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마태복음      5:4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5:4)

 

 우리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특히 정태수의 한보회사 사태의 발생과 처리과정을 보면서 허탈감을 감출 수가 없다. 김영삼 대통령이 국가의 수반으로서 깨끗한 사회를 외치면서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부패한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감옥에 넣고 재판하고 있는 과정에서 그의 핵심 세력, 말하자면 민주계가 온갖 종류의 비리와 이권에 연루된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비리수사를 맡은 검찰은 몇 년 전의 수서 사건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선에서 여야의원 몇 사람을 희생시키고 사건을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과 부패 그리고 권력남용이 언제 이 나라에서 깨끗이 추방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절망스럽기 한이 없다. 어떻게 우리 사회는 부패한 악인들이 세도를 잡고 잘 살아가는데 깨끗하고 선한 사람들은 고통만 당하고 지내야 하는가? 어제 어떤 중소기업 사장은 부패한 관리들이 뇌물을 받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개미떼 같이 달려드는 현실에서 기업을 하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고백한 일이 있다. 정말 인간사란 이렇게 모순으로 가득한 것일까?
구약성서 욥기는 인간의 삶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이나 축복이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우스 사람 욥은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사람이다. 그는 자식의 축복을 받아 아들 일곱에 딸 셋을 둔 다복한 사람이었다. 재물의 축복도 받아서 양이 칠천 마리에 약대가 삼천 마리 그리고 소가 오백 겨리에다 암나귀가 오백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돌볼 종들도 많이 있는 동방에서 가장 큰 자였다. 자식들도 효도를 극진히 했으며 그들도 하나님 섬기는 일을 어김없이 준수하는 자들이었다. 이만하면 진정 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없었다. 물론 슬퍼하는 일도 없었다.
이 사람을 두고 사탄까지 배석한 천상회의에서 욥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순전히 복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인과응보의 논리를 펴서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들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도 하고 배반하기도 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상회의 결의대로 욥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했다. 아들딸들이 맏형 집에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태풍이 불어와 집이 문어지면서 그들이 다 압사하고 말았다. 거의 같은 시각에 갈대아 사람들이 약대를 타고 와서 그의 가축들을 몽땅 강탈해가고 지키던 종들을 죽였다. 그리고 스바 사람들이 와서 소를 빼앗아 갔고 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종들을 죽이고 재물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들과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재앙에 대해서 욥은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갈 것이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는 자도 여호와시라고 그를 찬양했다.”(욥 1:20).
그러자 다시 한번 천상회의가 열렸다. 욥이 자식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잃었으나 그것은 자기와는 직접적으로는 무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신체를 공격해 보기로 했다. 욥의 몸 전체에 악창과 종기가 나서 하도 가렵고 견디기 힘들어서 깨진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고 괴로워하자 그 아내가 보다 못해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않겠느냐”(욥 2:10)하고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다. 여기서 욥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축복과 고통을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찾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만사가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선하게 죄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하고 죄를 짓는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하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우리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선한 사람도 벌을 받아 고통을 당하고 악한 사람도 복을 받아서 잘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사상은 미래의 희망이며 현실태는 아니라고 하는 데서 아마도 종교는 출발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인과응보는 우리의 현세적 삶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 세상, 즉 차안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 세상은 단지 모순에 가득 차 있을 뿐이며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인과응보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보더라도 성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현세적인 것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는 우리에게 숙명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숙명론은 예정론과는 다르다. 숙명론이란 알려지지 않은 실체에 의해서 인간의 운명이 자의적으로 규정된다고 하는 비관론적 세계관이다. 그러나 예정론은 세계의 창조주며 심판 주이신 하나님에게 자기의 삶 전체 즉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의탁하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고의 문제를 숙명론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신약성서 본문 마태복음 5장 4절도 읽어야 할 것이다. “슬퍼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슬퍼하는 자들이란 무슨 뜻이며 왜 그들이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슬퍼하는 자란 일차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직면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슬퍼하는 자의 전형으로서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 야곱을 들 수 있다. 막내아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간 것을 모르는 야곱은 다른 자식들이 제시하는 피 묻은 옷을 보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배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다“(37:34-35).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처럼 슬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무엘하 18장에 보면 다윗 왕을 배반하고 왕이 되려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의 장수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자 다윗왕은 기뻐하기보다는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33절) 하고 슬퍼해 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자식을 앞세운 사람들의 슬퍼함을 말하는 이야기가 성서에는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이 밖에도 이 세상에는 수 없이 슬퍼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암에 걸려 죽어 가는 어린 자식들을 둔 부모들, 억울하게 남편에게 당하고 쫓겨난 여인들,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의 버림을 받은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장애아라고 부모에게 버려진 어린이들, 친구를 돕겠다고 빚보증을 섰다가 알거지가 된 사람들,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눌려 고통당하는 사람들, 그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이렇게 슬퍼해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슬퍼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 중병에 들어 죽어 가는 자식을 가진 부모에게 어떻게 복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지극히 평면적 답이지만 어려운 처지에서 고통당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위로의 말 가운데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말한다. 