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배경
루터의 종교개혁은 앞서 루터의 정치윤리에서 다루었듯이 로마의 정치체제와 가톨릭 종교체제의 종합으로 생겨난 제반 모순의 구조들을 해체시킴으로써 성서에 나타난 기독교의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교회사적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의 제반 모순들은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적 종교로 받아들이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신구약 성서에 뿌리를 둔 종말론적 메시아 공동체인 교회가 로마 제국에 의해서 공인된 교회가 됨으로써 생긴 위상변화가 문제가 된다. 박해받던 종교가 박해하는 종교로, 천대받던 교회가 특권을 누리는 교회로, 민중의 메시아 공동체가 특권층의 제도적 교회로, 종말론적 시간의 공동체가 현실에 안주하는 공간의 공동체로 변화됨으로써 그 본래의 기원과 목표 그리고 과제와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콘스탄틴적 전환(Konstantinische Wende)에 의한 이러한 우연적(정치적 영역에서는 잘 계획된) 사태발전에서 얻은 특권에 도취된 기독교는 주어진 유리한 조건들을 자기확대와 가지안주에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위기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조건들 하에서 등장한 국가신학은 당시 로마 제국의 모순된 정치적 경제적 권력체제를 승인하거나 정당화함으로써 이른바 로마의 정치적 보편주의와 가톨릭의 종교적 보편주의가 궤를 같이 하면서 발전되었고 그 결과는 이른바 “암흑기”로서의 중세를 만들어낸 것이다.
첫째, 이러한 암흑기의 특성으로서 우리는 왕권과 사제권의 양극성의 혼동을 들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의 전체주의에서 왕권과 사제권의 통일은 왕권 자체의 신성화를 가져왔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왕권을 장악했던 왕이나 황제는 절대자로서 신의 화신이며 그는 신으로 예배됨으로써 정치종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왕 한 사람에게 왕권과 사제권이 통합되어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이 두 개의 권위들이 어느 정도 구별됨으로써 사제권의 독립이 가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세 전반에 걸쳐서 이 두 권위들의 관계는 사회 정치적 조건들에 따라서 협력적이고 대립적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중세신학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토마스 같은 이는 그의 “자연과 은총”이라는 신학적 도식을 통해 이 두 권력의 종합관계를 규정한다. 토마스에 따르면 은총의 질서가 자연의 질서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처럼 영적 권력인 교회 정부가 세속적 권력인 국가 정부에 상위에 위치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둘 사이의 양극성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았다. 중세기의 이러한 왕권과 사제권의 통합은 경제적 영역에서도 이들 두 영역을 유착하게 만들므로 정치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의 영역에서도 많은 문제들과 모순들을 야기했다.
이러한 중세 스콜라주의 신학의 정교통합을 비판한 루터는 두 정부 사이의 종합이 아니라 철저한 구별을 요구했다. 이 두 개의 질서의 기원과 목표는 다 같은 것이지만 이 둘이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에 봉사하는 것이지만 이 둘은 각기 다른 과제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권위가 ‘기독교적으로’ 지칭되거나 종교적 권위가 ‘세속적 직무’를 담당하고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중세기의 이러한 정치적인 것과 종교적인 종합 도식에 반대하여 기독교적 본질에 보다 충실하려고 했던 전통, 승려제도와 관련해서도 루터는 비판하고 나선다. 루터에 의하면 권력과 유착된 제도권 교회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출발했던 다양한 종단들이 가졌던 가난한 자들과의 ‘수평적’ 연대성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승려제도는 삶의 전체성을 무시한 채 세상과 동떨어진 특정한 집단, 이른바 선택된 집단의 이상에 집중함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고 구원하고자 했던 세계 전체의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승려제도의 전통은 예수 당시 엣세네파의 입장과 같이 세상을 사바세계로 규정하고 그것을 멀리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세계책임성을 망각했다는 것이 루터가 비판하는 점이다.
