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
작성일 : 12-11-14 04:17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되다
글쓴이 : 손규태
 


설교본문: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마 5:6)
 
어제 이번 한보사건의 중심적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의 홍인길 의원이 청문회에 나왔다. 그는 정태수라는 사람에게서 청탁을 받고 은행장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대출을 가능하게 그리고 용이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해준 대가로 10억이라는 돈을 받아서 구속 기소되었다. 그는 은행장들과는 달리 자기가 한 일들을 어느 정도 순순히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도 역시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 진실이란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부분이다. 그는 김영삼의 심복으로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나 어제의 청문회에서 매우 중대한 사실 하나가 밝혀졌다. 그것은 홍인길이 받은 10억원과 그 밖에 용돈들로 그는 민주화 운동하다가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나쁜 돈을 받기는 했지만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좋은 곳에 썼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돕는 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야당의 어려운 젊은 국회의원인 김민석 의원과 그의 어머니도 도왔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가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과거의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어려운 처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도운 것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없다. 누가복음 16장 1-13장에도 보면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라고도 했고, 또 불의한 재물에라도 충성해야 재물을 맡을 수 있다고 했다. 누가복음의 내용은 위의 홍인길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그는 불의한 돈을 통해서 그 주변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의 불의한 뇌물수수의 죄가 그것을 민주화운동 동지들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해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뇌물을 받음으로써 민주화운동가로서 가졌던 자신의 도덕성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하다고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불의한 돈을 제공함으로써 그것을 받아 사용한 사람들의 명예와 도덕성도 붕괴시키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동기가 좋으면 선이라고 하는 심정윤리의 가치판단이 가진 치명적 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그가 민주화운동으로 불구의 몸이 되었거나 여타의 사정으로 인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민주화운동 포상법”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들을 지원했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다 부상당한 군인들에게 모든 혜택이 돌아가는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하던 사람들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발견하게 된다. 정의는 그 목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수단과 과정에서도 정당성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는 그 결과에서 뿐만 아니라 그 시작과 과정에서도 정당성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에서는 “정의” 개념이 무엇보다도 강조되고 있다. 오늘 본문 6절의 대 전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의를 갈망하고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의를 향한 목마름”이다. 그러면 마태가 말하고자 하는 의란 무엇인가? 왜 마태는 마가나 누가와는 달리 그의 복음서에서 일곱 번이나 이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주변의 강대국들의 자의적 지배와 함께 잘못된 왕들의 통치로 인해서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이집트 땅에서 노예로 지내다가 힘의 공백기를 틈타서 그곳을 탈출한다. 사실상 이러한 노예생활과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이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었다. 이때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 주신 하나님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 떨기나무 불꽃에서 만난 야훼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은 당시나 오늘날까지의 다른 신들과 달리 지배자, 강한 자. 부자의 편을 드시는 분이 아니라 억압당하는 자, 가난한 자, 고통당하는 자들의 편이 되어 그들을 해방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있는 자”(출 3:14)라고 그 전능성을 말한 다음 그는 “해방의 하나님”(출 3:7-10)이라고 속성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관대한 땅에.. 이르게 하노라.”

그들은 광야생활을 거쳐서 가난안의 산지에 정착했지만 그곳 토착민들의 공격에 늘 고통을 당해야 했다. 바다에 연한 지역에 대한 불레셋 인들의 침략이나 내륙에서의 미디안 족속들의 약탈은 그들의 초기 정착생활에서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천신만고 끝에 이스라엘은 주전 1000년경 강대국 이집트와 아시리아가 힘이 약해졌을 때 왕국을 세운다. 이것이 다윗 솔로몬 왕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다윗 이후 솔로몬으로부터 시작되는 독재정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더욱 큰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솔로몬 치하에서 이집트로 망명을 갔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건설부 장관을 하던 여로보함이다. 그는 솔로몬이 죽고 나서 돌아왔다. 띠 때 세겜에서 12지파들의 대표가 참가하는 국회를 열과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까를 의논한다. 즉 더 이상 솔로몬과 같은 독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 솔로몬의 후계자인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독재를 배격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백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더욱 압제를 가할 것을 선언한다. 그러자 유다지파와 벤야민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돌아온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사마리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을 세운다. 그러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와 벤야민 지파만을 데리고 예루살렘에다 남유다 왕국을 건설한다.

