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마태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마태 5:5)

 

우리는 오늘 산상설교에서 8복에 나오는 부분들을 다루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명제는 “,,, 한 자들은 복이 있다. 그들은 ....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도식으로 되어 있다. 지난번에 우리는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와 두 번째 명제 “슬퍼하는 자”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은 여기서 말하는 복이란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복들은 현실태가 아니라 당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태가 아니라고 해서 뭔가 초세상적인 것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복들은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 저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복 받는 일 즉 새로운 세계는 뭔가 초세상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8복 가운데 세 번째 복 받을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온유한 자에게는 복이 있다.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여기서 온유한 자는 요즘의 한국말로 한다면 겸손한 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그리스 세계에서도 현인들이나 통치자들의 온유함 혹은 겸손함이 찬양되었다. 플라톤이란 철학자는 이러한 겸손함을 소크라테스와 관련지어서 말했는데 이런 자는 곧 신과 유사한 성품의 소유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는 겸손한 성품으로 인해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리스 세계에서 교육을 받았던 유대인 학자인 필로(Philo)나 요세푸스(Josephus)도 이러한 사상을 받아드렸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 예수님 직전에 활동했던 랍비 힐렐(Hillel)의 겸손에 관한 이야기들이 퍼져 있었다. 철학자들이나 통치자들이 말하고 있는 삶의 지혜로서의 겸손은 철저하게 처세술과 관련된 것으로서 자아의 진실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의 본심을 숨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태도는 실상 자신들을 교만으로부터 지켜주는 철학자들이나 통치자들의 지혜 즉 처세술과 상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겸손이란 말은 뭔가 굴종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겸손이란 바로 “가난함”과 거의 같은 말인 것 같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겸손함 혹은 온유함은 “부족한, 적은, 천한” 자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무력함”을 듯하기도 하다. 따라서 이 말은 겸손함이 내포하고 있는 부드러움이나 연약함과는 무관하다고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온유한 자들”은 앞서 언급된 축복을 받아야 할 자들, 즉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나 “슬퍼하는 자들”과 크게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겸손한 자에 관한 말씀은 단지 마태복음서에만 등장한다. 마태복음 11:29절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했다. 또 마태 21장 5절에 보면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타고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타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전형적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 세상의 왕 중의 왕으로 오셨으나 그는 세상의 왕들과 달리 천한 짐승 즉 짐이나 끄는 나귀를 타고 오셨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역사적 행진에서 말과 같은 위엄 있는 짐승을 이용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천한 사람들이 짐 나르는데 사용하던 동물인 나귀를 타고 간다.
또 예수께서는 새로운 교훈으로 가르치는 스승으로서도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가르쳤으며 또 그가 가르친 진리 자체가 뭔가 오늘날의 교육적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오늘날의 교육이 신분상승을 목표로 하고 있고 또 보다 낳은 부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과는 반대되는 길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의 길을 가르치신 분이다. 오늘날 교육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진 청소년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출세하고 돈을 잘 벌게 하기 위한 경쟁교육이라는 무거운 짐을 더 이상 메워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나 오늘날의 세계는 어떤가?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온유한 사람들은 경쟁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저의 이웃에 사는 중학생 부모는 이민을 가야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집의 아들아이가 중학교 다니는데 성적이 평균 87점을 받아온다는 것이다. 87점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 반에 있는 55명의 아이들 가운데 평균 80점대에 들어있는 아이들은 5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머지 50명은 모두 90점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단적으로 오늘날의 교육현장이 얼마나 경쟁적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 다음으로 온유한 사람들은 경쟁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언제나 뭔가를 차지하는 일에서는 실패를 한다. 제가 아는 한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수십 번 아파트 분양에 참가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실패하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아파트를 장만하지만 자기는 그런 것을 할 수 없어서 지금도 조카네 집에서 방을 빌어서 산다고 한다.