셋째, 이러한 완전한 삶을 요청하는 수도원적 승려집단들의 사고는 성서적 가르침의 통전성을 왜곡하고 말았다. 즉 성서의 가르침, 특히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 이른바 수도승들이나 사제 등과 같은 “완전한 자들”에 국한시킴으로써 일반 대중들은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의 산상설교에 나타난 가르침들은 사제나 승려계급들에게 요청된 것이고 그들만이 실천할 수 있으며 일반인들은 이러한 요청이나 실천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성서해석과 그 실천에 대한 이중적이고 계층적 이해는 그들 사이에서 이중윤리를 낳게 되었고 따라서 이들 완전한 자들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제도의 개혁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놓지 못한 것이다.
넷째 중세기 이러한 정치와 종교의 종합관계에서 성서의 예언자적이고 종말론적 전통이 그리스 철학 사상과 로마법사상과 결합되는 과정에서 중세의 기독교 사상이 형성되었다. 아퀴나스의 토마스를 통해서 이러한 종합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에게서 한편으로는 이자 및 독점 금지와 정당한 가격을 분석함으로써 가정생활의 보장을 침해하는 화폐증식경제가 비판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봉건체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개혁 운동에서 왕권과 제국의 정치체제를 통제하려고 했던 성서적 예언자적 이상들이 봉건적 제도하에서 어느 정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가 하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1. 교회사에서 경제문제
교회사에서 경제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게 되는 것은 교회가 매우 초기부터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함으로써 서구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경제력을 가진 집단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회재산의 발전과 그것이 서구 사회의 경제생활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것이 교회의 경제학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교회가 경제생활의 영역들에서 구성원들에게 어떤 윤리적 준거들을 제시하고 있는 가를 다루는 것이 교회의 경제학의 또 하나의 연구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경제윤리에 대한 중요한 준거들은 이미 복음서들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상의 것들은 무상한 것이어서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추구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 그들의 삶의 대 전제였다. 따라서 세상에서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세상에서 돈 혹은 부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복음은 깊은 불신으로 대하고 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하는 것을 자신의 구원을 위한 확실한 보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물건들을 무조건적으로 저주하거나 배척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성서가 금하고 있는 것은 돈이나 재산에 대한 무제약적 탐욕이 가져올 자기파괴와 거기에 수반되는 사회적 갈등들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냐 재물이냐”하는 예수의 결단의 요구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시간이 감에 따라 교회들이 확장되고 하나의 확고한 조직체들로서 발전됨에 따라서 경제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를 정하고 그것을 위한 일정한 규정들을 만들어 가는 일은 용이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윤리와 관련해서 교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사고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당시 로마사회의 심각한 빈부격차에 관심한 교부들은 돈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급속하게 세속화되어 가는 당시의 교회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일종의 공산주의적 경제윤리를 제창하기에 이른다. 부자들의 과도한 소유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와 타협해 가는 제도적 교회에 저항하여 사도적 청빈을 이상으로 하는 승려제도가 등장하게 되는데 바실리우스(Basillius)나 크리소스토무스(Chrysostomus)과 같은 그리스 교부들이 이 운동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히에로니무스(Hieronimus)와 암부로시우스(Ambrosius)같은 교주들이 이러한 이상을 서방교회에 소개했다.
다른 한편 교부들은 보통 그리스도인들도 실천 가능한 가르침을 제시하는데 교부 어거스티누스(Augustinus)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에 의하면 재산은 선한 것이고 따라서 부하게 되는 것은 허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산은 최고의 선이 아니며 따라서 소유는 단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키는 데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족을 넘어서는 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으로 본다.
하나의 단체로서 교회에서도 항상 돈이 필요했는데 초기에는 주로 교인들이 내는 헌금과 특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바친 것들로 충당되었다. 313년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승인된 이후 교회는 박해 시에 빼앗긴 재산들을 돌려 받게 되어 교회는 훨씬 부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하나의 법인체로서 재산을 함부로 매각하거나 양도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명제가 등장한다. 6세기에 들어와서 교회는 로마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집단으로까지 성장하지만 민족대이동으로 인한 로마제국의 참화로 생긴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는 한편으로는 사회적 참화의 지원자로서 나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직자 집단들은 이러한 조건들을 바탕으로 해서 국가 권력에 대해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는다.
