체들이 떠들어 대고 있는 김영삼정부의 “신학국”과 같은 것인가? 신학국의 실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없어서 말할 수는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구한국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구한국 시절에는 청와대 앞이나 등산객이 인왕산에 오르지 못했으나 지금은 거기에 갈 수가 있다. 구한국 시절에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주요 공직자들이 주로 안가에서 술 처마시고 계집질하고 심지어는 서부활극까지 벌였는데 신학국에서는 그런 집들을 없앤다는 것이다. 구한국 시절에는 강남의 복부인이나 투기꾼이 장차관 해먹었는데 신한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견디어 내지 못할 정도로 고도의 도덕적 수준에 오른 것 같기도 하다. 구한국 시절에는 장차관들은 자기 자녀를 미국 사람 만들어서 대학에 정원 외로 특별 입학시켰으나 신한국 시절에는 그런 사람들은 장관직에서 쫓아낸다. 그러면 우리 대학이 말하는 새로운 시대란 바로 이러한 신한국의 시대를 말하는 것인가? 그런 것을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서 적어도 새로운 세계 아니 신한국이란 적어도 국가의 자주권이 확보되어 외국의 군대들이 완전히 철수되고 분단된 나라는 통일이 되고 아무리 무능력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연대성 가운데서 내일의 먹고 자고 입는 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자연환경의 피해를 입히지 않는 민주적인 국가일 것이다. 외국군대가 제멋대로 군사훈련을 하고 있고 국토가 분단되어서 같은 민족을 적으로 알고 있고 빈부의 격차가 말로 할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는 신한국이니 새로운 세계를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제반 모순들을 그대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사회구조를 그대로 둔 채 길이나 몇 미터 더 널린다든지 인왕산이나 개방한다든지 투기꾼들을 장관자리에서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신한국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대학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학이 새로운 대학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그 동안의 몇 가지 이유들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첫째는 대학의 상업주의가 그 가장 큰 병폐였다. 이러한 병폐는 총장은 무조건 돈 잘 벌어오는 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학입시 부정을 해서라도 돈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켜야 한다는 사건에서 역력히 드러났다. 그 다음은 대학의 자유정신의 상실이다. 대학은 그 동안의 학생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자유정신을 구현하는 일에 있어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대학은 여전히 교육 관료들의 통제 하에 있다. 일류 대학이란 출세에만 급급하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를 왜곡되게 이끌어 가는 엘리트들의 생산에만 기여했다.
따라서 새로운 대학 없이는 새로운 세계가 불가능하고 새로운 세계 없는 새로운 대학도 불가능하다. 이 둘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 그래서 우리 대학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대학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학이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저는 우선 여기에서 사도 파울이 로마서 12장 2절에서 제시하고 있는 권면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성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
여기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학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해서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고의 전환은 성서가 말해주고 있듯이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시대가 흔히 생각하고 있듯이 대학은 출세를 위한 졸업장을 따는 곳이나 또는 단순히 세상에 나가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축적하는 장소쯤으로만 생각한다면 이것은 과거의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세라고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곧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의 전환의 결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뜻의 추구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의 뜻, 자기이기주의 탐욕과 성공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즉 이 세상을 사랑하고 그 아들을 주어 구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전환한 사람들이다. 우리 대학은 학문적으로 최고의 자리에는 올라 있지 못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있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대학의 상을 “새로운 의”라고 하는 도식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즉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대학은 오늘 복음서가 말하고 있는 새로운 의를 통해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20절에서 “너희의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 보다 낫지 못하면 너희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즉 새로운 세계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옛 세계의 시민으로서 자기를 내세우고 있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다. 금식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철저했고 안식일을 정확하게 지켰다. 그들은 11조를 제대로 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자선을 베푸는 계명도 철저히 지킨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이 되려면 이들의 의를 능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생 여러분들! 우리 대학이 어떻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대학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학교시설도 모자라고 또 머리가 우수한 사람들이 모인 것도 아니다. 대학의 규모도 적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능한 길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의를 우리가 다함께 실천하는 것이다. 그 길을 예수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5리를 가자면 10 리를 가주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주고 왼 뺨을 치면 오른 뺨도 대주는 것이다.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그 이상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데서 새로운 세계가 동트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이러한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에 새로운 대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대학에 속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1993년 3월 10일 성공회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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