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한.”(누가복음 16:16).

 

1995년 새해를 맞이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빈다. 오늘 저는 새해를 마지 해서 우리가 지나간 시간들을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경말씀을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오늘 성서 말씀의 첫 부분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재미있는 대용이 적혀 있다. 즉 예수께서는 자기가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규정하고 자기 이전의 것들 즉 율법과 선지자의 활동은 세례 요한에게서 마감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장 15절 예수님의 첫 설교에도 보면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다.

여기에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 전체가 요약되어 나타나 있다. 즉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 사람들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율법을 전하는 일도 아니고 예언을 하는 일도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의 시대도 가고 예언자들의 시대도 요한으로 마감되고 예수의 시대 즉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 나라를 실현할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구원사를 세 부분으로 구분해서 말씀하고 있다. 이 세부분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시간 관계상 다음 기회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구분은 마치 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von Fiore)이라고 하는 중세기의 신학자의 3시대구분을 연상하게 한다. 12세기의 시토승단의 수도원장이었던 그는 세계사를 성부, 성자, 성령의 세대로 구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부 시대는 구약 시대로서 교회에서는 결혼한 자들과 평신도들이 주장하고, 성자 시대는 웃시야 왕으로부터 그리스도까지로 사제들이 지배하며, 성령의 시대는 그 이후부터인데 베네딕트 수도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승려들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속해 있던 시토 종단의 정신에 따라서 영적 교회 즉 초대교회를 재건함으로써 제도화되고 부패한 교황교회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그 후에 종교개혁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예수께서 율법 시대와 예언자의 시대를 마감하고 복음의 시대를 선포한 것이나 요아킴이 삼시대론을 통해서 영의 교회와 영원한 복음(사도행전 14:6)을 말한 것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시대가 도래 했고 또 영의 교회의 시대가 도래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율법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율법주의적 신앙의 소유자들이다. 모든 것을 율법의 법칙성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려고 한다. 예수 시대에 이러한 대표적인 인물들은 바리새인들이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에 대한 행태, 즉 율법주의자들의 행태가 자세히 나와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의해서 산다고 하지만 그것을 율법성으로 만들어서 주객을 전도시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안식일도 실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다는 식이다.
이러한 바리새적 사고는 비단 종교인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다. 그것은 정치에도 있고 경제에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과제로 되어 있는 남북통일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한쪽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주의를 내세워서 자기들의 길만이 국민이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남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율법이고 북한에서는 사회주의가 율법이다. 이것들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만들어서 자기 체제를 지키려고 하고 북한에서는 사회안전법을 만들어서 체제를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과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화해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러한 체제 대결이 얼마나 허위적인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은 이 율법들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통을 당하는가? 이러한 정치에서의 이데올로기 싸움은 실은 권력투쟁을 교묘하게 위장한 것뿐이다.

 

예수님 당시 율법은 오늘날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같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핍박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율법적 사고, 율법적 사고를 하는 인간들을 부정하시고 새로운 삶의 형식 즉 복음을 우리에게 전파했다. 이것을 바울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평화이시라. 둘을 하나로 만드시어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몸으로 폐하셨다”(엡 2:12). 다시 말하자면 율법이란 것이 국가보안법과 같아서 인간들 사이를 원수가 되게 헀고 예수께서는 율법을 자기의 몸을 던져 폐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 있는 사람들과 원수 될 일이 없다. 그런데 율법인 국가보안법은 그들을 만나지도 접촉하지도 말고 단지 원수로 여기라고 한다. 이러한 율법을 예수는 자기 몸을 던져서 폐했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자명해 지는 것이다.

좀 긴 예를 들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일차적으로 율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복음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이것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6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의 온갖 모순들은 율법에 안주하고 거기에 의존하는 데서 생긴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세례 요한에게서 마감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하겠다.

사실상 신앙생활에서 가장 초보 단계는 아마도 율법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를 전혀 거치지 않고 복음의 단계에 들어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율법과 복음 사이에 있는 예언자 단계는 어떤가? 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이 단계는 율법의 단계보다는 성숙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간계의 특징이다. 율법이 금지하는 것에 더 관심한다면 예언자들은 허락하는 것에 더 관심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죄에 빠지지 않는 것만을 생각했지만 예언자들은 죄를 짓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율법주의자들은 남의 죄를 정죄하기만 했지만 예언자들은 죄와 악의 뿌리를 보려고 했다. 율법주의자들은 원수를 증오하고 피해갔고 예언자들을 원수를 공격하고 회개를 외쳤다. 이런 여러 가지 대비들을 볼 때 예언자들은 율법주의자들보다는 성숙한 단계에서 살았다.

