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쌍둥이를 배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께로 나아갔다.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달이 차서, 몸을 풀 때가 되었다.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몸이 털투성이어서, 이름을 에서라고 하였다. 이어서 동생이 나오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 리브가가 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두 아이가 자라,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
(창세기 25:22-27)

 

오늘 구약성서 창세기 25-36장에 보면 이삭의 두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형제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나 다 잘 아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족장들의 이야기의 두 번째 부분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세계사의 큰 주제들 가운데 하나인 형제간의 다툼을 그 중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적수요 경쟁자였다. 그들은 같은 부모와 같은 생활환경에서 같은 재산을 가지고 살았고 바로 이것이 결국 그들을 적수로 만들었다. 사실 적수란 같은 삶의 조건들을 나누어야 하는 처지에서 생겨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대재벌의 형제들 간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둘러싸고 형제들이 경쟁을 하는가 하면 때로는 적수가 되기도 하다.

성서는 이미 가인을 통해서 인류사의 시작에서부터 그리고 여기서는 에서와 야곱을 통해서 구원사의 시작에서부터 형제간의 갈등을 묘사함으로써 이들의 미래들이 평탄하지 못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갈등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두 번에 걸친 형제들 간의 경쟁과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인류에게는 살인이나 형제간의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경쟁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의 영역 즉 약속과 구원의 역사에서도 경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신약성서와 그리고 교회사가 입증해 주는 사실이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형제 사이의 경쟁은 그리스도 교회의 형제 됨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아니 우리가 피를 나눈 형제 사이에 경쟁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 나아가서 우리의 삶의 공동체의 중요한 일부라고 할 수 있는 직장에서도 경쟁은 존재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형제애나 동료애란 현실적인 것이 아니고 이상적이거나 아니면 기만일지 모른다.

‘진정한 형제애’에 경쟁이 있어도 좋은 것이냐 하는 물음이 중요하지 않고 실은 경쟁에서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경쟁은 과거에는 흔히 적수를 제거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중세기에 이러한 경쟁 관계 혹은 적수 관계는 서양에서는 결투라는 형식을 통해서 해결했다. 결투가 법으로 금지되고 개개인의 갈등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 훨씬 후의 일이다. 그러나 국가의 관여를 통해서도 모든 것이 경쟁 당사자들에게 만족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적수 중의 하나는 유리하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불리하게 결론지어진다. 따라서 형제간의 갈등 혹은 적수 관계는 어찌 보면 불가피하다는 것이 오늘날의 삶의 경험이기도 하다. 과거의 경쟁이 정치적 관계들에서 주로 문제가 되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쟁관계는 경제적 영역에서 더욱 치열해졌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날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경쟁이란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형제간의 다툼의 주제는 축복이라고 하는 것을 맴돌고 있다. 태중에서부터 맏아들로 태어나려고 하는 싸움에서는 아버지의 장자에 대한 축복이 문제가 된다. 야곱이 형의 복수의 손을 피해서 삼촌 라반의 집에서 지낼 때도 역시 축복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야곱이 아내들과 자식들 그리고 모은 재산을 가지고 형에게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축복이 문제가 된다.