이러한 교회의 위상은 중세기 내내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교회의 제도들은 늘어가고 교회의 재산도 증식된다. 7세기에 들어와서는 더 많은 크고 적은 교구들 외에도 많은 수도원들이 건립된다. 카롤링 시대에 와서 교회의 11조가 국가에 소속되게 되는 일이 일어났지만 교회는 크게 타격을 입지 않고 국가와의 우호적 관계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고 보존할 수 있었다. 교회와 수도원들을 계속해서 늘려간다.
13세기에 들어와서 무역과 직조업이 발달하면서 자본주의적 기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은 기독교적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빈부의 날카로운 대립으로 비쳐졌다. 이러한 사회불안의 징조로서 이단운동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이 운동들은 빈곤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탁발승 운동들도 이러한 경제적 모순들과 부관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콜라주의는 경제문제를 포함하는 하나의 완결된 체제들을 발전시킨다. 스콜라주의는 부분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뿌리를 둔 그리스적 사상을 경제윤리에 도입하지만 콘스탄틴적 전환 이후 가톨릭 교회 안에서 발전된 전통들을 버리지 않았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경제활동은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거부들에게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것도 허락한다. 교회법에 따른 이자금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강화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실행단계에서는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2. 경제문제에 대한 루터와 가톨릭교회의 입장
루터는 종교개혁 초기부터 경제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었는데 그것은 어떤 일반적 경제이론을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하지 않고 철두철미 당시 가톨릭 신학의 경제관에 대한 반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비판의 출발점은 두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제도권 교회의 신학노선인 스콜라주의자들의 중세봉건체제 지향적 경제관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에 병행대립해서 움직였던 수도원적 사상과 운동에 대한 비판이다. 예를 들면 루터의 적수였던 가톨릭 신학자 요한 에크(Johann Eck)는 당시의 상행위와 금융거래의 관행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1514년 엑크는 5%의 이자율을 정당화하는 일련의 논제들을 제시했다. 그는 1515년 볼로냐(Bologna)에서 있은 논쟁에서 자기 입장을 고수했다. 채권자는 돈을 꾸어주고 고리대금을 받을 의사가 없었다면 채무자의 자발적 선물을 받아도 좋고 또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확정된 이자를 받을 수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를 해할 수 있다는 스콜라주의 신학이론을 받아들인다.
여기에 대해서 루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제생활의 기본원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 봐서 인간의 경제활동은 오직 기본욕구의 충족에 두어야 한다는 이론과 예수의 산상설교의 교훈에서 본다. 루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상품들을 공정하고 바르게 거래할 때 다음 세 가지의 각기 다른 등급과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째 어떤 사람이 우리 재산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면 우리는 그것을 허락하고 양도해야 할뿐만 아니라, 더 원하면 더 취하도록 각오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마태복음 5[:4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를 걸어 고소하여 내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이것이 세상 물건을 다루는 문제에서 최상의 정도(the highest degree)이다.” 따라서 루터는 경제문제를 다룸에서 일차적 관심은 경제이론 일반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에 두었다.
이렇게 볼 때 루터가 경제문제를 다룰 때 제기되는 문제는 어떤 경제이론을 제창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 조건이 상품이 가지는 성격을 신학적으로 규명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출발점은 “하나님이냐 맘몬이냐”하는 신학적 문제를 일차적으로는 개인적 차원에서 다룬다. 루터는 그의 대교리문답서의 10계명 해설에서 “너희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다루면서 물질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그는 이 계명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은 무슨 뜻이며, 하나님은 누구인가? 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서도 모든 선한 것과 거할 곳을 기대해야 할 분을 말한다. 따라서 한 분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그를 의지하고 믿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앙과 하나님, 이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이제 그대의 마음을 두고 의지할 것은 오직 그대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것은 맘몬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맘몬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 루터는 경고하고 있다.
