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마태 8:18-22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 옆에 둘러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고 이르셨다.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기를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또 제자 가운데 하나가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
(마태 8:18-22).
중세기 1000년 동안의 교회사를 쭉 읽어보면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발견하게 된다. 중세기 유럽의 정치사는 주로 교황과 황제 사이의 권력 다툼의 이야기로 장식이 되어 있다. 8세기 프랑크 왕조의 칼 대제의 시대는 기독교는 단순히 정치의 시녀에 불과했었다. 교황은 물론 중요한 주교들의 임면권은 전적으로 황제의 것이었다. 그러나 12세기에 들어와서 사정은 달라져서 교황 인노센스 III세 시대에는 독일황제 하인리히 3세는 황제지위를 얻기 위해서 카노사라고 하는 교황이 머물고 있는 성채에 찾아와서 3일 동안 무릎 꿇고 파문의 취소와 황제권의 확인을 간청해야 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정치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렇게 제도화된 교회는 수많은 모순들도 안고 있었다. 특히 오토대제는 각 지방의 주교들을 영주로 임명함으로써 교회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의 구별을 완전히 없애버리기도 했다. 즉 면장이 행정도보고 주교노릇도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결과는 2000년 전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던 예수님의 종교와 그 내용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제도화된 교회, 권력과 야합한 교회에 반대하여 본래의 교회를 찾으려는 운동들 즉 수도원 운동이 또한 중세교회사의 특징을 이룬 하나의 현상이었습니다. 320년경에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 애굽인 성 안토니우스가 그것의 창설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읽고 자기의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무소유의 사람이 된 그는 처음에는 무덤 근처에서 그 다음에는 폐허가 된 성채에서 마지막은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는 바위산에서 살다가 356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파코미우스라고 하는 사람은 그의 같은 시기에 수도원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안토니우스와는 달리 그는 수도원을 공동체 생활로 만들고 수도원장을 정점으로 해서 같이 일하고 수도하는 단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코미우스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수도원의 창설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중세 천년동안에 수많은 수도원 운동들이 창설되었습니다. 6세기경에 몬테카시노를 중심으로 시작된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은 과거의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도 또한 철저한 규율에 따라서 움직였던 진정한 의미에서 수도원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청빈, 노동, 복종이라고 하는 3대 규율에 따라서 살면서 기독교의 본래적 모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10세기에 들어와서 교회 안에 있는 시몬파(행 8,18-24)와 니콜라당(행 2,6)등 타락한 제도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등장한 클루니 수도원의 개혁운동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시몬파처럼 교직들을 돈으로 사고팔며 또 니콜라당 처럼 축첩을 한 성직자들을 교회에서 추방하자는 운동이 바로 클루니 수도원 개혁운동이었습니다.
그 후에 질병에 걸린 자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 설립된 요한니텐 종단이나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해 주기 위한 기사종단들 수많은 종단들이 십자군 운동을 전후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특기할만한 것은 13세기에 걸식종단으로 등장한 프랜시스칸들과 도미니칸들입니다. 프랜시스칸들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앗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서 마태복음의 19장의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 감동되어 모든 것을 버리고 걸식승단을 창설함으로써 제도화된 기독교를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초기에는 교황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교황에 의해서 승인을 받음으로써 제도권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동시대에 스페인 사람 도미니쿠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미니칸 종단은 당시에 등장하던 반교황적 운동들에 대항해서 종교재판을 독점함으로써 오히려 종교개혁운동을 방해하는 종단으로 발전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운동은 16세기 종교개혁과 더불어 프랑스인 이그나티우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예수회가 계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회는 개신교에 의해서 잃은 땅을 다시 찾고 개신교인들을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종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선교와 교육에 주로 종사하는데 일본에 왔던 세스페데스라고 하는 예수회원은 임진왜란에 참여했던 소서행장이라는 장군을 따라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만든 대학이 서울에 서강대학입니다.