이러한 왕국분열 하에서 남북왕조는 서로 23차례에 걸친 동족간의 전쟁을 한다. 이런 두 왕국의 적대적 관계뿐만 나이라 이들 나라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들이 제기된다.

첫째는 유대의 절대왕정의 계속되는 억압과 착취가 문제가 된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열왕기나 역대기를 보면 그 후의 왕들도 계속해서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8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였던 아모스는 그 참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암 1: 6-8).

둘째는 정치세력들 뿐만 아니라 종교 세력들도 똑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종교분리가 안 된 상태였으므로 이들 지배세력은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한 패가 되어 있었다. “너희는 베델을 찾지 말고, 길갈로 들어가지 말고, 브엘세바로 넘어가지 말아라. 길갈 주민들은 반드시 사로잡혀 가고, 베델은 폐허가 될 것이다."  너희는 주를 찾아라. 그러면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주께서 요셉의 집에 불같이 달려드시어 베델을 살라버리실 것이니, 그 때에는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공의를 쓰디쓴 소태처럼 만들며, 정의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자들이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신 분, 어둠을 여명으로 바꾸시며, 낮을 캄캄한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올려서 땅 위에 쏟으시는 그분을 찾아라. 그분의 이름 '주'이시다. 그분은 강한 자도 갑자기 망하게 하시고, 견고한 산성도 폐허가 되게 하신다.  사람들은 법정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는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 너희들이 저지른 무수한 범죄와 엄청난 죄악을 나는 다 알고 있다. 너희는 의로운 사람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였다.(암 5:5-12).

셋째로 이스라엘은 야훼 신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구출해낸 하나님을 멀리하고 가나안의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제사장들은 나 주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지 않으며, 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알지 못하며, 통치자들은 나에게 맞서서 범죄하며, 예언자들도 바알 신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우상들만 쫓아다녔다."(렘 2:8). 이렇게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예언자들은 그를 알지 못하며 바알이라는 가나안 백성들의 우상만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처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말라했다.” 이러한 정치가가 백성들을 억압하고 재판관이 돈을 받고 가난한 자들의 피를 빨아드리는 상항에서 어찌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 하나님이 약속한 나라를 갈망하지 않겠는가?

이 때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하거나 항의할 수 없는 목마른 처지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성서는 이 때 상항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떠돌아다녀도, 그 말씀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 날에는 아름다운 처녀들과 젊은 총각들이 목이 말라서 지쳐 쓰러질 것이다.(암 8:11-14),

다음으로 사람들은 어렵고 답답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에 대한 기대와 갈망으로 가득 차게 된다. 왜냐하면 그 어디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사 55:1-3).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만 기대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을 간절히 갈망하게 된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손을 붙들어 주고, 너를 지켜 주어서,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니,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 줄 것이다. 나는 주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다. 나는, 내가 받을 영광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고, 내가 받을 찬양을 절대로 우상들에게 양보하지 않겠다.”(사42:6-8). 상한 갈대도 꺽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꺼지 않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 의에 목말라하고 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듣고 그 소원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나님의 의가 확고하게 존재하고 실현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약속을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벧후 3:12-13). 그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실 것이다.
1997년 4월 12일        


비밀글
글쓴이 자동등록방지
좌측의 코드를 입력하세요.
 
비밀번호  
 
   
 

베리타스아카이브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136-46 한국기독교회관 1013호 Tel: 02-3673-3927 Fax: 02-6008-7568
개인정보취급방침 Copryrightⓒ 2008 THEVERITAS.co.kr All Rights Reserved. 등록번호: 서울 아00701 등록일:2008.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