루터는 이러한 관점에서 당시의 경제문제를 초기 자본주의적 체제를 염두에 두고,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 다룬다. 그는 제7계명을 해설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모든 신분을 통해서 볼 때 그것은 커다란 마구간에 가득한 거대한 도적들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자를 떼는 고리대금업자들이며, 날강도들이다. 그들은 의자에 앉아 스스로를 귀공자들과 경건한 시민들이라 자칭하며, 그를 듯하게 강도질을 하고 도적질을 한다... 지배자들과 영주들로 단체를 만든 거대한 최고의 도적은 도시나 마을뿐만 아니라 전체 독일에서 매일같이 도적질한다.” 루터가 지적한 거대한 도적들은 고리대금을 일삼는 무역회사들의 소유자들이다. 당시 독일의 영주들과 지배자들은 평민들의 토지와 재산을 강탈하여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반대하여 설교해야 할 목사들에게 보낸 글(An die Pfarrherrn, wider den Wucher zu predigen)에서 루터는 이자를 통해서 자본증식을 꾀하는 것은 “악덕, 죄악, 수치가 되지 않고, 오히려 고상한 덕목이고 영예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개탄한다. 따라서 루터는 교회 공동체는 등장하는 자본주의 질서와 대칭되는 집단으로 이해했고 교회가 만일 고리대금업을 한다면 그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보았다. 루터에 의하면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 정부도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루터의 관점은 당시 독일 황제 칼 5세가 푸거상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활동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루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했던 경제행위는 어떤 것인가?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합리적 경제적 행동방식을 산상설교에 기초해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원하는 사람에게 취하게 하고(sich nehmen lassen), 주고(geben) 그리고 이자 없이 빌려주는 것이다. 루터가 제안하는 산상설교의 정신에 기초한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은 매우 이상적이어서 현실 생활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 제기된다. 가톨릭 신학자들이 해석하는 대로 이러한 산상설교에 기초한 삶이란 승려나 성직자와 같은 특수한 계층 이른바 “완전한 자들”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것이고 일반 사람들은 실천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루터는 산상설교는 특정한 계층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람들의 잘못된 경제생활의 행태를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사람들은 친한 사람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에게 우정이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물건을 나누면서 보상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물건들을 친구들이나 그것들이 불필요한 부유하고 강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람들의 호의, 보상 혹은 우정을 획득하거나 그들에 의해서 좋고 정직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으면, 그들은 대담하게 나아가고 사람들의 칭송과 영예와 호의와 보상에 만족하게 된다.”
둘째, 사람들은 적이나 반대자와는 물질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악을 행한 자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본성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는 행위를 피할 수 없다. 계명은 모든 사람에게 관련된다. “너희에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마태 5:24]. 그것은 누가복음 5[:30]에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 주라.” 여기에 보면 적들이나 반대자들이 제외되어 있지 않다. 사실상 그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같은 구절들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큰상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가장 놓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안자하시기 때문이다”[누가 16:32-25].
셋째,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자기의 영예와 이익이 돌아오는 곳이나 사람들과만 물건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교회들, 수도원들, 기도실들, 제단들, 교회의 종탑들, 교회의 종들, 오르간들, 그림들, 성상들, 은과 금장식품들, 의상들을 위해서 그리고 미사들, 철야기도들, 노래하는 것, 성서 읽는 것, 유산을 기증하는 것, 수도회와 같은 것들을 위해서 기부하면서 “자선기금”이나 “하나님을 위한 헌납”이라는 고상한 칭호를 붙인다. 여기서 주는 것의 진정한 흐름이 이 사람들이 이끄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들이 갖고자 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물들은 매우 무미건조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수백 개의 제단들과 철야기도들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잘 먹이거나 다른 측면에서 가난한 가정을 돕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된다."
루터는 경제를 사람들의 삶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것을 성서의 가르침(특히 산상설교)과 황금률의 일치를 고려하여 자기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루터의 이해는 당시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경제이해와는 모순되는 것이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체제가 가져온 모순들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것이다.