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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4 09:35
미혹에서 벗어나자
글쓴이 : 손규태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주실 때에, 곧 지극히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하실 때에, 우리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이 말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베드로 후서 1:16-19)
 
근래에 와서 무절제하고 무사려한 언론들이 점쟁이들을 출현시켜서 그들이 마치 굉장한 예언을 하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다. 또 김일성 사망설을 맞추었다는 어떤 젊은 점쟁이 여인이 쓴 책이 수십만 부씩 팔려나간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사회적 공기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이 무책임하게 이런 기사들을 흥미 본위로 그리고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이러한 점쟁이들의 예언들에 귀를 기울이는 일반 대중들의 심성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국민 한 사람당 1만 불의 소득이 있고 근래에는 통신위성까지를 쏘아 올리는 비교적 발전된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점쟁이들(약 2만 명 이상)이 거의 5천억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면서 성업 중에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이 이런 현상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지난 50년 동안 남북분단과 6.25 그리고 그 후의 남북한의 군사적 정치적 심리적 대결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불안이 내면화되었다. 그리고 역대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정권들 특히 군사정권들은 이러한 내면화된 불안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기까지 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러한 내면화된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대형사고들이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수많은 사고로 인해서 사람들이 사고불감증에 걸리고 그것들을 쉽게 잊어버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 모든 사건들을 잊은 것이 아니라 깊은 의식 속에 내면화된 채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보다 더 근본적인 불안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5년 소련과 동구라파의 붕괴 이후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의 개편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는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무한경쟁의 세계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좋은 말로 지구화 혹은 세계화라고 하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제는 전 세계로 나아가서 경쟁하는 시대가 되어 과거 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 있지만 동시에 세계적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하는 보다 큰 부담에서 오는 불안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경쟁적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승리하는 자일뿐이다. 탈락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해야 하고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더욱 불안하고 그리고 앞서 가는 사람은 탈락할까봐서 불안하다.

요즘 한국의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40대들의 갑작스런 죽음들이나 50대들의 강제은퇴에 대한 불안들은 그 동안 대기업에서 안정을 누렸던 사람들에게 커다란 불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뿐입니까? 수없이 도산하고 쓰러지는 중소기업들과 최근에 일어난 우성과 같은 비교적 탄탄했던 대기업의 몰락이 바로 우리 사회가 서있는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식량난을 걱정반 선전반으로 매일 보도하고 있지만 남한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하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더 많은 불안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시간관계로 다 말씀드릴 수 없다. 어쨌든 오늘날 점쟁이들이 날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 점쟁이들을 찾아 헤매는 현상은 불안정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번영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시베리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던 샤머니즘에 저어서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심성이 이러한 점쟁이들을 찾게 되는 보다 깊은 원인이라고 문화인류학적인 분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와 같은 고등종교들이 들어온 지가 짧게는 200년에서 수백 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때 이러한 점쟁이들의 현상은 보다 사회 병리적 현상에 찾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신인가 심인가 하는 여인이 김일성 사망을 예언했다고 해서 그 여인은 일약 스타가 되고 점보는 순서가 3년까지 밀려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일성사망에 대해서 한번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김일성의 나이나 건강으로 봐서 그는 곧 사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저 자신도 그가 통일하는 일을 완성해 놓고 죽어야 할텐데 하고 생각해 왔다. 왜냐하면 그가 없이는 통일이 더욱 어려워지거나 아니면 통일이 된다고 해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들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다. 저는 그가 카터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하기로 했을 때 정말 통일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 최고 권력자들이 만나서 합의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의 문제는 풀려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죽었고 회담은 무산되고 통일은 오지 않고 말았다. 북한의 정통한 보도에 의하면 김일성은 구월산의 별장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하도록 되어 있는 방들을 돌아보다가 과로로 쓰러져서 헬리콥터로 평양으로 옮기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는 친히 김영삼 대통령이 묵을 숙소를 친히 점검하여 결례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남한에서는 이른바 조문파동이라고 하는 것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학생들이 곤욕을 치렀다. 수많은 외국의 국가원수들 심지어 클린턴까지도 애도의 뜻을 표했는데 남한에서는 군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일체의 애도나 조문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색되어버렸다.