축복이란 성서에 나타난 인물들과 관련해서 보면 우리 시대의 성공이란 개념과 유사하다. 성공이란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특수한 개념이다. 성공을 향한 노력, 성공을 향한 투쟁이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지만 그러나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성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성공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들이나 방법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많은 수고를 해도 실패하고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공이란 말에도 축복이란 말로 표현되었던 어떤 신비가 함께 작용하는 것 같다. 축복은 성서에서는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처리할 수 없는, 자기의 힘을 뛰어 넘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어떤 것으로부터 주어지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는 이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하신 능력이라고 발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이러한 인간이나 피조물에 작용하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힘인 축복을 삼중의 생산력에서 파악했다. 즉 자궁의 출산 능력, 가축의 생식력 그리고 토지의 출산력이 그것들이다. 신명기 7장 13절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너희에게 복을 주셔서 자식을 많이 보게 하시고 땅에 복을 주셔서 열매와 곡식과 새 술과 기름을 풍성하게 내게 하시고 소와 양에게도 복을 주셔서 새끼를 많이 낳게 하여주실 것이다.” 이러한 도식들은 족장들의 이야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자식의 축복,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가축들의 축복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에서는 곡식들의 축복이 말해지고 있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생명력과 소유가 걸려 있는 장자권과 축복권이 문제가 된다. 인류의 최초의 권리로서의 장자권이 기만적 방법으로 장자인 에서에게서 차자인 야곱으로 넘어갔고 또 재산과 관련된 축복권이 에서에게서 야곱으로 넘어간 것이다. 말하자면 가장 오래된 기본적 특권이 와해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축복이란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여서 어떠한 법칙이나 제도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간직했다가 그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축복의 신비가 있고 또한 축복의 본질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축복받는 것을 인간의 척도에 따라서 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어떤 모범적 인물이어서 구원사의 주류에 섰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야곱은 어떤 면에서 즉 선에나 악에서나 인간의 본보기는 아니다. 그는 매우 교활한 인간이어서 자기 형이 배고파하는 것을 이용하여 그의 장자권을 갈취한다. 그는 어머니와 공모하여 손에 털을 감고 아버지를 속이면서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챈다. 그렇다고 에서는 악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축복을 받지 못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도덕적 성품과 같은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선한 사람은 꼭 축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축복을 얻기 위한 투쟁”이 약속의 구원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중요한 삶의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의 산물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이것을 얻기 위한 투쟁이 그것을 획득하는 하나의 보조적인 조건은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축복을 얻기 위한 노력들 없이 축복이 거저 주어진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지도 않다. 말하자면 축복이란 하나님의 손에 들어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인간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축복이란 매우 역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설은 축복을 얻은 자의 삶이나 축복을 얻지 못한 자의 삶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야곱은 형으로부터 장자권과 축복권을 쟁취하였지만 형에게 쫓겨나서 외삼촌에게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이라는 긴 세월을 힘들게 일했다. 그러나 결혼해서 얻은 것은 삼촌의 기만으로 인해서 첫째 딸 레아였다. 그는 라헬을 위해서 다시 7년간을 일했다. 그리고 삼촌은 열 번이나 정했던 품삯을 바꾸었다(창 31:7절). 그에게 재산을 나누어 줄 것 같지 않은 삼촌의 태도에 그는 다시 기만적 방법을 통해서 자기의 재산을 불린다. 그 결과 그는 삼촌에게서도 쫓겨나게 되고 마침내 형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형에게 돌아오면서도 형에게 수모를 당했고 두려움 가운데 주저했다. 형을 만나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해야 했고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대부분을 형에게 화해의 선물로 바쳐야 했다. 그는 또한 ”형님의 얼굴을 뵈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는 것 같다“(창 33:11)고 말해야 했다.
그는 돌아가는 길에 얍복강에서 등장한 물귀신과도 죽기 살기의 결투를 벌이다가 환도 뼈를 상하기까지 했다. 축복을 얻는 대신 그는 병신이 되었다. 그래도 축복을 빌어 달라고 물귀신에게 애원했다. 여기서 그는 물귀신으로 변장한 하나님을 만나고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과 싸워서도 이겼다는 것이다. 그는 이 축복을 얻기 위해 형과 싸우고 삼촌과 다투고 마침내는 하나님과도 싸웠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에게서 얻어냈다. 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속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쟁취해야 하는 역설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일생 동안 축복을 얻어내기 위한 투쟁을 감행한다.

이것이 축복을 얻기 위한 투쟁의 삶 그리고 축복받은 야곱의 삶이었다. 그의 축복을 얻기 위한 투쟁의 삶 그리고 시련의 삶은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는 늙어서도 요셉을 과도하게 사랑한 나머지 형제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 그가 이집트로 팔려 가는 비극을 경험해야 했다. 말년에는 흉년이 들어서 이집트로 이민 가서 타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일이 다 열거할 필요도 없이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는 아들 요셉 덕분에 이집트에 가서 흉년을 면할 수 있었지만 바로 앙 앞에서 ‘노인의 연세가 얼마나 되었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년하고도 삼십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렇다. 형의 축복을 다 차지하고 삼촌의 축복을 다 차지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다투어서까지 축복을 다 차지한 야곱의 마지막 말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사의 주역을 한 사람의 말이다. 이것이 모든 축복을 다 받은 사람의 마지막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가르침을 얻게 된다.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축복을 얻기 위한 투쟁의 삶이라는 것이다. 축복이란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에 속하는 사항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투쟁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며 필요한 경우에는 이 축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과도 투쟁할 각오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향한 끈질긴 노력이 요청된다 하겠다.

다음으로 축복은 야곱의 마지막 말에서 보듯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그의 뜻을 실천하는 삶은 온갖 어려움과 고난으로 가득한 험악한 세월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요 미신적인 사고다. 어려움과 시련 가운데서도 뭔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하다가 박해를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표적인 예를 그리스도의 삶에서 본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축복을 받았지만 티어나면서부터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메시아였지만 힘을 가진 자로서가 아니라 가장 약한 자로서 십자가에 나아갔다. 그는 역사를 마감하고 왕권을 하나님에게 바칠 종말의 왕 중의 왕이었지만 멸시와 천대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대고 추구하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불살라 제물로 죽었다. 이러한 삶을 그는 자기의 입을 통해서 오늘 신약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의를 위해서 박해를 당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 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이러한 의를 위한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거기에다 박해와 손해를 당하는 삶,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축복된 삶이다.

1993.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