즉 고통이란 일정한 경험들을 매개한다.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서 삶에서 성숙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이웃이나 친구들의 우정과 선함을 발견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도 깨달을 수 있다.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서도 보통 때 일상적 삶에서 무의미하던 관계가 고통을 통해서 더욱더 의미 있는 관계로 바뀔 수도 있다. 따라서 고통의 경험인 슬퍼함은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도 거의 15년 동안 신장투석을 하고 얼마 전에는 대장암 수술을 받는 투병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여기서 잃은 것도 많다. 금전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주석을 위해서 병원에서 누어있는 시간들을 계산하면 수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하나님은 병마에서 나를 살아가게 하시고 나아가서 대학에서 은퇴하기까지 일을 했고 지금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또 자식들도 나의 힘든 삶을 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자기들 일에 열중하여 가정을 이루고 손자손녀들을 두고 큰 걱정 없이 살아간다. 따라서 내가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뒤돌아보면 감사할 따름이다.
둘째 복을 받아야 할 슬퍼하는 자는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남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 보다 고귀한 인간행위는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신체적 조건들이나 사회적 환경들로 인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웃 사랑이 곧 슬퍼해 하는 사람들의 자세일 것이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나 이들을 슬퍼해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슬퍼해 하는 자들에 동참하기 위한 제도들을 만들어서 같이 사는 복지사회를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런 대책들도 취하지 않고 있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슬퍼해 하는 자는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하고 이로 인해서 어려움을 받는 자들에게는 당연히 위로가 주어져야 한다.
셋째 이것은 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이지만 자신의 죄성에 대해서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참회할 줄 아는 자”, 자기의 과오에 대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엄격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은폐하는 자들, 이번 한보사건에서도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정치인들 특히 김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은 복을 받을 수 없다. 정치적 살상과 부정축재를 감행하고도 뻔뻔스럽게 애국 운운하는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사람들은 복을 받을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가문은 이미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있다. 아들 지만이는 아편중독자가 되었고 딸 근혜는 정신적 경직성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다. 정말 우리 정치사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통회하는 사람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죄를 덮으려 하고 악을 호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나라들은 복을 받을 수 없다.
슬퍼하다는 말은 인간의 가장 신실한 마음의 상태이다. 죄의 참회에 있어서나 고통에 동참하는 데 있어서나 또 친히 고통을 당하고 있는 처지에 있어서나 슬퍼하는 마음이야말로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들에 대해서나 가장 신실한 자세를 가지는 자세이다. 슬퍼하는 마음과 반대되는 마음이 완악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슬퍼하는 마음은 따라서 참회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후회하는 마음과는 전혀 다르다. 요즘 한보사태와 관련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참회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만 재수 없게 걸려들었다고 후회하지 참으로 내가 못할 짓을 했다고 참회하는 정치가는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게 하는 일이다. 일본에서도 이런 부패사건이 많았고 몇몇 사람들은 자살하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참회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슬퍼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후회하는 마음만 지배하는 데 우리의 비극이 있고 또 복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이번 한보사태의 수사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범죄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그 아들, 여야 정치인들 그리고 은행장들뿐만 아니라 이것을 수사하는 검찰이 슬퍼하는 마음으로 이 일에 종사하지 않고 어물쩍하고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의심에 차 있다. 의심은 사람들을 회의로 몰아간다. 회의는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독일어에서 의심, 회의, 절망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즉 위로를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 저희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놓고 슬퍼해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이런 사건을 놓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이런 현실을 놓고 거리로 나가서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 안기부법 강화를 통해서 국민의 기본권들을 제약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악법에 대해서 슬퍼하고 그것과 싸우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노동법을 강화해서 노동자들을 강제 해직시키고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형벌이 내릴 것이다. 노동악법에 대항해서 민중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하는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 북한의 황장협 망명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극우집단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황장협의 망명을 통해서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의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한보사건에 대해서 통회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 한보사건에 대해서 후회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형벌이 내려질 것이다. 한보사건 수사를 맡은 검사들이 슬퍼한 마음으로 임하지 않을 때 그들은 천벌을 받을 수 없다.
1997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