여기서 예언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의 죽음의 신간을 알아맞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 혹은 집단의 운명이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어떻게 바뀌어 가는가 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가 아시리아 혹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는데 그 원인이 그들의 사회적 죄악에 있다고 하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 후서의 본문말씀 1장 21절에 보면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고 했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첫째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받아서 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심이라고 하는 여인이 섬기는 최영장군인가 하는 신으로부터 왔다고 하는 예언은 김일성 사망의 날짜는 맞추다 모르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역사적 운명에 대해서 말하는 바는 전혀 없을 뿐이다.

그리고 두 번째 분명해지는 것은 예언을 사사로이 풀었을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무당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말하는 김일성 사망의 예언은 정말 사람들에게 사사로운 관심거리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이익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또 작년 11월 달에 대형사고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맞지 않자 자기가 기도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는데 그것은 전혀 엉터리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 오늘 이미 서론적인 부분에서 언급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게 만드는 불안의 요인들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미친 듯이 점쟁이를 찾아 나서는 현실이 등장한 것은 맘몬이 전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른바 WTO체제라고 하는 것은 맘몬에게 무제한적인 자유를 허락한 것을 의미한다. 맘몬이 지금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1초면 수억 달라가 서울에서 뉴욕으로 날아갈 수 있다. 이것 보다 빠른 것은 없다. 국경도 없습니다. 달라들이 이리저리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달라는 마음대로 활개치고 다닌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인간들의 자유를 그렇게도 소리높여 외쳤지만 신장된 것은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자유, 맘몬의 자유입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같이 섬길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구인들은 하나님은 그만 집어치우고 맘몬만을 섬긴다. 우리 나라에도 곧 그런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사실상 무당들과 점쟁이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맘몬의 앞잡이로서 맘몬은 얻기 위해서 그 일들을 할뿐이다. 맘몬을 좋아하는 사람, 맘몬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로 몰려들 뿐이다. 왜냐하면 돈 안받고 점 봐주고 예언해 준다는 무당이나 점쟁이를 저는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목사들 가운데도 돈을 바라고 설교하고 돈을 받고 병고쳐주는 시몬 마구스와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 엄청나게 만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고 날이 새어 샛별과 같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이라고 했다.

우선 여기서 예언과 관련해서 가장 확실한 사실은 장차 그리스도의 능력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 3:1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상에서 변모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위탁을 주었을 때 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말씀을 해석하여 이러한 말씀을 들을 때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았다고 추가하고 있다. 여기서 예언운동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즉 그의 능력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지상에서 실현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관련되지 않는 예언들은 사람들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언 즉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에서 그리스도의 나라의 실현만큼 중대하고 귀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김일성의 죽음을 예언한다거나 혹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예언했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사사로이 공교히 만든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에 집중하고 관심하는 것을 성서는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 6: 4). 따라서 예언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실현과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예언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이다. 초대교회 특히 골로새서에 나오는 이단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이었다(벧후 3:3). 그리고 오늘날의 이단들을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짜를 잡아서 거짓 예언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몇 년 전에 소란을 일으켰던 휴거파가 그런 것들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고 그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궁극적으로 수렴하셔서 자기의 나라를 만드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은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과 같고 떠오르는 샛별과 같이 분명한 것이다. 그 외의 것을 더 알려고 하는 것은 교만이거나 아니면 공고히 만든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 나라를 생각지 않고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지상의 실현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다. 그 밖에 잡다한 것들에 관심하는 것은 모두 불신앙이고 공교히 만든 거짓 예언자들에게 말려드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재림 외에 다른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오늘날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퍼뜨리고 있는 온갖 종류의 거짓 예언에 우리는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 찌어다.”(벧후 3: 1-18).
 
199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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