이러한 제도화된 중세적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출발했던 수도원 운동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만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들이 완전히 교황권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방의 강력한 주교권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그들은 그 상위에 있었던 교황에 호소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수도원장들은 대개 교황에 의해서 임면되었습니다. 둘째 이들은 청빈을 목표로 하고 출발했지만 엄청난 재산들을 형성함으로써(특히 오토대제 이후로) 수도원은 봉건시대의 가장 큰 장원이 되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셋째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13세기에 걸식종단들이 창설되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도원들은 종교재판들을 통해서 왈도파 등의 개혁운동을 억압하는 교황청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수도원 운동 전반을 검토해 볼 때 그들이 내세웠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이탈하고 말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따른 길은 어떤 길일까요? 분명한 것은 역대 교황들이 걸어갔던 길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수도사의 길일까요? 예수회의 유능한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서강대학의 박홍총장도 수도사인데 그가 그리스도의 길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그는 도미니칸 전통에 선 사람으로서 현대판 종교재판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 도미니칸 종교재판관들은 예쁘게 생긴 여인, 성적 본능을 자극할만한 여인만 보면 마녀로 몰아서 화형에 처했습니다. 박홍총장의 주사파 재판도 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는 이러한 종교재판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간다는 확신 가운데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세기의 도미니칸 수도원의 종교재판관이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중세기가 아닌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이 예수와 대화를 통하여 그를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율법학자인데 그는 예수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율법학자로서 그가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하고 따를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형편을 설명할 뿐 따르라 혹은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그가 예수를 따라 왔는지 그냥 떠나갔는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분위기로 봐서 그 율법학자는 예수를 버리고 떠나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자 가운데서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를 잠간 보내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나 치르게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위에서와는 달리 예수는 분명한 자기의 입장을 말하고 또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성서는 이 제자의 결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 제자는 위의 율법학자와는 달리 예수를 떠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제자가 되는 조건, 즉 그를 따른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 그는 마태 19장에서 만난 부자 청년에게서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그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학자에게는 가난을 각오하고서야 그를 따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이런 조건들이 그를 진지하게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진지성이 없는 사람들 이것도 포기하지 않고 저것도 버리지 않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있어서 교회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성서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교회사에 대한 상식만 있으면 세례를 주고 또 집사 장로도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따르는 길은 어떤 것일까요? 성서에도 나와 있는 대로 일정한 법칙이나 원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그런 의미에서 어떤 원리(Prinzip)나 법칙을 말해주는 종교는 아닙니다. 즉 율법의 종교는 아닙니다. 율법학자나 부자청년이 예수의 요구에 대해서 거부하고 떠난 것은 예수가 요구하는 것 즉 예수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지우는 멍에를 율법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의 요구 즉 율법적인 것 배후에는 언제나 허락하는 것 즉 복음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이 쉬임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율법적인 것을 요구하시되 복음을 통해서 도우시려고 하십니다. 그는 요구하시면서 허락하시고 허락하시면서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자녀를 기를 때도 그들에게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할 수 없을 때는 도와줍니다. 자식들에게 요구만 하는 부모 혹은 자녀들에게 허락만 하는 부모 이들은 모두 다 부모의 참된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부모는 율법적이면서도 동시에 복음적인 부모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나는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수도원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자세는 율법학자나 부자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율법과 복음적 차원에서 따른 것이 아니라 율법의 차원에서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교황교회는 율법도 복음도 버린 교회였다면 수도원 승려들은 복음을 율법으로 되돌려 놓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가톨릭의 면죄부 사상에서 그 궤를 같이 했습니다. 교황교회는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려고 했다면 수도승들은 인위적 고행을 통해서 면죄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루터도 도미니칸 수도사로서 이러한 율법적 방식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수도원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나옴으로써 율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복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구하시면서 허락하시고 허락하시면서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의 길, 멍에를 메우되 가벼운 멍에를 메우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지난주일 허락만을 강조하고 복음만을 주장하는 루터파나 칼뱅파의 ”값싼 은혜론“에 대해서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율법주의도 안 되지만 복음만을 강조하는 값싼 은혜주의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요구와 허락, 율법과 복음의 조화를 가져오는 길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그리스도를 따른 길은 율법적 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학자가 그를 따르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얼마전 시동생이 종교문제로 다투는 형수와 그 자식을 살해한 적이 있습니다. 형수는 기독교를 율법적으로 믿었고 그 시어머니는 불교 신자였습니다. 이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복음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고 율법적 대립관계만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시부모와 잘 조화하면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며느리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되는 충돌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율법주의는 복음의 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율법적이지는 않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다하고도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교황교회와 같은 세상적인 집단이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장례 치르는 일 같은 것은 죽은 자들에게 맏기라고 한 것은 예수가 불학무식하여 부모의 장례 치르는 것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는 뭔가 희생할 것은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하고 예수를 따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이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멍에를 지워주십니다. 즉 그는 우리에게 짐을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는 것, 또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히 짐을 걸머지는 것입니다. 시간을 바쳐서 교회에 나와야 하고 헌금도 해야 하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반기독교 세력과 순교를 각오한 투쟁도 전개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제외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멍에는 가벼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요구하시면서 동시에 허락하시며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우리는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헌신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헌신성이 성자나 순교자가 되는 데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부유한 자면 재정을 통해서, 시간을 낼 수 있는 자면 시간을 통해서, 재능을 가진 자면 그 재능을 통해서 가능한한 헌신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면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멍에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고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멍에를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멍에를 크게 감당할수록 그리스도의 나라는 가까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멍에가 감당하기 힘들 때는 그리스도께서 가벼운 것으로 메워주실 것입니다. 요구하시면서 허락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금년도 우리가 감당할 멍에를 지고 새로운 출발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