따라서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를 하다보니까 결국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무력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개 한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성품이 온순한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세상적 의미에서 권세나 부 즉 복을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복이 있다고 했을까? 또 왜 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했을까? 우리 주변을 볼 때 겸손한 사람들이 땅을 차지한 것을 볼 수 없다. 땅을 차지한 사람들은 정태수와 같이 온유하다기 보다는 거칠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는 전국에 3천억 대에 달하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분들은 내가 보기에는 마음이 온유한 분들인데 땅을 가지고 있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는 이런 이치에 닫지 않는 이론을 말씀하신 것일까?
우선 구약성서 창세기 17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고 또 아브라함과 그 족속들이 살 수 있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식구들에게 주심으로서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백성들에게 삶의 기초로서 땅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된다. 이렇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역사는 “땅을 얻기 위한 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라반 사이의 문제들이나 그 이후 야곱의 자손들의 투쟁들에서도 언제나 땅을 차지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왜냐하면 땅이란 당시나 지금이나 삶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땅을 얻기 위한 투쟁은 그 후에도 세계 방방곡곡에서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 것을 본다. 이웃 부족들 간의 갈등이나 또는 민족국가들의 등장 이후의 전쟁들이나 19세기 이후의 제국주의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류사는 땅을 얻기 위한 투쟁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땅을 차지하는 자들은 강자와 부자가 되고 땅을 상실하는 자들은 약자와 가난한 자들이 된다. 땅을 차지한 사람들은 정착해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고 땅을 잃은 사람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인생이 된다.
오늘날에도 세계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이주민들 즉 외국인들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2억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못 사는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사람들은 이동한다. 이러한 떠돌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계는 불안하고 평화가 없으며 빈부의 격차는 커지기 마련이다. 오늘날 2억 이상의 사람들이 떠돌이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오늘날의 세계가 얼마나 불의한 가를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땅의 분배 혹은 부의 분배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희년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희년은 안식년 즉 7년을 7년으로 곱한 해로 49년을 말한다. 이 안식년에는 모든 삶의 관계를 원상복구 시키는 해다. 남에게 노예가 된 사람은 자유인이 되어야 하며 남에게 땅을 팔았던 사람은 다시 돌려받는 것이다. “희년이 되면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기 그 가족에게 돌아갈 것이라”(레 25:11절). 즉 7년을 주기로 하고 생겨나는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들은 원상으로 복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내용은 땅을 잃은 자가 그것을 되찾는 것이다.
이러한 희년법 사상은 인간이 기본적 삶의 기초인 땅을 상실하거나 과도하게 차지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러한 희년 정신 즉 하나님의 사회법 정신을 예수께서는 계승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법이나 정결법은 배척하시지만 희년법과 같은 사회법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들이 축복된 삶을 누리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자기들 몫의 당이 되돌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 한국에서와 같이 땅 즉 토지의 왜곡된 소유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1987년 몰래 날치기로 통과시킨 노동법은 왜곡된 소유관계에서 부자들을 더욱 부자를 만들려는 음모였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성탄절 다음날 날치기로 통과시킨 안기부법은 땅을 되찾고자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탄압하기 위한 법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이렇게 겸손한 자들이 땅을 차지해야 할 당위성을 말하고 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으라.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습니다.”(야 2:5).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 즉 온유한 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경륜과 섭리를 통해서 가난한 자들의 편이 되어 주시며 그들로 하여금 역사 한가운데서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 오늘날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었지만 사람들은 자기의 땅, 자기들의 삶의 몫을 위한 투쟁은 계속하고 있다. 며칠 전 두크로(Duchrow)라고 하는 제 친구이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에 크게 고무되어 한국을 찾아왔다. 전 세계에서 노동운동이 힘을 잃어 가고 있는데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위해서 위대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전 세계의 모든 가난한 자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가난한 자들,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곧 이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언젠가 차지할 어떤 피안적 나라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몫의 땅을 차지하고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그의 나라를 위한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곧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에는 노동운동에서와 같이 핍박이 따를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운동에는 안기부법과 같은 엄청난 장애들이 놓여 있기도 한다. 그러나 뭔가 비상적인 것들, 즉 특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 세상은 점차 강한 자들, 부자들만이 땅을 차지하는 것에서부터 점차 가난한 사람들 즉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의 기초를 가지고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는 역사의 방향이다.
1997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