그러면 복음의 단계는 어떤가? 요아킴이 생각했던 영적 교회의 단계, 영원한 복음의 단계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다시 원수의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율법에 보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마태 5,43-44). 여기에서 복음적 생각, 복음적 행위의 본질이 드러난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서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다원적 사고를 할뿐만 아니라 인간애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플레쳐Josepf Fletcher)라고 하는 윤리학자는 기독교에서 윤리적 기준이 존재한다면 인간에 대한 사랑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복음적 행위, 사랑에 기초한 행위가 가능할 때만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율법과 예언은 요한의 때까지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율법적 사고의 청산과 함께 예언자적 사고를 넘어서는 길의 모색이 필요한 때이다. 즉 원수 되게 하는 모든 것을 몸으로 폐하고 인간들 사이에 사랑과 평화를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복음적 삶 즉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오늘 성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 나라는 침략해 들어가는 사람이 차지한다고 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차지하느니라.” 이 말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는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칼뱅주의 전통 즉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주기도문에도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하고 기도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주권자이고 인간들은 수동적인 받는 자일뿐이다. 우리는 또한 루터교의 전통, 즉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사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 나라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공로를 내세워서는 안된다. 루터나 칼빈이나 카톨릭의 공로사상 특히 그들의 면죄부 사상에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은총만을 강조하고 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만을 강조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안심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안주하는 수동적 인간들이 되었다. 사과나무 밑에 누어서 사과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뉴턴의 원리를 믿는 신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뉴턴의 민유인력의 법칙으로 해석해서 믿는다. 니체가 비난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이 되었다. 괴테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교회당에 와서 달라고 보채는 것이 보기 싫어서 기도를 회피한다고 했다. 신앙이 좋을수록 어린이로 퇴행을 한다. 신앙이 좋을수록 허위의식에 사로잡힌다. 신앙이 좋을수록 탐욕적이다.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한 청교도들의 저축정신을 찬양하지만 그들이 진정 복음의 정신에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회퍼는 이러한 은총만 사모하는 루터교회 신자들을 가리켜 “값싼 은총”에 매달린 자들로서 반 기독교적이라고 혹평한 일이 있다. 우리는 율법을 배척하고 선지자를 능가한다고 하면서 실은 값싼 은혜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루터는 율법은 얽매고 은총만이 자유하게 한다고 했지만 그의 제자인 본회퍼는 은총이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자유하게 한다고 했다.

인도의 수상이었던 네루는 청년시절 간디를 따라 다니며 정치를 배웠다. 간디는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젊은 청년 네루는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생각은 간디와 같이 할 수 있지만 실천에는 옮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실천에 옮기다가는 영국인들에 의해서 체포되고 감옥에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늘 두려웠고 그의 행동을 제약했다. 하루는 다시 간디와 함께 데모행렬에 참여하게 되었다. 무장한 영국경찰들이 다가옵니다. 그는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손을 꼭 잡고 태연히 걸어가시는 간디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가 없었다. 벌벌 떨고 있는 네루의 손을 잡고 있던 간디가 말했다. 이제 10미터 만 더 가면 모든 불안이 사라진다고. 네루는 간디와 같이 체포되어 감옥으로 끌려갔다. 감옥살이가 몸은 고되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이 평안하고 자랑스러웠다. 사고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불안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자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다. 요한 일서 기자는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낸다고 했지만 네루에게서는 행동이 모든 두려움을 몰아냈다. 네루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인도의 수상이 될 수 있는 재목으로 성장해 갔다. 그가 만일 도망치고 말았다면 그는 한낱 졸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침략하는 자가 차지한다. 값싼 은총론에 매달려 명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를 믿고 행동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는 주어진다. 아니 자기의 생명을 내걸고 침략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모험을 감행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는 주어진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삶의 방향을 바꾸고 즉 회개하고 복음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 나라를 침공하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달란트를 묻어 두는 것이 최상의 덕이 아니다. 그것은 악덕일 뿐이다.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로 만들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금년은 우리는 한 달란트에 실망하지 말고 두 달란트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침공해서 차지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행동하고 또 모험도 감행해야 한다.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99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